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은 뉴라이트전국연합·국민행동본부 등이 집회를 열고 있는 10일 서울광장 안쪽과 광장 가장자리를 따라 둥글게 늘어선 촛불집회 참가 단체들의 천막촌 사이를 인계철선으로 둘러쳤다.

그러나 정작 양쪽을 갈라놓은 건 경찰이 아니었다. 양쪽은 분위기, 문화적 느낌에서 확연히 차이가 났다. 행사장 안쪽은 엄숙함과 비장함만이 낮게 깔려 흘렀다. 이와 달리 행사장 바로 코앞에서는 시민 대여섯명이 경쾌한 개사곡에 맞춰 발랄한 댄스를 선보였고, 이를 지켜보는 시민들은 쏟아지는 초여름 햇살을 하얀 이로 튕겨내며 헤설프게 웃고 있었다. 경찰의 인계철선은 저기압과 고기압이 만나 형성된 기압골인 셈이었다.

광장을 벗어나 태평로 쪽으로 가자, 버스들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하지만 낯익은 닭장차가 아닌 관광버스들이었다. 때마침, 한나라당 쪽이 보수단체 행사에 사람을 동원했다는 뉴스가 전해져왔다.

청계광장 쪽으로 발길을 돌리자 분위기는 다시 사뭇 달라졌다. 인도 곳곳에서는 수십명씩 모여 토론회를 벌이는가 하면, 즐겁게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는 풍경이 펼쳐졌다. 젊은이 몇 명이 광우병 쇠고기 수입 반대 서명을 받는 청계광장 분수대 쪽에서는 촛불집회에 ‘나들이’ 나온 젊은 연인들이 손팻말을 든 채 밀어를 속삭이고 있었다.

▲ 10일 오후 서울 광화문 네거리를 막은 컨테이너 차단벽에 대형 태극기가 걸려있고 그 앞에서 공공운수노조 주최 집회가 열리고 있다. ⓒ서정은
광화문 네거리 쪽으로 나아가자 장대한 파노라마가 펼쳐졌다. 아침 출근길 교통대란을 불러왔던 컨테이너 박스 전면에 오후 들어 초대형 태극기 두 장이 붙었다. 경찰은 광화문을 한반도 대운하 분위기로 바꿔놓은 것도 모자라 애국적 비장미까지 연출한 것이다. 2층 2열 횡대로 늘어선 컨테이너는 모두 12개. 그 너머로, 배 12척으로 왜군을 격파했던 이순신 장군이 담장 너머를 훔쳐보듯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경찰의 컨테이너 ‘옥쇄 작전’은 세종로-태평로 축의 교통흐름을 끊어, 역설적으로 태평로 일대를 ‘해방구’로 만들어 놓았다. 왕복 10차로를 무단횡단하는 일이 땅짚고 헤엄치기보다 쉬었다. 공공운수노조는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고 동화면세점 앞 태평로 한 가운데 행사트럭을 세우고, 오후 5시부터 집회에 들어갔다.

이 단체 민길숙 조직실장은 “분신 끝에 어제 숨진 이병렬 조합원의 추도식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민 실장은 “서울광장 한쪽에 설치해놓은 분향소로 보수단체 어르신들이 찾아와 행패를 부렸는데 촛불집회에 나온 어르신들이 이들을 나무라서 불상사를 피했다”며 “촛불집회에는 적어도 세대 갈등은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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