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자 한겨레 3면 기사

쌍용자동차 측이 어제 노사합의를 통해 무급휴직자 455명 전원을 3월 1일부터 복직시키기로 전격 합의했다. 어제 오후 언론보도를 통해 이 소식이 전해지자 SNS 세상은 잠시 기쁨으로 술렁였다. “노사합의”와 “전원 복직”이란 단어를 본다면 그럴만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노사합의’에 나오는 노동조합은 우리가 알고 있는 쌍용차 투쟁의 주체인 ‘금속노조 쌍용차지부’가 아니라 2009년 옥쇄파업 후 협상타결 과정에서 금속노조를 탈퇴한 기업노조다. 대체로 해고자들로 구성된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의 지도부는 이 결정에 대해 어떠한 통보도 받지 못했고 생활인들과 마찬가지로 언론보도를 보고 알게 되었다. 이창근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기획실장의 경우 어제 오후 트위터에 “재판을 받느라 기자들의 전화를 거의 못 받았다. 전화기에 오랜만에 불났다. 무급휴직자 복직은 늦었지만 환영한다”라고 썼다.

또 ‘전원 복직’이란 말 역시 어디까지나 무급휴직자에 대해서만 그렇다는 것이다. 2009년 쌍용자동차 파업의 도화선이 된 2646명의 구조조정 대상자 중 희망퇴직자가 1904명이고 무급휴직자가 455명이며 협상안을 받아들이지 못해 해고된 이들은 159명이다. 나머지 128명은 영업직으로 전환되거나 자진퇴사하거나 사망한 이들이 섞여 있다. 희망퇴직자들 역시 사정은 다양하다. 파업 후 ‘희망퇴직자 52%, 무급휴직 48%’로 제출된 노사합의안에 따라 희망퇴직자 대열에 합류한 500여명이 있는가 하면 구조조정 대상자가 되었을 때 일치감치 ‘퇴직금이라도 받고 나가기 위해’ 떠난 이들도 있다.

그러나 방송뉴스와 주요 언론보도만 보면 마치 ‘쌍용자동차 문제’를 말했던 모든 이들이 돌아가게 되었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해고노동자들은 주변 지인들에게서 “너도 돌아가는 거니?”와 같은 문자를 받고 있다고 전한다. 주요 일간지들 중에서는 특히 중앙일보의 보도가 심하다. 중앙일보는 1면 기사 제목에 “일단락”을 넣고 10면 관련 기사 제목은 “국조 거론하던 쌍용차 사태 해결 / 당선인, 최대 노사현안 부담 덜어”로 가는 등 이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었고 더 이상 국정조사나 박근혜 당선인에 대한 요구가 불필요한 사안으로 몰아가기 위해 진력했다. 이는 대부분의 정치문제에 대해서는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보다 합리적인 입장을 취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기업의 문제가 걸리면 훨씬 더 편향적이 되는 중앙일보의 평소 행태에 부합하는 일이다.

▲ 오늘자 중앙일보 10면 기사. 사태에 대한 침소봉대와 당선인에 대한 배려가 눈물겹다.

이에 비한다면 차라리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보도가 해결이 안 된 문제를 거론했다고 판단할 수 있다. 조선일보는 사안을 다룬 2면 기사에서 “정리해고 159명은 포함 안돼”라는 부제를 달았고 동아일보 역시 1면 기사에서 “해고-퇴직 2063명은 제외”라는 부제를 달았다. 굳이 이 둘을 비교한다면 희망퇴직자 문제를 생략한 조선일보보다는 동아일보 보도 측이 공정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한국일보 역시 이 사안에 관해선 중앙일보에 못지않게 편향적인 보도를 선보였다. 한국일보는 ‘조중동’vs‘한겨레 경향’의 균열로 재편된 현재의 일간지 시장에서 일종의 ‘조커’ 같은 존재다. 조중동과 비슷한 보도를 하더라도 어색하지 않고 한겨레 경향과 비슷한 보도를 하더라도 어색하지 않다. 어떤 때는 두 개의 입장 사이에서 절충적인 견해를 내세우기도 하고 어떨 때는 한겨레 경향신문보다도 더 진일보한 시각을 보여주는 그런 신문이다.

