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봉 씨는 지난 2008년 미국산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촛불집회가 벌어진 시기, 정부에 우호적인 기사를 양산한 조중동에 대해 ‘조중동폐간 국민캠페인’ 카페를 개설해 불매운동을 벌였다. 해당 카페는 조중동에 광고를 게재한 광고주들을 목록을 게시하고 <오늘의 숙제>라며 회원들로 하여금 항의전화를 독려하는 방식으로 운동을 전개했다.

검찰은 2008년 8월 조중동 광고 불매운동을 벌인 언소주 회원 24명에 대해 업무방해죄로 기소했고, 2009년 2월 1심 재판부는 24명 전원에 대해 유죄 판결을 내렸다. 이후, 2009년 12월 2심 재판부는 카페 개설자 이태봉 씨 등 15명에 대해서는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 30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했으며 9명에 대해서는 무죄를 판결했다.

대법원은 14일 2심에서 무죄가 선고된 9명에 대해 ‘무죄’를 확정했다. 나머지 15명에 대해서는 광고주에 대한 ‘위력에 대한 업무방해' 죄에 대해서는 인정했으나, 조중동 신문에 대한 업무방해죄는 다시 심리하라며 서울중앙지법 합의부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이 14일 조선·중앙·동아일보 광고 불매운동을 벌인 언론소비자주권국민캠페인(이하 언소주) 회원들에 유죄를 선고한 원심을 파기 환송했다.

당초, 관련 언론매체들의 1보가 나올 때만 하더라도 언소주 회원들은 서로 축하인사를 나눴다. 하지만 대법원 판결문이 나오면서 분위기는 반전됐다. 대법원은 기업들을 대상으로 한 소비자 불매운동을 ‘위력에 의한 업무방해죄’로 인정했다. 또, 언소주 사건에 공동정범이 성립되기도 했다.

▲ 3월 15일자 한겨레 기사

언론의 풍경도 확연히 달랐다. ‘조중동에 대한 업무방해가 적용되지 않았다’는 점을 부각한 매체가 있는가 하면, 당사자인 조중동과 경제지들은 ‘광고주에 대한 불매운동이 업무방해’라고 강조했다.

소비자 운동에 ‘위력에 의한 업무방해’ 인정할 수 있나

이번 대법원 판결과 관련해 주목해야하는 부분은 소비자 불매운동을 ‘위력에 의한 업무방해’ 죄로 인정했다는 점이다.

“(원심은)피고인들이 벌인 이 사건 불매운동의 목적, 그 조직과정, 대상 기업의 선정경위, 불매운동의 규모 및 영향력, 불매운동의 실행 형태, 불매운동의 기간, 대상 기업인 광고주들이 입은 불이익이나 피해의 정도 등에 관한 판시 사실을 인정한 다음, 그러한 사실관계에 터잡아 피고인들이 공모하여 광고주들에게 지속적·집단적으로 항의전화를 하거나 항의글을 게시하고 그 밖의 다양한 방법으로 광고중단을 압박한 행위는 피해자인 광고주들의 자유의사를 제압할 만한 세력으로서 ‘위력’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는데, 이러한 원심의 판단은 정당하다”<판결문 중>

대법원의 판결은 ‘소비자 운동으로서 불매운동을 어떻게 전개할 수 있는가’라는 궁극적인 의문을 남긴다. 소비자 운동은 자신이 가진 구매력을 무기로 자신들의 요구를 실질적으로 반영하기 위한 집단적 행위이다. 그런데 대법원은 이런 행위를 ‘위력에 의한 업무방해’죄로 인정한 것이다. 소비자운동을 통한 불매운동을 하더라도 “광고주들의 자유의사를 제압해선 안 된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어느 선까지 가능한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 3월 15일자 '조선일보' 기사
언소주 변호를 맡았던 김정진 변호사는 <미디어스>와의 전화연결에서 “소비자 불매운동에 대해 일정 기준을 제기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지만, 판결 내용은 소비자 불매운동의 위축을 가져올 수밖에 없는 내용”이라고 지적했다. 김 변호사는 “이번 판결로 향후, 다수의 사람들이 전화를 통한 불매운동을 할 경우 업무방해죄가 성립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사실상 소비자 운동에 중요한 수단을 금지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참여연대 이지은 간사는 “대법원의 판결을 보면 소비자가 불매운동을 하더라도 홍보와 호소 이상을 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라며 “이런 식으로 ‘위력에 의한 업무방해’를 소비자 운동에 적용하면 실질적으로 소비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고 비판했다.

언소주 사건에 ‘공동정범’ 성립?

