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 마츠가네 난사사건 (松ヶ根射事件)
DIRECTOR : 야마시타 노부히로
ADDITION : 2006 | 35mm | 112min | 일본 | color
출연 : 아라이 히로후미, 미우라 토모카즈, 키무라 유이치, 안도 타마에

(스포일러를 아는 여부가 영화를 애호하는 데 있어서 그닥 심급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어쨌든 스포일러가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S#1. 옛날 옛적 전설의 고향

용띠, 개띠, 닭띠 등등… 동물 단위로 사람과 세월을 가늠하는 십이간지의 첫 타자는 잔망스럽게도 쥐다 - 생쥐, 마우스, 쥐박이할 때의 바로 그 쥐. 전해지는 설화는 이렇다. 옛날, 옥황상제가 동물들에게 지위 서열을 매기겠다 선포를 하고는 그 선발 기준을 정월 초하루 천상의 문을 두드리는 선착순으로 정한다. 이 소식을 들은 짐승들이 제각기 구보 연습을 했는데 그 중 가장 열심 낸 동물이 소다 - 황소, 젖소, 미국소, 미친소 할 때 바로 그 소. 도전자 중에 가장 작고 힘없던 짐승은 쥐였는데 자신이 스펙에서 밀리는 걸 일찌감치 파악하고는 선두주자인 소의 등에 슬쩍 무임승차, 결국 새벽부터 서두른 소가 천상의 문 앞에 도착하는 바로 그 순간, 그 등에서 뛰어내린 쥐가 가장 먼저 문을 통과하고 만다.

▲ 영화 <마츠가네 난사사건> 포스터
S#2. 90년대 초반 마츠가네 마을

코타루는 성실한 순경. 일과시간에는 자전거로 동네를 순찰하고 여가시간에는 소년들과 검도로 심신을 단련, 집에 오면 콩가루 가족들을 보듬고 가끔은 조신한 약혼녀와 만나 미래를 설계. 하나 걸리는 게 있다면 파출소 천정에서 찍찍대며 신경을 거스르는 신원 미상의 서생원.

쥐는 번식이 빠른 법. 그의 삶을 조금씩 갉아먹는 다른 양상들 - 1번 타자. 같은 집에 사는 찌질한 쌍둥이 형 히카리. 누나네 목장에서 소를 돌본다지만 그나마 대충대충, 여가시간에는 동네 아이들과 시시덕거리고, 괜한 밤 눈길에 차를 몰다 사고를 내는 식이다. 2번 타자. 히카리로부터 뺑소니를 당한 묘령의 여자. 경찰서에서 퍼뜩 의식을 차리자마자 인근 여관에 묵고 있는 깍두기 아저씨와 합류하는데 알고보니 이 마을 호수바닥에 숨겨진 금괴를 찾으러 온 갱스터 커플. 무력한 가해자 히카리를 협박하며 형제의 선대 저택에 아예 진을 친다. 3번 타자. 동네 미용실 원장 아줌마와 아예 살림을 차리고 사는 한량 아버지. 심지어 발달장애가 있는 미용실의 십대 소녀 하루코까지 임신시키고는 모른 척 다시 코타루네 집으로 기어들어오는 인간말종.

성실한 중산층 가정/가장을 꿈꾸는 코타루는 이 모든 소동과 악덕들을 조용히 무마하려 애쓰지만 당연히도 상황은 점입가경. 아버지는 그의 혼사에 초를 뿌리고, 호수에서는 목이 잘린 시체가 나온다. 갱스터 커플은 저택을 점유한 채 폭력을 행사하고, 쌍둥이 형은 그 모든 스트레스를 애먼 코타루에게 토스한다. 그 사이 미용실 하루코의 배는 불러오고 마침내 모범청년 코타루마저 슬슬 정신을 놓기 시작하는데, 그리하여 밝혀지는 4번 타자는, 다름 아닌 바로 자신. 그러니까 성실한 중산층 가장을 꿈꾸며 이 모든 소동과 악덕들을 조용히 무마하려 애쓰던 주인공 코타루 (이렇게 두 번 말하는 걸 운동이라고 한다). 그 역시 하루코를 범한 가해자 중 한 명이었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코타루의 인생을 갉아먹는 친지와 불청객들이 천정의 ‘쥐’로 직유됐다면, 우직함을 미덕으로 주변을 감내한 그는 목장의 ‘소’로 은유된 셈. 단, 자신의 원죄를 들키지 않으려 뻔한 불의를 모른 척한 ‘아픈 소’. 조그만 안위를 보전하려 큰 소리 내지 않고 참아온 이 모든 ‘쥐’리멸렬의 운반책이 바로 자신이었다는 역설. 그리하여 순경의 입에서 절로 나오는 한탄 “계속 쥐만 늘어가네”

작품의 말미. 반복되는 천정의 쥐 소음에 발끈한 코타루는 문득 파출소 앞으로 뛰어나가 애먼 사방으로 방아쇠를 당긴다. 단, 영화의 내용보다 제목의 부피가 크기 마련인 일본영화 특유의 관습에 따라 분노의 난사가 아닌 허무한 발사를 한 채 퇴장하는 코타루. 그런 쑥스러운 풀 쇼트에서 슬쩍 암전되는 이 블랙코미디가 일본 영화의 희망 야마시타 노부히로의 근작이라는 점에 주목하자. 불안한 공기를 다룬 준수한 소극이지만 치열한 봉기에는 관심 없는 어떤 쿨함. 이건 그네 사회의 징후일까, 착지일까.

S#3. 2008년 서울

여기서는 서론 생략. 경제 만능의 구호와 낮은 투표율에 힘입어 자리를 꿰찬 한국의 대통령은, 옥황상제도 아닌 미국 대통령, 십이간지도 아닌 캠프 데이비드에서의 하룻밤 간지를 위해 설화가 그렇듯 소를 이용한다 (이런 뻘짓을 일컬어 북한 속담으로는 ‘소 팔아서 소고기 사먹는다’, 줄이면 ‘소탐대실’). 그러고보면 애초 빈약한 철학, 검증되지 않은 이력의 그를 대한민국의 수장으로 자리매김시킨 데는 그저 소처럼 우직한 보행이 미덕인 줄 알았던 순진한 (척) 대중의 방관이 한 몫 했다.

비슷한 고난을 겪는 마츠가네 쌍둥이를 타산지석으로 배울 점 - 이 악덕의 운반책은 우리 중산층들이었다는 사실. 제 값을 치르지 않은 채 남의 삶을 갉아먹는 서생원의 새치기도 얄밉지만 그저 자기 살림의 일보전진에 정신이 팔려 쥐새끼의 무임승차를 묵인한 우선생들도 반성이 필요한 시점. 다행히 지금 한국의 코타루들은 늦게나마 싸움을 시작했다. 그것도 알고보면 십대 소녀들이 방아쇠를 당겨준 덕. 그렇다면 심기일전. 애먼 난사가 아닌 정교한 조준을 함께 하길.

2001년에 스물다섯이었던 성호. 그 해부터,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아예 모르는 『산만한 제국』『나는 내가 의천검을 쥔 것처럼』『우익청년 윤성호』『이렇게는 계속 할 수 없어요』등등 극영화 같기도 하고 다큐 같기도 한, 실은 UCC에 가까운 - 중단편을 만들어왔다. 2007년『은하해방전선』이라는 장편영화를 만들며 나름 촉망 받는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별로 안 풀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존재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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