그러나 한국일보는 이번 보도에서는 중앙일보와 마찬가지로 1면 제목에 해고자나 희망퇴직자의 얘기를 담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물론 적어도 기사에서는 그런 내용들을 담았다는 점에서 1면 기사에선 복직하지 못하는 이들의 얘기를 아예 담지 않은 중앙일보와는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그러나 이번 합의를 <노사 모두 윈윈했지만 경영 부담은 더 커져>라고 평가한 2면 기사는 조중동도 차마 대놓고는 말하지 못하는 기업논리의 적나라한 대변이었다. “애초 약속대로라면 사측은 무급휴직자 복직을 더 미룰 수도 있었다”라는 현실인식이나 “그렇지 않아도 인력이 남아도는 상황에서 400명이 넘는 인력을 더 떠안게 된 만큼 사측으로선 그만큼 수익악화요인이 됐다. 신차개발과 마케팅 등을 통해 어떻게든 시장점유율을 끌어올려야 하는데 현재 경기여건상 쉽지는 않아 보인다.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또다시 인력구조조정 얘기가 나올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와 같은 분석은 쌍용자동차의 비극을 부채질하고 있다는 느낌마저 준다.

▲ 오늘자 한국일보 2면 기사. 중앙일보 기사와는 다른 차원에서 놀라운 보도다.

이창근 기획실장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쌍용자동차 투쟁은 안 그래도 노노갈등이 심각한 현장이었다. 무급휴직자의 복직엔 당연히 기뻐하지만, 이를 계기로 무급휴직자와 희망퇴직자/해고자를 나누려는 시도가 나타날 것 같아 걱정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사측과 회사노조가 ‘무급휴직자 전원 복직’을 말하는 기자회견장에 나와 국정조사에 반대한다고 천명했다. 그들이 이것을 반대할 권리는 있는 것인지,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가는 전개다”라고 비판했다.

국정조사가 필요한 이유는 쌍용자동차 노동자의 비극이 여러 가지 맥락과 사건들이 겹쳐서 일어나는 문제이며 각 단계마다 해명해야 할 의혹이 있기 때문이다. 먼저 상하이차로의 매각이 결정된 과정에 대한 의혹이 있을 수 있다. 이는 참여정부에 책임을 떠넘길 수 있기 때문에 새누리당 의원들이 유일하게 관심을 보이는 부분이다.

다음으로는 상하이차가 1조 2천억 원에 이르는 가치를 지녔던 쌍용자동차를 1200억 원만 지불하고(5909억 원에 매각했지만 처음에 지불한 1200억 원 이외의 돈은 결국 지불하지 않았다) 인수한 후 기술만 빼돌리고 자본철수를 위해 한 일들을 명확하게 밝히고 책임자를 규명해야 한다. 상하이차는 법정관리 신청 과정에서 ‘회계조작’을 통해 부채비율을 높였다는 의혹이 있고 2646명의 감원이 필요하다는 결론도 이 터무니없이 부채비율을 높인 보고서의 논리에서 따라 나온 것이다. 말하자면 정리해고의 필요성 자체가 없는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의혹을 세부적으로 검증하고 문제가 있었을 경우 재발방지를 위한 대책을 마련하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쌍용자동차 같은 사례는 또 생길 수 있다. 청문회 과정에서는 일부 새누리당 의원도 이러한 문제의식에 동조하기도 했다.

