지난해 103일 간의 파업을 불러일으켰던 박정찬 전 연합뉴스 사장은 “파업 후유증을 수습하고 조직 분위기를 일신시키지 않으면 연합이 나아가는 데 큰 문제가 될 것으로 생각해 사임을 결심했다”며 “조직의 더 큰 발전을 위해 건전한 의미에서 ‘용도폐기’됐다는 생각도 든다”고 밝혔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고향, 대학 후배인 박정찬 전 사장은 2009년 3월 취임한 이후, ‘공정방송을 파괴하는 낙하산 사장’이라는 구성원들에 반발에도 지난해 3월 연임에 성공했다. 이에 연합뉴스 노조는 “박정찬 체제에서는 공정보도가 불가능하다”며 103일 간 파업을 벌였다.

▲ 13일 발행된 연합뉴스 사보

박정찬 전 사장은 같은 해 6월 공병설 당시 연합뉴스 노조위원장과의 회동에서 “구성원들의 뜻을 존중해 (거취를) 판단하겠다”고 밝혔으며, 지난해 12월 사의를 표명해 사실상 ‘불명예 중도퇴진’을 해야 했다.

13일 발행된 연합뉴스 사보에 따르면, 박정찬 전 사장(당시 사장)은 사보 편집팀과의 인터뷰에서 “파업 후유증을 수습하고 조직 분위기를 일신시키지 않으면 연합이 나아가는 데 큰 문제가 될 것으로 생각해 사임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박정찬 전 사장은 “파업 장기화에 대해 최고경영자로서 책임을 통감한다”면서도 “103일간이나 파업이 지속됐어야 했는지에 대해선 아쉬움이 남는다”고 밝혔다.

파업 당시 노조가 ‘공정보도 확립’을 주요 요구사항으로 내놓은 것에 대해서는 “공정보도는 언론의 최고 덕목이지만 현실적으로 어느 나라의 어느 매체든 정부 권력, 자본 권력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고 말했다.

또한 “이명박 정부 초창기 불공정 보도로 연합뉴스 기사가 왜곡됐다는 말도 있는데, 내가 언제부터 사장을 했는지 살펴보면 오해는 줄어들 것”이라며 파업의 주범으로 지목되는 것에 대해 에둘러 반박했다.

▲ 연합뉴스 노조가 14일 발행한 연합노보

이를 두고, 연합뉴스 노조는 14일 사보와 똑같은 디자인으로 ‘박정찬 특집’ 노보를 발행해 “마치 스스로 큰 결단이나 내린 것처럼 이야기하는데 기가 막힐 뿐”이라며 정면 반박에 나섰다.

노조는 “군사독재의 전환점이 된 1987년 개헌이 전두환의 용단인가? 수많은 시민들이 피를 흘린 민주항쟁의 결과”라며 “박 사장의 중도퇴진 역시 스스로 결단한 게 아니라 밀려난 것일 뿐이다. 노조와 연합뉴스 구성원이 끊임없이 박 사장을 압박하지 않았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장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노조는 박정찬 전 사장이 “힘들었지만 행복했다”고 한 것에 대해 “(박 사장의 재임 기간은) 힘만 들었고 불행했다” “잃어버린 4년”이라고 맞받았다. “공정성 훼손으로 뉴스콘텐츠의 경쟁력이 훼손됐고, 지연과 학연에 따라 주요 보직을 결정하면서 조직이 멍들었다”는 것.

노조는 “박 사장 재임시절 경영진뿐 아니라 당시 편집국장 등 일선간부들까지 언론의 생명인 공정성 훼손에 앞장섰던 것이 (파업의) 결정적 원인으로 꼽힌다. (새 경영진은) 공정성 회복을 최고의 가치로 삼아야 한다”며 “기자의 영혼을 팔고 정치권을 향해 꼬리를 치는 작태가 조직 내에서 당연시되고, 오히려 권장되는 비극이 반복된다면 노조는 103일보다 더 긴 파업이라도 마다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박정찬 전 사장이 파업의 주범으로 지목된 것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내비친 것과 관련해서도 “한마디로 적반하장”이라며 “한명숙 전 총리 공판기사, 낯뜨거운 이명박 임기반환점 특집기사, 이명박이 조찬기도회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한 사진의 송고지연, 일방적인 4대강 특집기사, 청와대 해명을 그대로 전한 내곡동 사저 기사 등 불공정보도는 셀 수 없을 정도”라고 반박했다.

이어, “물론 박 사장 본인이 직접 지시하지 않은 사안이 섞여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런 불공정 보도가 자행된 배경엔 박 사장이 있었다”라며 “정권에 불편한 기사에 대해선 사장 눈치부터 보는 문화가 박 사장 재임기간 급속히 확산됐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강훈상 연합뉴스 노조 사무국장은 21일 미디어스와의 통화에서 “원래 일반적인 노보를 내려다 박정찬 전 사장이 자기변명을 늘어놓은 사보 인터뷰를 했다고 해 똑같이 만들었다”며 “국가기간통신사를 사유화하고 공정보도를 파괴하면 나갈 때까지도 망신을 당한다는 것을 알리는 차원이며, 새 경영진에 대한 경고의 의미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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