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교육정책 중 ‘자유학기제’ 실시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자유학기제는 “열다섯 살, 꿈의 교실”이란 다큐멘터리를 통해 대중적으로 알려지게 된 아일랜드의 특별학년제 모델을 벤치마킹한 것으로, 박 당선인은 후보 당시 학생들에게 진로 탐색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중학교 과정 중 한 학기를 자유학기제로 지정하여 필기시험 없이 자치활동과 체험 중심의 교육을 펼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최근 진행된 교육과학부의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업무보고에서도 자유학기제는 주요 추진 안건으로 보고됐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자유학기제의 대상을 중학교 1학년 2학기로 지정하며, 필기시험을 아예 없애기보다는 그 비중이나 횟수를 최소화하는 방침이 보고되었다고 한다. 이 같은 흐름은 문용린 신임 서울시 교육감의 핵심공약이었던 중1시험 폐지와 맥을 같이하는 것이다. 문 교육감의 정책 실행방안을 논의한 중점과제 전담반은 서울 시내 11개 중학교를 시범학교로 선정해 중간고사를 폐지하고 수행 평가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진로지도 중심 교육과정을 진행하는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유학기제의 추진을 어떻게 봐야 할까

업무보고 이후 자유학기제와 관련된 다양한 의견이 나오고 있다.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는 교과부의 인수위 보고 당시 자유학기제의 근본 취지에는 동감하나 아직 진로교육이 제대로 실시될 수 있는 사회적 인프라가 구축되지 못했고, 중학교 1학년을 대상으로 한 사교육이 기승을 부릴 수 있기에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사설을 실었다.

▲ 1월 16일자 조선일보 사설
논쟁의 방향은 지필고사, 필기시험의 폐지 여부로 집중되고 있는 것 같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시험 폐지에 대해 강력한 반대 입장을 냈다. 지필고사가 폐지될 경우, 학생들의 정확한 수준을 파악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학력저하까지 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문화일보 역시 이러한 입장에 동조하며 조선, 중앙보다 더 나아가 의무적 자유학기제를 재고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반면 한겨레는 학생들이 다양한 체험 교육을 경험하면 학습에 흥미가 생기고 적극적인 태도로 임하게 된다는 전문가들의 의견과 학교 현장의 사례를 보도했다. 전교조 서울지부의 정책실장은 한국일보 기고를 통해 “학습능력은 자발적인 학습 의지를 가질 때 극대화되고, 공부해야 할 목표가 분명해질수록 자발적인 학습의지는 높아”짐을 지적하며 중1시험 폐지는 학력이 더 향상될 수 있는 조건이라고 주장했다.

현재로서는 자유학기제, 특히 시험의 폐지와 다양한 교육활동의 제공을 둘러싼 논의가 다소 협소하게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평가를 하지 않으면 학력이 저하될 것이라는 교총 등 보수진영의 우려에 대한 (언론을 포함한) 진보진영의 반박이 의미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새 정권, 그리고 서울시 교육청의 자유학기제 추진의 맥락과 신자유주의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교육개혁의 부당성을 짚어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

▲ 1월 16일자 '중앙일보' 사설

서동진 교수는 <자유의 의지, 자기계발의 의지>란 저서를 통해 한국사회를 뒤덮고 있는 자기계발 문화를 진단하며, 한국 사회의 신자유주의화가 더 많은 자유에 대한 열망과 민주화의 과정에서 이루어진 동시에 이 새로운 체제를 지탱하고 자본의 요구에 부응하는 새로운 인간형으로서 ‘자기계발하는 주체’가 탄생되는 과정이었음을 지적한다. 이어 그는 그 주체가 탄생되는 과정 중의 하나로 교육과정의 변화도 함께 이루어지고 있음을 짚어낸다. 지난 소위 민주정부가 추진한 교육 체제의 개편 과정은 단순히 교육의 시장화 시도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신자유주의에 적합한, 자기를 관리할 수 있고 자기계발하는 주체성 모델을 설정하고 이를 적용하기 위해 노력해온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창의성, 자율성, 수월성이란 가치와 자기주도 학습으로의 변화를 강조하며, 학생들의 적성을 찾고 이를 발전시키도록 교육이 재정립되어야 한다는 주장과 이를 위한 시도들이 ‘개혁과 혁신’이라는 이름으로 교육계와 학교 현장에서 이뤄졌다. 앞서도 지적했듯이 자기계발하는 주체성 모델의 담론이 전면화되고 그것을 위한 다양한 기술들이 적용된 것이었다.