또 77일 ‘옥쇄파업’의 진압과정에서도 마지막 노사협상을 기다리지 않고 당시 경기경찰청장이던 조현오의 판단으로 ‘과잉진압’을 했다는 의혹이 있다. 즉 ‘쌍용자동차의 비극’을 만들어낸 원인 중엔 적어도 기술유출, 회계부정, 기획부도, 부당 정리해고, 시위 과잉진압의 다섯 가지 문제가 있다. 이는 쌍용자동차 사측이 ‘약을 빨아서’ 무급휴직자 뿐만이 아니라 해고자와 희망퇴직자까지 전원 복직시킨다 하더라도 우리 사회 전체의 미래를 위해 한번쯤 따져봐야 할 문제들이다. 이에 대한 국정조사를 사측과 회사노조가 반대한다는 것은 월권이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회사를 나간 이들에 대한 사후관리의 차원에서도 쌍용자동차 측은 할 말이 없는 상황이다. 23명의 죽음이 발생했다는 결과론의 측면을 떠나서도 당연히 파악해야 하는 것들을 파악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한 예로 이창근 기획실장은 “해고자 159명 모두가 복귀의사를 가진 것은 아닐 것이다. 노노갈등이 심했던 투쟁이었기 때문에 회사에 정이 떨어졌거나 현장에 복귀해도 다른 동료들과 함께 기꺼운 마음으로 일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이런 저런 문제가 있기에 현실적으로 그들 모두가 복귀한다는 것도 불가능에 가깝다. 그런데 회사 측은 이들 중 몇 명이나 복귀의사를 가지고 있는지 여부를 한 번도 조사해본 적이 없다”고 비판한다.

사실 이러한 비판은 회망퇴직자들에 대한 관리에도 해당하는 지적이다. 2000여명의 희망퇴직자와 해고자 중 몇 명 정도가 복귀를 원하는 지를 조사해본 적도 없으면서 “회사형편이 어려운데 어떻게 한꺼번에 2천명을 더 고용한단 말인가?”라고 묻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한국일보 기사는 1년 생산물량이 16만대에 이르기 전(‘2교대 근무를 할 수 있을 만큼 생산물량’을 기사에서 16만대로 표시)까지는 무급휴직자를 복귀시키지 않는 것이 합의였다고 썼고 현재 12만대를 생산하고 있으므로 회사 측이 희생을 감수했다고 서술한다. 하지만 이 역시 현실과는 다르다. 무급휴직자들에 관한 합의의 내용은 1년 후 생산물량에 따라 순환근무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주간연속 2교대제를 실시한다는 것이었다. 협상타결은 2009년 8월에 이루어졌으니 회사 측은 2010년 8월에 받아들여야 했던 무급휴직자들을 만 2년 반이나 늦게 받아들이고 생색을 내고 있는 셈이다.

▲ 오늘자 경향신문 4면 기사

그러므로 한국일보의 기사는 서술의 선후가 뒤집혔다고 볼 수 있다. 노동자들은 노동시간을 줄여서라도 일자리를 나누기 위해 주간연속 2교대제를 말한 것인데 현재의 근무조건에서 주간연속 2교대를 돌릴 수 있는 생산물량(16만대)을 설정해 놓고 이에 미달하지 못할 경우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이니 말이다. 쌍용자동차가 ‘가장 잘 나가던’ 2002년에서 2003년 사이의 판매량이 14만대를 웃도는 정도였고, 2009년 정리해고 당시에는 10만대까지 떨어졌으며, 최근 12만대까지 회복된 것이라는 맥락을 상기하면 ‘무급휴직자 복귀 기준으로서의 16만대’가 얼마나 터무니없는 얘기인지를 알 수 있다.

2009년 당시 구조조정 대상으로 발표된 2646명이란 인원은 전체 노동자의 37%, 현장직 노동자의 43%에 해당하는 수치였다. 반면 경영이 어려웠다는 2009년의 판매량 10만대는 전성기 물량의 70% 수준이었다. 쌍용자동차의 경영은 악화되고 있었지만 그러한 상황의 큰 책임은 1천억 원만 지불하고 쌍용자동차의 대주주가 된 후 단 한 푼의 투자도 하지 않은 상하이자동차와 경영진들에게 있었다.

