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홍원 국무총리 후보자가 20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 출석해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뉴스1

오는 25일 출범할 박근혜 정부의 첫 국무총리로 정홍원 후보자가 지명된 이유는 그가 30여 년간 검사 생활을 했다는 점이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법치주의’ 기조와 들어맞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국무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회 첫날인 20일, 정홍원 후보자는 이것이 사실임을 증명하듯 연신 ‘법질서 수호’를 강조하는 모습을 보였다.

한편 박근혜 당선인이 ‘법치주의’만큼이나 강조하는 것이 바로 ‘국민 대통합’이다. 그러나 20일 국회에서 진행된 국무총리 인사청문회에 참석한 정홍원 후보자의 답변 내용은 ‘국민 대통합’의 기조와 조금씩 어긋났다.

예컨대 정 후보자는 법과 원칙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취약 계층이 실정법을 어길 만큼 어려운 상황에 빠져 있음을 경시하거나, 자신이 수억 원 대의 재산을 형성하는 과정을 보며 일반인이 으레 느낄 만한 위화감에 공감하지 못하는 등의 모습을 보이며 인사청문위원들의 지탄을 받았다.

정홍원은 ‘보통 사람’인가

▲ 정홍원 국무총리 후보자는 지난 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국금융연수원 내 인수위 공동기자회견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저는 화려한 경력을 가지지 않은 보통 사람"이라며 "대통령 당선인이 중요한 자리에 저를 세우겠다고 하는 것은 보통사람을 중히 여기겠다는 뜻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뉴스1

지난 8일 국무총리 후보자 지명 당시, 정 후보자는 자신을 ‘보통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과거 저의 궤적이 ‘보통 사람’이고 마인드도 그렇다”는 것이 정 후보자의 설명이다.

민주통합당 이춘식 의원은 평균 140만 원 대의 월급을 받는 비정규직 노동자, 최저임금조차 받지 못하는 노동자, 쌍용차 사태 이후 자살한 해고 노동자와 그 가족들, 용산참사 희생자 등을 언급하며 “제가 열거한 사람들이 바로 대한민국의 ‘보통 사람’”이라고 일축했다.

이춘식 의원은 “정 후보자가 (로펌 재직 시절) 2년에 10억 원을 받으면서 ‘나는 보통 사람’이라고 발언하면 이러한 국민들이 어떤 생각을 하겠는가”라며 “좋은 대학을 나오고 사시를 패스하고 검사 생활 30년에 선관위 상임위원까지 역임하며 여기까지 오셨는데 보통 사람은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정 후보자는 “10억 원이라는 것은 잘못된 평균이고 6억 7천만 원으로 기억한다. 다시 봐 달라”며 “저는 지금도 동네 목욕탕에서 목욕하고 이발하면서 사람들의 애환을 듣기도 한다”고 항변했다.

그러나 정 후보자는 “평생 일군 가게를 지키려고 저항하던 이들이 하루아침에 목숨을 잃었다. 용산참사의 비극이 왜 발생했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상호 간에 조금씩 잘못이 있었다”고 답했다.

“노사 문제는 노사가 해결해야…‘준법 마일리지’ 필요하다”

정 후보자는 노사 분규 등 각종 사회적 갈등을 해결하는 방안으로 ‘협의’를 강조했지만, 갈등을 해결하는 방식으로 ‘불법집회’보다는 ‘준법’이 먼저여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정 후보자는 대선 전 새누리당의 쌍용차 국정조사 시행 약속 의지가 있는지를 묻는 통합진보당 이상규 의원의 질문에 대해 “기본적으로 노사 문제는 노사 간 해결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답했다. 이에 앞서 정 후보자는 “(언론인 해직 문제는) 노사가 자율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정 후보자는 새누리당 이진복 의원과의 질의응답을 통해 “노사문제의 경우 적법행위라면 철저히 보장해야겠지만 불법에 대해서는 단호히 대응해야 한다”며 “‘준법 마일리지’라는 표현이 맞는지 모르겠으나 기본적으로 법을 지킨 사람에게 메리트가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전했다.

▲ 2008년 7월 24일자 문화일보 인터뷰. 정홍원 국무총리 후보자는 이 인터뷰에서 “법을 지키면 손해라는 것, 저항이 옳다는 의식이 자리잡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선진국으로 나아가려면 법 지키는 사람이 득을 보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문화일보

이는 정 후보자의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사태에 대한 인식에서 더 나아가지 않은 것이다. 당시 정 후보자는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법을 지키면 손해라는 것, 저항이 옳다는 의식이 자리 잡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며 “선진국으로 나아가려면 법 지키는 사람이 득을 보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뜨거운 난로에 손을 대면 화상을 입듯, 법을 지키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는 것이 상식이 되어야 한다는, 이른바 ‘뜨거운 난로의 법칙’이다.

정 후보자의 이러한 인식에 대해 이춘식 의원은 “법과 원칙도 중요하지만 사회가 구조적으로 안고 있는 문제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며 “법과 원칙도 사람 존중한다는 원칙에서 출발한다”고 지적했다.

인사청문회 첫날, 정 후보자는 ‘박근혜 당선인의 의지’를 따를 것을 숱하게 강조했다. 또한 모두발언을 통해 “우리 사회가 법과 원칙,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국민 대통합’의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신명을 바쳐 헌신하겠다”며 “국민과 함께 울고 웃으며 국민의 아픈 곳을 보듬는 국민 곁의 총리가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정 후보자가 진정으로 ‘국민 대통합’의 기조를 박 당선인과 함께 실현하고자 한다면, 자신이 가지고 있던 ‘국민’의 정의를 제일 먼저 수정해야 할 것이다. ‘법과 원칙’을 지키는 사람, 한 달에 천만 원의 월급을 받는 것이 자연스러운 사람뿐만 아니라, 정부 정책에 반대하며 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사람, 기업에 맞서 싸우는 노동자 또한 그가 품어야 할 ‘국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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