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도청이 예산 절감과 효율성 제고를 명분으로 도청 산하 문화 관련 재단을 통폐합하는 과정에서 임기가 남아 있는 경남문화콘텐츠진흥원 원장에게 퇴진 요청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퇴진 압력을 받은 김보성 현 진흥원 원장은 김두관 도지사 시절 초대 원장으로 선임된 인물이다.

경남도 문화예술과장 "순순히 물러나지 않으면 직원들에 불이익" 압박

▲ 김보성 경남문화콘텐츠진흥원 원장이 지난 18일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올린 글.

김보성 원장은 지난 18일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경남도 문화예술과장이 계원들을 대동하고 와서 도청의 방침이라며 2월 말까지 원장 자리를 비워 달라고 했다”며 “순순히 물러나면 직원들은 조직 통합 과정에서 최대한 재취업시킬 계획인데 원장이 버티고 물러나지 않아서 조직 통합 업무가 지연되면 직원들 재취업도 힘들어질 것이라고 한다”고 전했다. 이어 “2월 중순부터 예산과 사업을 일체 거두어 가겠다고 했다”고도 덧붙였다.

김 원장은 “가장 황당한 발상은 ‘경남도 문화재단’과 ‘경남영상위원회’와 ‘경남문화콘텐츠진흥원’을 통폐합하겠다는 구상”이라며 “실상은 문화재단 산하 팀 조직으로 나머지 두 개를 넣겠다는 것이겠지만 참 걱정스러운 인식 수준”이라고 비판했다.

경남도 "통폐합은 효율성 차원의 결정일 뿐"

이와 관련해 경남도청 문화예술과 관계자는 이날 미디어스와의 전화 통화에서 “통폐합 논의가 나오고 있는 것이 맞다. 신문에도 나고 도의회에서도 통폐합을 해야 한다는 의견이 여러 차례 제기되었다”며 “예산 문제와 업무 효율성 측면에서 비슷한 부서에 파견된 공무원을 세 군데에서 한 군데로 모으면 효율적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경남도의 부채가 상당히 많은 상황에서 여러 도지사가 왔지만 부채 문제를 도민들이 함께 알 수 있도록 고민한 사람은 없었다”며 “부채를 안고 가며 방만하게 운영해서는 안 된다. 문화예술회관 등의 통폐합 문제도 전반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세 기관을 별개의 기관으로 두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이야기가 있는데, 예산이 있으면 그렇게 할 수 있겠지만 사정이 그렇지 않으니 통폐합을 하는 것이 나을 것”이라며 “중복되는 부분을 정리하면 예산 18억 원에서 6억 원 정도를 절감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이어 “경기도는 벌써 기관 통폐합을 했다”며 “다른 시도에서도 경남도를 시작으로 기관 통폐합에 합류할 것이다. 문의도 많이 들어오고 있다”고 전했다. “김 원장의 임기가 남아있는 것은 알고 있다. 그러나 통폐합하면 원장이 3명 근무하는 상황이 되는데, 이 때문에 퇴진 요청을 한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위상과 역할이 다른 기관들을 통폐합하는 것이 효율적인가?

▲ 경남도민일보 18일자 문화예술 출자·출연기관 통폐합 추진 논란 관련 보도. 경남도민일보 보도에 따르면 경남도청이 통폐합의 근거로 내세우는 '업무 중복'과 '효율성'의 논리에는 설득력이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통합에 대한 구체적인 상과 방식 제시도, 해당 기관과의 논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통폐합이 추진되고 있는 상황 또한 문제점으로 제시되었다.