“피고인들이 광고중단 압박운동의 목적에서 만들어진 인터넷상 조직의 운영진으로서 직접 광고주들 명단을 게재하거나 광고주들 명단을 게재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서로 공모해 광고중단 압박행위를 하도록 독려하거나 광고주들의 홈페이지 운영에 지장을 초래할 수 있는 자동접속프로그램을 유포하는 등의 방법으로 광고중단 압박운동 참여자들의 개별적인 전화걸기 행위가 집단적인 광고중단의 압박이 되도록 조직한 사실을 알 수 있으므로, 결국 피고인들이 업무방해죄를 범할 의사 없이 광고중단 압박운동에 참여한 사람들을 자신들의 위력 행사에 이용한 행위는 이른바 간접정범을 통하여 그 범행을 실행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고,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피고인들의 경우 위와 같은 간접정범 형태의 범행에 대하여도 주관적 요건으로서 공모와 객관적 요건으로서 기능적 행위지배가 인정되는 이상 피고인들은 결국 이 부분 범행의 실행에 대하여도 공동정범으로서의 죄책을 면할 수 없다”<판결문 중>

언소주 사건에 ‘공동정범’이 성립한다는 대법원 판결도 따져볼 부분이다. 공동정범란, 2명 이상이 공동으로 범행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문제는 언소주라는 인터넷 사이트는 노동조합이나 시민단체와 조직적 성격이 다르다는 점이다. 강령이나 규약 등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공동정범’를 인정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또, 공동정범이라 하더라도 ‘범죄행위’와 ‘범죄가 아닌 행위’를 구분해야한다는 점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언소주 카페에 <오늘의 숙제>라는 광고주 목록을 게재한 것 자체의 행위를 범죄행위로 볼 수 있는지, 또한 실제 전화를 걸어 해당 기업의 ‘업무를 방해한 행위’와 어떻게 연결성을 규정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는 이유이다.

김정진 변호사는 “검찰에 의해 기소된 분들이 한 행위는 조중동에 광고한 리스트를 올린 것 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김 변호사는 “이분들의 행위 때문인지 광고주들에게 일정하게 항의전화가 갔고 조중동에 광고가 줄어들었다는 것이 검찰의 기소한 공소사실”이라며 “리스트를 올린 것만으로 광고주에 전화를 한 사람들 행위에 대한 책임이 있는지 의문”이라고 비판했다.

김정진 변호사는 “이 분들의 행위가 광고주 업체에 전화를 한 사람들에게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했는지도 특정할 수 없다”며 “하지만 대법원은 이들이 공모하고 공범관계에 있다고 봤다. 공동정범을 이렇게 넓게 해석한 경우는 없었다”고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 언론소비자주권 국민캠페인의 '조선, 중앙, 동아일보 광고불매운동' 선고공판을 앞둔 14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법원 앞에서 언소주 권민수 대표를 비롯한 참석자들이 광고불매운동 무죄를 주장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뉴스1

언소주 대법원 판결, 유의미한 부분은

대법원의 언소주 판결에서 조중동 신문에 대한 업무방해죄가 적용하지 않았다는 점은 유의미한 것으로 꼽힌다.

김정진 변호사는 “조중동 3개 신문사에 대한 업무방해는 무죄라는 취지”라며 “대법원은 다시 심리하라고 했지만 검찰에서 추가로 입증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며 대법원 판결에 대한 긍정적 부분을 설명하기도 했다. 참여연대 이지은 간사도 “다시 심리를 해봐야하지만 기존 형량이 줄어들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헌법 제21조에 따라 보장되는 정치적 표현의 자유나 헌법 제10조에 내재된 일반적 행동의 자유의 관점 등에서 보호받을 가능성이 있으므로, 단순히 소비자불매운동이 헌법 제124조에 따라 보장되는 소비자보호운동의 요건을 갖추지 못하였다는 이유만으로 이에 대하여 아무런 헌법적 보호도 주어지지 아니한다거나 소비자불매운동에 본질적으로 내재되어 있는 집단행위로서의 성격과 대상 기업에 대한 불이익 또는 피해의 가능성만을 들어 곧바로 형법 제314조 제1항의 업무방해죄에서 말하는 위력의 행사에 해당한다고 단정하여서는 아니 된다”<판결문 중>

소비자 운동의 대상이 넓어졌다는 점도 긍정적 요소로 꼽혔다. 이지은 간사는 “소비자 운동을 물품의 가격 등 재화에 대한 것만이 아니라 정치적 가치를 위해서도 불매운동을 할 수 있다는 인정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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