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잭 더 자이언트 킬러>는 최근 할리우드에서 불고 있는 '동화 비틀기'의 일환으로 제작한 영화입니다. 얼마 전에 개봉한 <헨젤과 그레텔: 마녀 사냥꾼>이나 이보다 좀 더 앞섰던 <스노우 화이트 앤 더 헌츠맨> 등과 동일한 영화인 셈입니다. 아마 <잭 더 자이언트 킬러>를 기다리신 분이라면 상당수가 브라이언 싱어의 연출을 기대하셨을 겁니다. 저 역시 그랬지만 동시에 왜 이런 영화를 연출하기로 한 것인지 궁금했습니다. 제 기억이 맞다면 브라이언 싱어는 당초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를 연출하기로 했다가 하차했고, 그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잭 더 자이언트 킬러>입니다. 아시다시피 이미 매튜 본에 의해 선을 보인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는 흥행과 비평에서 모두 성공적이었습니다. 반면에 이제야 개봉을 하게 된 <잭 더 자이언트 킬러>의 결과는 어떻게 될까요? 과연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의 자리를 대신할 수 있을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안타깝습니다, 브라이언 싱어의 선택이. <잭 더 자이언트 킬러>를 보는 내내 한 가지 불만이 가시질 않더군요. 그것은 "대체 이 영화의 포지션은 어디란 말인가?"였습니다. <잭 더 자이언트 킬러>는 영국의 민화라고 전해지는 <잭과 콩나무>에서 출발한 영화입니다. 오리지널 스토리가 어떤지는 알 수 없으나 어쨌든 당대에는 아이들에게 읽어주는 동화에 가깝죠. 여기서 발전시킨 <잭 더 자이언트 킬러>는 '동화 속 동화'의 형식을 택하고 있습니다. 예부터 전해지는 이야기를 듣고 자란 아이가 실제로 하늘을 향해 치솟는 콩나무와 그것을 통해 다다를 수 있는 거인의 세계에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원작과 달리 거인이 인간계에 발을 들이면서 치열한 전투가 일어나기도 합니다.

혹시 그럴 듯하게 들리시나요? 보기 전엔 저도 그랬으나 실상은 그럴듯하지 않았습니다. 우선 놀랍게도 <잭 더 자이언트 킬러>는 예고편과 '브라이언 싱어+크리스토퍼 맥쿼리'의 조합에서 기대할 수 있던 것과는 달리 전혀 성인 취향의 영화가 아니었습니다. 한 마디로 <잭 더 자이언트 킬러>는 원작에 약간의 이야기를 더하고 CG로 표현한 21세기 영화판 동화였습니다. 그나마 더해진 이야기는 공주를 구하는 기사 따위의 전형적인 동화고, 의도적인 것인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스크린을 가득 메운 CG는 <잭 더 자이언트 킬러>를 실사와 애니메이션의 합성으로 보이게끔 만들고 있었습니다. 설상가상 퀄리티도 만족스럽지 못해 적지 않은 장면에서 배우들의 연기가 안쓰러울 정도였습니다.

돌이켜보면 지금과 같은 완성도는 원제를 <Jack the Giant Killer>에서 <Jack the Giant Slayey>로 바꿨을 때부터 눈치를 챘어야 합니다. 단어 하나의 차이지만 좀 더 가족친화적인 이미지를 어필하고 싶었던 거겠죠. 헌데 이게 또 아동을 동반한 가족 관객을 노린 영화라고 하기엔 표현의 수위가 애매합니다. 예컨대 직접적으로 보여주진 않지만 거인이 인간의 머리를 뜯어서 씹어 먹는 장면이 몇 번 있고, 거인의 몸이 터지면서 안구와 신체 일부가 여기저기 튀기도 합니다. 즉 피만 흩뿌리지 않을 뿐 <헨젤과 그레텔: 마녀 사냥꾼>과 별로 다를 게 없다는 얘기입니다. 제가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모르겠는데, 요즘 아이들은 이런 걸 보고 좋아하나요? 학부모님들은 아이들과 함께 봐도 좋을 영화로 생각이 되시나요?

그것도 그렇지만 제 입장에서는 <잭 더 자이언 킬러>를 즐길 여지가 없었습니다. 민담이든 동화든 기반으로 삼은 것이 있다고 하더라도 영화의 이야기는 거기서 더 나아가야 합니다. 새로운 이야기로 각색하거나 변형을 해서 관객의 흥미를 끄는 것은 당연한 의무라는 거죠. 하지만 <잭 더 자이언트 킬러>는 민담에 동화를 입힌 수준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과 같은 상태라면 이 영화는 숫제 <헨젤과 그레텔: 마녀 사냥꾼>이나 <스노우 화이트 앤 더 헌츠맨, 링컨: 뱀파이어 헌터>보다 더 재미없는 이야기에 불과합니다. 과연 인간이 어떻게 거인을 상대로 승리할 수 있을지에 대한 궁금증도 초반에 어떤 사물이 등장하면서 대번에 풀립니다. 그 시점부터는 이 영화에 더 이상 궁금할 게 없어지는 거죠.

정말 의아합니다. 어떻게 해서 브라이언 싱어와 크리스토퍼 맥쿼리가 이런 영화를 만들었는지 말입니다. 애초에 <잭 더 자이언트 킬러>의 연출 방향이 이런 거였을까요? 아니면 치솟는 제작비(1억 9,500만 불)을 감당하고자 관객의 폭을 넓히려고 아동 취향의 영화로 전환한 걸까요? 어느 쪽이 됐든 <잭 더 자이언트 킬러>는 북미에서도 전망이 아주 좋지 않습니다. 하도 궁금해서 방금 찾아보니 '박스 오피스 모조'의 한 기사에 '2013년의 첫 블록버스터 재앙이 될 것'이라는 표현이 있더군요. 지극히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더 심각한 표현도 소개할까요? 박스 오피스 모조는 <잭 더 자이언트 킬러>가 <존 카터: 바숨 전쟁의 서막>보다도 못한 성적을 보이면서 데뷔할 거라고 했습니다. 제작사인 워너에서도 사실상 마케팅을 포기했다고 하네요. 맙소사, 브라이언 싱어가 이런 비극의 주인공이 될 줄이야 누가 알았을까요.

★★☆

덧) 북미에서는 이미지 관리 차원에서 제목을 '킬러'에서 '슬레이어'로 바꿨는데, 영어의 노예를 양산하는 것이 목표인 듯한 나라는 왜 그대로 사용하는 걸까요? 요즘은 유치원생도 'Killer'라는 단어쯤은 다 알 것 같은데 말입니다. 하긴 뭐 이 나라가 언제 아이들의 정서를 교육보다 우선적으로 생각한 적이 있었나요? 당연한 현상에 불만을 품었네요.

영화가 삶의 전부이며 운이 좋아 유럽여행기 두 권을 출판했다. 하지만 작가라는 호칭은 질색이다. 그보다는 좋아하고 관심 있는 모든 분야에 대해 주절거리는 수다쟁이가 더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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