그러나 김보성 원장은 미디어스와의 인터뷰에서 “각각의 조직이 가진 위상과 역할과 기능이 다른데 이에 대한 고민도, 통폐합 이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도 없다”며 “문예진흥을 활성화하는 문화재단 조직과 문화·영상산업을 다루는 진흥원이나 위원회는 역할과 목표가 다르고 운영 방식도 달라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원장은 또한 “예산 절감의 문제를 순수하게 고민한다면 서로에게 물어봐야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며 “(조직이) 운영비만 들고 방만하니까 정리해야 한다며 2월 말까지 나가 달라고 구두통보를 했다. 구두통보라는 건 법률적 효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결국, 홍준표 도지사의 남의 사람 밀어내기

김 원장은 작금의 상황이 홍준표 경남도지사의 취임과 무관하지 않으리라는 입장이다. 김 원장은 “이렇게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는 저간의 사정도, 신임 도지사가 와서 새 술을 새 부대에 담으려는 것도 충분히 이해한다”며 “다만 과정이 산뜻하고 명분에 합당한, 미래 가치를 담는 방식의 통폐합으로 나타나기를 기대한다”고 전했다.

민주통합당 문화정책 관계자는 “새로운 지자체장이 문화정책에 대한 비전과 목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자신만의 정책 드라이브를 추진할 가능성까지 닫아걸 필요는 없다”면서도 “지자체장이 바뀔 때마다 정책이 유동적으로 바뀌면서 기관 운영의 안정성도 떨어지는 것은 긍정적이라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아래는 김보성 경남문화콘텐츠진흥원 원장과 진행한 일문일답 전문이다.

▲ 김보성 경남문화콘텐츠진흥원 원장.
미디어스(이하 ‘미’): 퇴진 요청이 직접 들어온 것은 이번이 처음인지.

김보성 (이하 ‘김’): 그렇다. 지난 금요일에 문화재단에도 이런 식으로 통보한 것 같다.

미: 이번 일이 경남도지사가 바뀐 것과 무관하지 않다고 보는지.

김: 그런 이야기가 겉으로 명문화되지는 않았다. 기관장들을 정리하겠다는 소문은 계속 떠돌았다. 구정 전에 복합적 인사가 끝났으니 설이 지나면 기관장을 정리하리라고 막연히 짐작했다. 그럴 일도 없겠지만, 이번 문제에 대해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공식적으로 대화 창구를 만들었다거나 의견을 물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예산 절감의 문제를 순수하게 고민한다면 서로에게 물어봐야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조직이) 운영비만 들고 방만하니까 정리해야 한다며 2월 말까지 나가 달라고 구두통보를 했다. 구두통보라는 건 법률적 효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다.

미: 경남영상위원회와 경남문화콘텐츠진흥원이 통폐합되면서 경남도 문화재단 산하 조직으로 들어간다고 하는데 명분이 있는지.

김: 도청에서는 형식적인 효율성을 이유로 든다. 공무원 입장에서 예산 절감 방안 중 가장 손쉬운 것이 통폐합이다. 도의 재정이 어려우니 기관을 통폐합해 규모를 줄이고 운영비와 예감을 절감한다는 것이다. 즉, 규모가 작은 조직이 따로 존재해서 운영비와 보존성 경비가 들어가는 것은 낭비가 심하니 하나로 만들어 효율화하겠다는 이야기이다.

세 기관은 모두 도의 문화관광국 문화예술과 산하 기관들이다. 문화재단과 진흥원은 재단법인, 영상위원회는 사단법인으로, 셋 다 관광과도 아닌 문화예술과 소관 부서이다. 산하의 세 단체를 통폐합해 규모를 줄이겠다는 것이다.

효율성의 논리가 겉으로 보기에 문제가 없는 것 같지만, 우리처럼 가치판단을 하는 사람이 볼 때에는 말이 되지 않는다. 각각의 조직이 가진 위상과 역할과 기능이 다른데 이에 대한 고민도, 통폐합 이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도 없다. 문예진흥을 활성화하는 문화재단 조직과 문화·영상산업을 다루는 진흥원이나 위원회는 역할과 목표가 다르고 운영 방식도 달라야 한다.

미: 통폐합에 따른 실익이 거의 없는 상황인지.

김: 그렇다고 봐야 한다.

미: 문화예술과에서 원장이 물러나지 않으면 직원 재취업이 어려울 수 있다고 했다는데.

