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화홍련', '놈놈놈', '악마를 보았다' 등의 개성 넘치는 영화를 연출한 김지운 감독이 헐리우드에서 처음으로 메가폰을 잡은 영화 '라스트 스탠드'를 지난 주말에 보고 왔습니다. 1980년대와 1990년대 헐리우드 박스오피스를 평정한 액션 스타 아놀드 슈왈제네거가 10년간의 주지사 생활을 마친 이후 처음으로 선택한 컴백작품이라는 점에서 더 관심이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북미에서는 지난 1월 18일에 개봉했는데, 개봉 첫 주말 흥행수익이 1,000만 불에도 미치지 못하는 628만 불에 그쳤고, 북미 흥행수익 1,205만 불을 기록하고 2월 28일 상영 종료되었습니다. 보통 개봉하면 최소 3개월 이상은 상영하는 북미 상영관의 특성, 그리고 그 넓은 북미 상영관에서 개봉한 지 40여 일만에 간판을 내린 것을 감안하면 명백한 흥행 참패입니다. 박스오피스모조 닷컴 사이트에 기록된 제작비는 4,500만 불인데 북미 흥행수익은 제작비의 3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저조한 성적입니다.

국내에서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그래도 명색이 김지운 감독 작품인데 '라스트 스탠드'는 전국관객 10만 명조차도 모으지 못하고 있습니다. 같이 개봉한 영화들 가운데 '신세계', '7번방의 선물', '베를린' 등 소위 잘나가는 영화들이 스크린을 점령하고 있다 보니 상영관 확보조차 힘든 상황인 점도 감안해야 하지만, 김지운 감독의 지명도나 비록 전성기는 지났다고는 하지만 아놀드 슈왈츠네거의 명성을 감안하면 국내 흥행성적도 초라하기 그지없습니다.

하지만 영화 자체만 놓고 보면 영화가 보여주는 재미에 비해 너무 괄시받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영화 '라스트 스탠드'를 복기해 봅니다.

내용은 상당히 단순합니다. 어차피 김지운 감독이 보여주려 한 것은 스토리의 반전보다는, 조용하고 범죄가 없어 담당 경찰관이 심심해할 정도의 한적한 서부지역 마을에 최첨단 장비로 무장한 갱단 세력이 멕시코로 향하는 국경을 넘어서기 위해 침입하면서 펼쳐지는 활극을 다루고 있습니다. 활극의 중심에는 과거 최첨단의 도시 LA에서 마약 단속반으로 활약한 화려한 경력의 경찰 아놀드 슈왈츠네거가 있습니다. 최첨단 디지털 무기에 맞서 아날로그 무기로 맞서는 모습이 마치 서부영화의 컨텍스트를 차용한 느낌입니다.

영화의 전반적인 톤이나 배경은 김지운 감독의 '놈놈놈'을 연상하게 합니다. 화끈하게 귓가를 울리는 굉음들이 난무하는 총격전 속에서 마을 중심 캐릭터들은 좀처럼 유머감각을 놓지 않습니다. 특히 아날로그 무기를 개조하여 최첨단 무기를 능가하는 마력의 무기들을 개발하는 괴짜 캐릭터 루이스 딩컴(조니 녹스빌)은 '놈놈놈'에서 송강호가 연기한 윤태구 캐릭터를 연상시킵니다.

헬기보다 더 빠른 초고속 스포츠카를 몰고 가는 악당 코르테즈(에두아르도 노리에가)와 마을에서 가장 비싼 스포츠카를 몰고 추격전을 펼치는 보안관 레이 오웬스(아놀드 슈왈츠네거)간의 옥수수밭에서 카체이스 맞대결은 색다른 시각효과를 전달합니다.

끝까지 보안관으로서 사명을 다한 레이 오웬스가 코르테즈를 응징하고 차 뒤에 매달고 끌고 오는 장면은 서부 영화에서 흔히 등장하는 장면에 대한 일종의 오마주로 여겨집니다.

김지운 감독은 영화의 캐릭터와 색깔의 일관성을 뚝심 있게 유지하면서 박력 있는 액션활극을 선보입니다. 그리고 영화 중간중간에 익살스런 장면 속에 생각지도 못한 잔혹한 장면을 집어넣는 김지운 감독만의 영악함을 유감없이 선보입니다.

관객들 중에서는 이 영화가 굳이 김지운 감독이 연출해야 하는 영화였나라면서 김지운 감독의 색깔이 드러나지 않는다는 아쉬움을 표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새로운 시스템에서 이 정도의 결과물이 나올 수 있었던 것도 김지운 감독이기에 가능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예전에 헐리우드에 진출한 홍콩 감독 오우삼의 헐리우드 데뷔작 '브로큰 애로우'(1996년)도 사실 오우삼 감독의 색깔이 많이 드러나지는 않았던 전형적인 헐리우드 스타일의 액션영화였습니다. 하지만 오우삼 감독은 이듬해 '페이스오프'로 자신의 색깔을 확연히 드러내면서 헐리우드 연착륙에 성공합니다.

흥행성적이 너무 아쉽지만 그 정도로 푸대접 받을 영화는 아니라는 게 '라스트 스탠드'를 보고 난 후의 느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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