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가 현대사 프로그램 신설 등의 내용이 포함된 개편안으로 구성원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특히, 역사 프로그램을 맡았던 PD들까지 자신들의 이름을 걸고 “중차대한 역사 프로그램을 몰래 준비한 경우는 어떤 방송사에서도 없던 일”이라며 제작 중단을 촉구하고 나섰다.

KBS는 내달 1일 봄 개편을 앞두고 있다. △현대사 프로그램 <그때 그 순간> 신설 △<과학스페셜>, <역사스페셜>, <환경스페셜> 등 3대 스페셜 폐지 등이 현재까지 드러난 개편안의 내용이다. <시사투나잇> 이후 자취를 감춘 데일리 시사 프로그램의 부활은 어려울 것으로 전망되며, <추적60분>의 콘텐츠본부 복귀도 이번 개편에 포함되지 못할 것으로 알려졌다.

가장 논란이 되는 것은 프라임 시간대인 토요일 저녁 8시에 신설되는 <그때 그 순간>(혹은 <격동의 세월>, 가제)이라는 프로그램이다. <그때 그 순간>은 현대사 가운데 굵직한 사건, 사고를 다루는 프로그램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박정희 정권 18년이 우리 현대사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박근혜 정부 출범에 맞물려 생기게 되면서 ‘박정희 시대 미화’ 의도가 숨어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 KBS의 4월 봄 개편을 앞두고 신설되는 '그때 그 순간(혹은 '격동의 세월', 가제)'는 6·25 이후의 현대사 사건을 다룰 예정이나, 제작 과정과 편성 시기 등에서 석연찮은 점이 발견돼 '박정희 시대 미화' 의도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일고 있다. 사진은 박근혜 대통령과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모습 ⓒ뉴스1

8일, 그동안 역사 프로그램을 제작했던 PD 58명은 8일 연명으로 성명을 발표해 <그때 그 순간> 제작 중단을 요구했다.

이들은 성명을 통해 “<그때 그 순간>은 제작진의 공식적인 토론과 합의를 거쳐 시청자가 요구하는 역사의식을 담아내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왔던 이전 제작 방식을 따르지 않고 있다”며 “중차대한 역사 프로그램을 몰래 준비한 경우는 어떤 방송사에서도 없던 일”이라고 밝혔다.

이어 <그때 그 순간>이 2007년 ‘강○○ 녹취록’ 사건에서 윤○○ 전 PD, ○○○ 외주사 대표, 친박계 한나라당 유승민 의원 등이 ‘한나라당이 정권을 잡으면 반드시 해야 할 방송’으로 거론한 ‘현대사 다큐드라마’ 형식을 따르는 것을 지적했다.

이들은 “몰래 준비해 왔던 현대사 프로그램이 녹취록에 등장하는 기획 의도와 연관돼 있다는 의혹을 떨칠 수 없다”며 “박근혜 정부 출범과 동시에 이런 방송이 나가면 KBS는 정권에 아부하는 방송이라는 오명을 씻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이들은 “한국 현대사 같이 논란의 소지가 큰 민감한 문제를 외주제작사에 맡겨 제작하는 것은 공영방송 본연의 의무를 저버리는 것”이라며 “외주사에게 고도의 균형감과 엄정한 역사의식의 무게를 지우기에는 너무 엄중하다”고 말했다.

이들은 편성센터장과 외주제작국장에게 <그때 그 순간>의 제작 중단을, PD협회와 노조를 향해서는 공영방송 KBS의 이미지에 먹칠하고 구성원을 모욕하는 기도에 철저하고 엄중하게 대처할 것을 요구했다.

앞서, KBS 새 노조와 KBS PD협회도 성명을 통해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시기에 새로이 편성되는 현대사 프로그램이라면, 이 프로그램의 기획의도가 박근혜 대통령 개인을 위한 한풀이 프로그램일 것을 의심치 않을 것이다” “도대체 무엇을 위한 개편인가”라며 의문을 제기했다. KBS PD협회는 11일 정오 총회를 열어 향후 대응계획을 논의할 예정이다.

한편, KBS 편성국은 봄 개편을 두고 논란이 지속되자 7일 입장을 내어 “봄 개편의 핵심은 1TV의 공영성, 다양성 강화”라며 해명에 나섰다.

KBS 편성국은 “신설논의 중인 <그때 그 순간(가제)>은 외주제작국 봄 개편 기획안공모를 통해 선정된 안으로, 6.25 전쟁 이후 한국사의 주요 사건, 사고들을 다루는 내용으로 정권홍보를 목적으로 편성하는 프로그램은 아니다”라며 “<그때 그 순간>은 외주제작국 봄 개편 기획안 공모를 통해 선정됐으며 6.25 전쟁 이후 한국사의 주요 사건, 사고들을 다루는 내용”이라고 해명했다.

또한 3대 스페셜 폐지 건에 대해서는 “다큐멘터리 장르에 대한 토털리뷰를 통해 기존의 스페셜 프로그램을 통합, 프로그램 숫자를 줄이고 인력과 예산을 더 투입할 것”이라며 “중대형 기획을 통해 KBS 다큐멘터리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자 한다”고 말했다.

KBS 편성국은 “종일방송에 따른 새로운 편성 틀을 마련하고자 한다. 개편은 제작부서와의 협의를 통해 진행하고 있다”며 “이번 개편이 성공적으로 안착하여, 공사창립 40주년을 맞은 KBS가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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