김: 과장이 대동한 사무관이 설명해줬다. 기관을 통폐합하면서 최대한 직원들의 고용승계를 보장하겠는데, 원장이 손수 물러나지 않으면 통폐합 업무가 진행되지 않고, 그 때문에 재취업기간을 넘기면 고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재단법인이고 법인 이사회가 존재한다. 원장에 대한 임면은 이사회에서 할 수 있다. 기관 통폐합이나 자체 해산도 이사회에서 해야 유효하다. 문화예술과에서 따로 찾아와 물러나 달라고 말하는 것은 도지사가 임명한 기관장을 대하는 최소한의 경우가 아니다.

미: 내부 반응은 어떠한지.

김: 직원들의 표정도 밝을 수 없다. 서로 다른 기관을 묶는 순간 문화재단은 문화산업과 관련된 일을 제대로 못 한다고 봐야 한다. 예술진흥을 위한 기금사업의 규모가 줄어들 것이다. 또 진흥원은 아예 문화재단 산하의 팀 조직으로 들어갈 테니 고유의 독자적 정책 기능이나 산업기능이 없어지고 독립적인 활동이 불가능해진다. 조직이 활성화되는 게 아니라 형식적인 조직이 될 가능성이 높아 양쪽 다 문제가 생길 것이다. 문화산업의 전망이 없어지는 것이다.

가뜩이나 (진흥원은) 다른 지자체에 비해 늦게 출범했다. 전국 광역마다 진흥원 조직이 있는데, 경남문화콘텐츠진흥원은 가장 늦은 시점에 영세하게 출범한 조직이다.

미: 이번 일에 대한 대응 방안은.

김: 관련 전문가들에게 자문을 받아 봐야지, 혼자 결정할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전문기관의 기관장으로 공모를 통해 선임된 초대 원장으로서 산하기관의 업무 전문성 확보하는 문제는 제 역할과 기능이기도 하다. 이 문제와 진퇴 문제를 함께 고민해야 한다.

제 임기가 11월까지 남았는데 이상한 일이다. 내가 범법자라 하더라도 이렇게 하면 안 된다. 원장을 뽑을 때에는 공모를 통해 서류를 내고, 원서를 받고, 시민들의 면접을 봤으면서 나갈 때에는 개인적으로 와서 나가라고 협조해 달라고 한다. 하지만 ‘협조’라는 규정이 없지 않나.

앞서 말했듯 진흥원 원장은 이사회를 통해 선임된 사람이니 이사회를 통해서 처리해야 한다. 내게 개인적으로 와서 나가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원칙에 맞지 않다. 문서화된 것도 아니고 이사회를 통해 법적인 권한과 기능을 가진 조직을 통해 퇴진 요청을 내려 보내는 등 공식적인 조치를 한 것이 아니라 문화재청 과장이 와서 개인 의견을 전달했다고 들은 수준에서 공식적인 반응을 보일 수 없다.

지금 질문에 답하고는 있지만 이것을 ‘공식적인 입장’이라고 밝히기도 난감하다. 현재 상황에서 퇴진 요청에 관한 서류도 없고 공식적으로 아무것도 한 게 없다. 예상은 2월에 다 했는데 답답하다. 직원들도 통합되기까지 손 놓고 놀아야 한다.

개인적으로 진퇴 문제를 결정하는 것은 쉽다. 이렇게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는 저간의 사정도, 신임 도지사가 와서 새 술을 새 부대에 담으려는 것도 충분히 이해한다. 다만 그 과정 자체가 산뜻하고 명분에 합당한, 미래 가치를 담는 방식의 통폐합으로 나타나기를 기대한다. 저 또한 뒷모습이 아름다웠으면 좋겠다. 내가 여기서 어떻게든 버텨서 살아 보려는 사람도 아닌데, 기본적으로 관행과 예우에 걸맞은 조치를 취해야지 임기가 법으로 보장된 사람에게 와서 알아서 협조해서 나가 달라는 것은 서로 예우하는 방식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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