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젤과 그레텔: 마녀 사냥꾼>은 최근 할리우드에서 불고 있는 '재해석을 빙자한 둔갑영화(?)'의 하나입니다. 앞서 링컨을 뱀파이어 헌터로, 백설공주를 여전사로 둔갑시켜 판타지를 선사한 그들이, 이번에는 제목 그대로 헨젤과 그레텔을 스크린에 마녀 사냥꾼으로 등장시켰습니다. 예전에 말했다시피 이런 설정은 제법 호기심을 자극합니다. 그림 형제의 동화인 <헨젤과 그레텔>은 다들 아시죠? 계모에 의해 숲에 버려진 어린 남매가 길을 헤매다가 과자로 만든 집에 당도하는데, 주인이 하필 마녀인 바람에 잡혀서 죽을 위기에 처했다가 우여곡절을 거쳐 탈출한다는 내용입니다. 어릴 적에는 다른 건 하나도 눈에 안 들어오고 이런 생각만 들더군요. "와~ 과자로 만든 집이라니!? 집을 뜯어 먹으면 곧 무너지겠네!"

<헨젤과 그레텔: 마녀 사냥꾼>은 과연 원작 동화를 어떻게 조립하고 있을지 궁금했습니다. 사실 이것이 이런 영화가 노릴 수 있는 최대의 흥행 포인트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관객으로서는 기존에 알던 캐릭터와 다른 이질적이고 상반되는 면모에다가, 거기서 발전하거나 파생된 이야기에 대한 기대와 호기심이 생길 수밖에 없을 것 같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약간의 변형을 가하고 있는 <헨젤과 그레텔: 마녀 사냥꾼>의 도입부는 흥미로웠습니다. 부모에 의해 버려진다는 것은 동화와 같습니다만, 헨젤과 그레텔이 아버지의 손을 잡고 숲으로 들어가게 되는 정확한 이유는 생략됐습니다. (이 부분은 <헨젤과 그레텔: 마녀 사냥꾼>의 컨셉과 이어지면서 후반부에 다다라 밝혀지게 됩니다)

도입부를 지나면 본격적으로 헨젤과 그레텔의 활약상이 펼쳐집니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좀 수상쩍어집니다. 이 영화에게 있어서 <헨젤과 그레텔>이 과연 필요했던 것인지 의문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또는 동화의 설정을 들러리로 치부한 것만 같다는 생각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다시 말해서 도입부의 이야기, 즉 유년기에 과자로 만든 집에 갔다가 마녀를 물리친 것이 계기가 되어 마녀 사냥꾼으로 성장했다는 걸 제외하면, <헨젤과 그레텔>의 이야기는 영화에서 전혀 찾아볼 수 없을 지경이 됩니다. 같은 방식을 택한 <링컨: 뱀파이어 헌터>가 지속적으로 링컨의 업적과 뱀파이어 헌터로서의 정체성을 연계하고, <스노우 화이트 앤 더 헌츠맨>이 동화와 같은 이야기를 새롭게 꾸민 것과는 또 달랐습니다.

물론 이런 차이는 <헨젤과 그레텔: 마녀 사냥꾼>의 구성이 나머지 두 영화와 다른 탓에서 온 것입니다. <링컨: 뱀파이어 헌터>와 <스노우 화이트 앤 더 헌츠맨>은 동화의 큰 이야기를 새롭게 각색했습니다. 반면에 <헨젤과 그레텔: 마녀 사냥꾼>은 동화의 이야기를 영화의 그것을 마련하는 발판으로 이용하는 데 그쳤습니다. 흡사 우리나라의 만화를 가져다가 영화로 만들었지만 고개를 갸웃하게 했던 <프리스트>처럼 말이죠. 그렇다면 과연 두 영화처럼 <헨젤과 그레텔: 마녀 사냥꾼>도 동화의 틀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새로운 이야기를 보여줄 순 없었을까?, 라고 생각하면 한편으로는 또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역시 동화가 기초적인 소재로 전락하고 만 것은 기대를 어긋난 것이라서 아쉽습니다.

동화의 극히 일부만 가져다 쓴 <헨젤과 그레텔: 마녀 사냥꾼>은 대신에 그로 인해 생긴 흠을 액션으로 메우려고 합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조금 놀라기도 했습니다. 단순히 액션영화라는 것 정도만 알고 있었는데 뜻밖에도 이 영화는 고어나 스플래터 무비에 버금가는 수위를 보여주더군요. 마녀의 저주에 걸린 남자의 몸이 터져서 살점과 내장이 여기저기 흩날린다거나, 트롤이 화끈하게 악당의 머리통을 짓밟아서 으깨버리는 장면 등이 있을 거라곤 전혀 예상치 못했습니다. 나중에야 토미 위르콜라 감독의 전작 중에 <데드 스노우>가 있다는 걸 알고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예전에 이 영화를 소개했던 것 같기도 한데, 설산에서 나치 좀비가 나타난다는 기발한 설정과 더불어 무자비한 연출이 돋보였습니다)

기대를 벗어나서 동화를 거의 저버렸다는 것은 분명 <헨젤과 그레텔: 마녀 사냥꾼>의 크나큰 과오입니다. 지금과 같은 구성이라면 굳이 동화를 차용할 이유가 없는 셈이나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이를 근거로 보자면 결국 이 영화는 전편의 유명세에 기대어 제작하는 속편처럼, 얄구진 속셈과 금세 드러날 밑천을 가지고 출발했다는 것을 시인한 것에 다름 아닙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이를 액션과 재치로 커버하려고 노력한 점은 눈에 보인다는 것입니다. 다만 이마저도 폭넓은 관객에게 썩 효과적으로 작용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딱히 긍정적이지 않습니다. <헨젤과 그레텔: 마녀 사냥꾼>에서 신선했던 것은 아무래도 동화의 캐릭터가 마녀 사냥꾼으로 활약했다는 것 정도를 제외하면 찾기 힘들거든요.

일부로부터 문제점으로 지적을 받고 있는 고증과 생뚱맞은 무기 등은 크게 거슬리지 않았습니다. 어디까지나 이 영화가 판타지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그 또한 하나의 재미있는 요소로 봐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따지고 보면 어차피 터무니없는 설정과 이야기고, 동화와도 전혀 다른 노선이니 짚고 넘어가자면 한도 끝도 없겠죠.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헨젤과 그레텔: 마녀 사냥꾼>을 옹호하고 싶은 의도는 없습니다. 전기 충격기나 인슐린 주사 등이 돋보인 것은 사실이나 특별한 역할은 없었던지라 별 의미가 없었습니다. 이 영화는 작은 도구만 반짝일 게 아니라 이야기 자체에 좀 더 힘을 실었어야 합니다. 아무리 오락영화라지만 단순히 마녀를 때려잡는 것에만 할애하는 것으로 관객을 유혹하긴 역부족입니다.

★★★

영화가 삶의 전부이며 운이 좋아 유럽여행기 두 권을 출판했다. 하지만 작가라는 호칭은 질색이다. 그보다는 좋아하고 관심 있는 모든 분야에 대해 주절거리는 수다쟁이가 더 잘 어울린다.
*블로그 : http://blog.naver.com/nofeetbird/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