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장준하 선생이 39년만에 무죄판결을 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6부(부장판사 유상재)는 24일 1974년 긴급조치 1호 위반 혐의로 기소돼 징역 15년과 자격정지 15년 판결을 받았던 장준하 선생에게 무죄판결을 선고했다. 장준하 선생의 유족은 2009년 장준하 선생에 대한 재심을 청구했다. 법원은 재심결정을 내린 후 첫 재판이었던 이날 판결 선고까지 내렸다.

▲ 1974년 대통령 긴급조치 1호 위반 혐의로 기소돼 징역 15년과 자격정지 15년을 선고받은 고(故) 장준하 선생에 대한 재심에서 무죄가 선고된 가운데 24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고 장 선생의 아들 장호권씨가 공판을 마친뒤 나서고 있다. 재심결정을 내린 이후 첫 재판이었던 이날 판결 선고까지 모두 마무리지었다. ⓒ뉴스1
재판부는 "재심 대상 판결에서 유죄의 근거가 된 긴급조치 1호는 2010년 12월 대법원에서 위헌·무효임이 확인됐다"면서 "형사소송법 325조에 의해 장 선생에게도 무죄를 선고해야 마땅하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오늘 이 자리는 권위주의 통치 시대에 옥고를 겪은 고인에게 국가가 범한 과오에 대해 사죄를 구하고 잘못된 재판 절차로 고인에게 덧씌워진 인격적 불명예를 뒤늦게나마 복원시키는 매우 엄숙한자리"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국민 주권과 헌법 정신이 유린당한 인권의 암흑기에 시대의 등불이 되고자 스스로 희생을 마다하지 않은 고인의 숭고한 정신에 진심 어린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표한다"고 전했다.

재판부는 "재심 청구 이후 3년이 넘도록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못한 점에 대해 유족들에게 사과 드린다"면서 "이번 재심 판결이 유명을 달리한 고인에게 조금이라도 평안한 안식과 위로가 될 수 있기를 기원한다"고 덧붙였다.

유상재 부장판사는 판결에 앞서 "고인은 격변과 혼돈으로 얼룩진 현대사에서 민주적 가치를 바로 세우고자 일생을 헌신했던 우리 민족의 큰 어른이자 스승이라는 역사적 평가를 받고 있다"면서 "재심 사건을 맡은 재판부로서는 국민의 한 사람이자 사법부의 일원으로서 무거운 역사적 책임의식을 자지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유 부장판사는 "고인의 숭고한 역사관과 희생정신은 장구한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이 시대를 호흡하는 사회 공동체 구성원에게 큰 울림과 가르침으로 남아있다"고 강조했다.

검찰도 이날 장준하 선생에게 적용된 법이 위헌·무효로 결정된 만큼 공소를 유지할 수 없다며 무죄를 구형했다.

장준하 선생은 광복군 장교 출신으로 유신독재에 항거하다 1975년 8월 경기도 포천 약사봉에서 의문의 죽음을 맞았다. 장 선생의 의문사에 대해 당시 정부는 실족사라고 발표했지만 정치적 타살 의혹이 끊이질 않았다. 또 지난해 이장 과정에서 고인의 두개골에서 함몰 흔적이 발견돼 타살 의혹에 힘이 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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