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 기사에 가십이 주요 거리로 등장한 이유는 아마도 배우란 직업 때문일 것이다. 어쩌다 한 번 영화에 등장하고는 사라지는 배우란 존재는 당연히 신비감을 자극하고, 대중은 그 신비감을 쫓기 마련이다. 대중예술이 발전하고, 예능의 리얼리티가 거론될 정도로 분화되고는 그 신비감이 많이 사라진 것은 분명하지만 아직도 주로 영화에만 출연하는 배우들에 대한 신비감은 유지되고 있다.

이번 힐링캠프 출연으로 토크쇼에 단독 게스트로는 23년만이라는 한석규는 그 신비감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2000년 들어 3년간의 공백이 있었고, 이후 출연한 작품들이 흥행마저 좋지 않아 자연 그의 21세기 근황은 대중이 잘 알 수 없었다. 그래도 꾸준히 작품을 했지만 그 중에서 <음란서생>과 <눈에는 눈 이에는 이>가 체면치레를 한 정도고 나머지는 한석규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은 성적을 냈다. 그만큼 대중과의 거리는 멀어졌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다가 2011년 무려 16년 만에 티비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에 출연해서는 ‘욕 하는 세종’을 연기하면서 대중의 인기를 한 몸에 받았다. 세종의 삶 자체가 후손인 우리들에게 감동일 수밖에는 없지만 한석규가 연기한 세종은 그 감동의 삶이 만져질 정도로 실감나게 전달해주었다. 그런 한석규를 보면서 연기혼이라는 것이 실재한다고 믿게 했다. 그러나 드라마가 끝나자 한석규는 다시 티비에서 종적을 감췄다. 그리고 다시 힐링캠프에 출연했으니 그 반가움이 대단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힐링캠프에 출연한 한석규는 명색이 예능인 토크쇼에 출연해서는 정치인들보다 더 유머에 힘쓰지 않았다. 그래도 반가운 배우의 입에서 나오는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모두 귀에 솔깃하고, 별 것 아닌 말에도 웃을 수 있었다. 그나마 작가와의 첫 대면에서 욕설을 뱉은 한석규 덕분에 욕쟁이 세종이 탄생하게 됐다는 비화를 전해준 것은 그나마 토크쇼의 명분을 살려준 것이었다.

그러나 한석규와의 시간은 예능의 명분 따위는 어떠해도 상관없었다. 국민배우로 불리기에 조금도 부족함 없는 내면의 무게를 확인한 것으로 충분했다. 마침 지천명의 나이가 된 한석규는 웃음보다는 자신이 배우로 그리고 배우 이전에 하나의 인격체로서 살아온 긴 고민의 깊이를 시청자와 기꺼이 나누고자 한 기분이 들었다.

어떻게 보면 한석규가 한 말들은 소위 배우들의 정답이라고도 할 수 있다. 자기 연기에 만족하는 배우가 좋은 배우였던 기억이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자기 연기가 공해나 쓰레기가 아니었나 의심하는 마음은 분명 그 정답보다는 깊은 고민이었고, 솔직한 고백으로 다가왔다.

천만배우가 되고 싶다는 솔직하고도 통속적인 욕망도 솔직히 드러냈지만 그보다는 세월이 흐른 뒤에 사람들이 찾아보는 작품을 남기고 싶다고 말하는 한석규는 분명 평범한 배우는 아니었다. 심지어 쇼가 끝날 때쯤 이경규가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고르라며 세 가지 예를 들자 엉뚱하게도 자연이 가장 중요하다는 대답을 했다. 이경규가 든 예는 일, 행복, 평온한 마음 등 그때까지 한석규가 중요하게 거론한 것들이었다.

그러나 사실은 엉뚱한 것이 아니라 진실로 한석규가 말하고 싶었던 그의 가장 중요한 화두였다. 앞서 이스터 섬의 예를 든 것처럼 문명이 발달하면서 분명 자연은 더 나빠졌고, 자연이 상처받고서는 그 안의 인간이 행복해질 수 없다는 의미를 전달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석규가 인용한 법구경의 한 구절은 우리 모두의 화두로 삼아도 좋을 것이다.

‘녹은 쇠에서 생긴 것인데 점점 그 쇠를 먹어버린다’ 문명을 만든 인간은 더 편해지고, 풍족해졌지만 과연 그것이 없던 때보다 행복한가 묻는 한석규의 화두는 단순한 환경론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아주 작게는 개개의 인생에 대입해도 좋은 질문이었다. 평생이 슬럼프라는 한석규의 말이 왠지 법구경과 이어진다는 느낌이다. 그 마음이 명연기의 비결이었을까? 한석규는 배우로는 물론이고 내색하기 싫어하는 철학자이기도 했다. 그런 사람과 이렇게라도 간접적으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힐링캠프는 정말 어찌 기쁘지 아니할 수 있겠는가.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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