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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홍원 총리 지명자는 반노동인사?[기자수첩] 국회 노동위 돈봉투 사건 재조명 기회로 삼아야
김민하 기자 | 승인 2013.02.12 11:18

박근혜 당선인과 인수위 측이 국무총리 후보자로 검사 출신인 정홍원 변호사를 지명한 이후 여러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주요하게 다뤄지는 의혹은 아들의 군 면제와 재산 형성에 대한 것이다. 그 외 몇몇 민감한 사건들에 대해 소위 ‘봐주기 수사’를 했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는데 그 중 ‘국회 노동위 돈 봉투 사건’의 경우는 그 전후맥락을 다시 한 번 상기해볼만 하다.

   
▲ 정홍원 국무총리 후보자가 임종룡 국무총리실장(오른쪽)과 함께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통의동 금융감독원 연수원 내 집무실을 나서고 있다. ⓒ뉴스1

‘국회 노동위 돈 봉투 사건’의 핵심은 간단하다. 94년 한국자동차보험(현 동부화재‧이하 한국자보) 사장이던 김택기 전 의원이 자신의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에 대해 국정감사에서 위증을 했다가 고발당할 처지에 놓이자 국회 노동위 소속 의원들에게 돈을 건넸다는 것이다. 정홍원 지명자가 당시 부장검사를 담당하고 있었던 서울지검 특수1부가 이 사건을 담당했는데 검찰 측은 ‘한국자보 측이 비자금 800만원을 조성해 노동위 소속 의원 3명에게 전달하려 했으나 실제 돈을 건네지는 못했다’는 중간수사결과를 발표한 후 김택기 사장 등 경영진 3명을 뇌물공여 의사표시 및 국회 위증혐의로 구속기소했다.

그러나 당시 검찰이 밝혀낸 것은 비자금 규모가 800만원에 그친다는 사실만이 아니었다. 검찰의 수사 기록 중에는 한국자보측이 조성한 로비자금의 규모가 63억에 달한다는 내용도 있어 세간에 더 큰 의혹의 시선을 받게 했다. 이에 대해 한겨레는 94년 2월 9일자 보도를 통해 ‘의원들 사이의 가설’을 소개하며 한국자보 비자금 중 정부여당 등 고위층 인사에게 흘러간 내용이 있어 검찰이 감당하기 어려운 부분을 발견한 것이거나, 검찰이 비자금 내역을 다 밝히고도 일종의 ‘위협용 무기’로 사용하기 위해 아껴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했다.

오늘 날에도 당시 김택기 사장의 ‘파워’가 만만찮았음을 드러내는 일화들이 전해질 정도다. 김택기 당시 사장은 1969년 박정희 정부가 ‘3선개헌’을 국회에서 통과시키는데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진 소위 공화당 4인방(김성곤, 백남억, 길재호, 김진만) 중 김진만 전 국회 부의장의 차남이다. 이 덕에 그는 막강한 힘을 자랑할 수 있었고 2000년에는 새천년민주당의 공천을 받아 태백‧정선에서 당선되기도 했다. 2008년에는 한나라당에서 공천을 받은 후 선거운동원인 김모씨에게 수표 1천만원과 현금 3천1백만원을 검은 비닐봉지에 담아 전달하다가 적발돼 공천권을 반납하기도 했으니 그 위세를 짐작할만하다 할 것이다. 따라서 당시 사건을 검찰이 제대로 수사를 못한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 김택기 당시 한나라당 총선 후보가 돈다발을 뿌리다 적발됐다는 내용의 2008년 3월 26일 한겨레 기사.

이 정도의 이야기야 검찰이 늘 치는 장난 정도로 치부하고 넘어갈 일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사건을 다시 한 번 들여다보면 또 다른 맥락의 진실이 자리 잡고 있음이 드러난다. 그것은 이 ‘노동위 돈봉투 사건’을 다시 돌아볼 때 반드시 만나게 되는 ‘김말룡’이라는 이름에서부터 찾아볼 수 있다.

당시 노동위 의원들에게 로비 자금이 전달됐을 가능성에 대해 폭로한 것으로 알려진 고 김말룡 전 의원은 사실 노동운동가였다. 1945년 조선기계제작소 노조 선전부장으로 시작해 대한노총의 조직부장으로 일했고, 1959년에는 대한노총의 부패상에 항거해 전국노총을 만드는데 힘을 보태고 1960년에는 한국노련을 결성해 초대 의장을 맡기도 했으며 1978년에는 천주교 노동사목위원회를 설립하는 등의 활동을 정력적으로 이어갔다. 이 과정에서 그는 6차례나 구속되기도 했다.

   
▲ 고 김말룡 전 의원 (사진출처 : 민족민주열사희생자추모단체연석회의)
그는 1992년에 67세의 나이로 민주당 측 전국구 의원이 되는데 이때에도 원내에서 노동관련 현안을 해결하는 데 골몰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활동의 결실로 1993년 국정감사에서는 상습적인 노사쟁의가 일어나는 기업의 사용자들을 증인으로 불러내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물론 당시의 사용자들은 근로기준법 위반 등의 혐의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하거나 거짓말을 계속 하여 곤란한 상황을 벗어나려고 하였고 상임위원장을 갖고 있는 여당은 이러한 상황을 사실상 방기했다.

이 당시 출석하였던 사용자 중 한 명이 한국자동차보험의 김택기 사장이다. 한국자보의 경우 노조원에게 조합 탈퇴를 강요하고 노조간부를 부당해고하며 주요 노조 활동가들을 ‘유령보직’으로 전환시키거나 정직을 시키는 등 갖은 노동탄압으로 악명이 높았다. 이러한 이유로 한국자보의 노동자들은 단식을 하고 1년 가까이 농성을 하는 등의 투쟁을 벌였지만 여전히 사태는 악화되기만 할 뿐이었다. 한국자보의 사용자가 국정조사에 불려 나올 만 했던 것이다.

이 상황이 답답했던 김말룡 당시 의원이 선택했던 길은 한국자보의 로비 사실을 폭로하는 것이었다. 당시 김말룡 의원은 ‘한국자보의 박장광 상무가 돈 봉투를 놓고 가 돌려보냈다’며 이후 박장광 상무가 자신을 불러 ‘다른 의원들은 다 받는데 왜 그러시냐’며 수차례에 걸쳐 로비를 시도하였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하지만 앞서 말했다시피 검찰은 이 사건에 대한 졸속적인 수사 결과를 내놓아 ‘용두사미’라는 세간의 비난을 받게 됐고 이 덕분에 한국자보는 사실상 실질적인 피해를 입지 않아 노동자들에 대한 탄압을 계속해서 이어갈 수 있게 됐다. 실제로 한국자보는 사람들의 눈이 집중되던 시기에는 노조와 합의를 통해 사태를 해결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척 하다가 관심이 사라지자 다시 탄압을 감행하는 모습을 보였다.

즉, ‘국회 노동위 돈봉투 사건’은 검찰과 권력 간의 봐주기 수사뿐 아니라 지배계급은 노동자들을 착취하고 정치권은 이를 비호하며 국가권력은 다시 이에 눈감는 악순환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사건이었다는 것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이런 사건을 졸속으로 수사한 경력을 가진 사람이 양극화 해소와 경제민주화라는 국민의 열망을 실현해야 할 새 정부의 국무총리로서 어울리는 사람인지에 대한 숙고할 필요가 있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젖먹이 때부터 지은 죄가 다 생각났다’는 정홍원 지명자의 ‘죄’에 이 사건도 포함되는지 지켜볼 일이다.

김민하 기자  acidkis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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