▲ 박근혜 당선인이 지난해 11월 대선 후보시기에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교육정책을 발표하고 있다. 박 후보는 "꿈과 끼를 끌어내는 행복 교욱을 만들겠다"며 4대실천과제를 발표하고 있는 모습 ⓒ뉴스1
박근혜 당선인과 문용린 교육감의 철학 역시 이 흐름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박근혜 당선인은 후보 시절 자신의 교육 공약을 “꿈과 끼를 이끌어내는 행복교육을 만들어내는 약속”이라 지칭하고 “학생의 소질과 끼를 일깨우는 방향으로 교육을 변화시키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문용린 교육감 역시 ‘자신의 잠재력을 개발할 수 있는 경험을 갖도록 하는 것이 교육의 가장 중요한 책무성’임을 강조하며 이를 위한 정책적 실천을 강조했다. 자유학기제는 바로 자기계발하는 주체성을 만들어내는 교육적 시도의 연장선에 다름이 아니다.

시험폐지로 (물론 대입경쟁을 정점으로 한 입시경쟁 구조와 그에 따라 사교육이 팽창하고 있는 구조 속에서, 1년, 혹은 한 학기의 시험이 폐지된다고 해서 학생들이 얼마나 여유를 찾을 수 있을지는 솔직히 모르겠지만) 경쟁 속에 고통 받고 있는 학생들에게 잠시의 여유가 생길 수 있다면 다행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 시험의 폐지 여부와 그로인한 학력 변화의 문제보다 더 시급히 고민해야할 것은 자유학기제 추진의 맥락과 또 그것이 가져오게 될 효과에 대한 면밀한 검토이다. 그리고 그동안 다양하게 제기된 교육개혁의 시도들이 어떤 주체를 탄생시키고 있었는지에 대한 냉철한 돌아보기가 아닐까.

여성학자 민가영은 98년 외환위기 이후 보편화되기 시작한 신빈곤의 상황에 대해 ‘삶의 불안정성과 전망상실의 평준화’라는 특징을 갖고 있다고 지적한다. 경제 위기를 경험하고 있는 가운데 신빈곤층 외에도 많은 청소년들이 그러한 상황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신자유주의적 교육 개편으로서 자유학기제가 시행되면 학생들의 삶은 어떻게 될까?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경쟁 속에서 삶의 불안감을 경험하고 있는 그들은 이제 상실된 전망을 스스로 다시 찾아내도록 강요받지 않을까. 사회가 원하는 전망은 학생 자신이 그나마 가진 적성과 관련된 ‘생산성’있는 꿈과 진로일 것이며,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능력개발 등 ‘효율성’있는 경로를 탐색해야 할 것이다. 어떤 이는 그 꿈과 계획에 만족하고 미래를 위한 치열한 경쟁의 과정을 버티고 이겨낼 것이다. 또 어떤 이는 경쟁에서 탈락을 하고 그 원인을 노력과 열정이 부족한 자신의 탓으로 돌릴 것이다. 더욱 슬픈 것은 학교를 졸업한 이후에도 사회의 ‘생산성’과 ‘효율성’에 대한 요구는 계속 반복될 것이란 점이다.

전누리 활동가는, 몇몇 청소년 단체에서 활동을 했었고 최근에는 청소년운동과 관련된 사료를 수집·정리하고 있다. [교육 살펴보기]를 통해 교육문제와 관련 교육의 한 주체인 학생, 청소년의 입장으로 교육문제를 살펴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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