그런 이들이 자신들의 책임은 빼고 경영부진의 책임을 노동자들에게 전가하여 대규모 해고 사태를 일으켰고 ‘77일 옥쇄 파업’까지 만들어냈다. 회사 측이 추산하고 보수언론이 말하는 대로 파업의 결과 수천억 원의 손해가 발생하고 그후 몇 년이나 여전히 신차개발을 못하는 등 경영이 정상화되지 못했다면 그러한 상황을 발생시킨 이들의 책임도 물어야 할텐데 파업하고 그후에도 투쟁한 노동자들의 책임만 남았다.

노동자들이 ‘30%의 물량이 감축된 악조건’에 대한 고통분담을 회피했던 것도 아니다. 2009년 당시 파업 직전 출범한 한상균 지도부는 사측에 여러 가지 자구안을 제안한다. 그 내용은 8시간 주야 맞교대 작업을 5시간씩 3조 2교대로 바꾸자는 것, 자꾸 잘려나가는 비정규직을 보호하기 위해 노조가 비정규직 고용안정기금 12억 원을 만드는 것, 기타 급한 비용과 신차개발자금을 위해 노조가 노동자들의 퇴직금을 담보하고 대출을 하겠다는 것 등이었다. 노동시간 단축은 임금감소를 전제로 한 것이었고 심지어는 그간 회사 측이 게을리한 R&D 개발에 대한 투자자금도 노동자들이 부담하겠다고 제의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자구안은 통과되지 못했고 의심스러운 회계자료에 ‘짜맞춘’ 2646명이라는 수치가 모든 저항을 짓누르고 거의 그대로 실행되었다. 이창근 기획실장은 “생산대수의 문제로 접근하는 것은 객관적인 척 할 수는 있지만 문제의 본질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지만 경제논리로 보았을 때도 쌍용자동차의 상황이 해괴하다는 사실도 중요하다.

현재의 상황만 보더라도 한상균 전 지부장이 라디오 인터뷰에서 한 지적처럼 2009년 파업 전 5천명이 10만대를 생산하고 있었는데 현재 3천명이 12만대를 생산하는 상황에서 추가 고용이 불가능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한지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은 여러 진보언론에서 쌍용자동차가 주간 2교대를 받아들일 경우 최소 몇 백명의 추가 고용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반복적으로 증언하고 있다. 물론 3라인은 업무가 너무 많은 반면 나머지 라인은 일감이 적은 곳도 있어 온도차가 존재하지만, 문제를 해결하려고만 한다면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은 아니라는 것이다.

말하자면 쌍용자동차의 경영진과 대한민국의 공권력은 비용절감이나 회사정상화보다도 구조조정을 관철시키는 것을 훨씬 더 중요한 문제로 취급했다. 이는 요즘 MBC의 상황과 함께, 사람들은 자기 지갑에 손해가 나는 일은 결코 하지 않지만, 경영진의 경우 회사를 어딘가로 팔아먹을 궁리를 하고 있다면 충분히 회사에 손해가 나는 일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놀랍지도 않은 사례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사례를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대한민국 사회에서 기업은 현재 사회적 환경에선 노동자 개개인에겐 ‘생명줄’과도 같은 일자리를 담보로 못 할 일이 없다는 말이 된다.

이렇듯 ‘무급휴직자 전원 복직’은 ‘국정조사’를 무마하기 위해 꺼내든 카드라는 해석이 지배적이지만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 실행될지도 미지수다. “(현행 교대제로는) 일감이 없으니 또 돌아가 봤자 한진중공업에서처럼 바로 휴직을 시킬거다”라는 식의 비관론이 분명히 존재한다. 이창근 기획실장은 “현장에서는 남아 있는 비정규직들을 몰아내서 그들의 일거리를 만들거라는 소문이 파다하다”라고 전한다.

말하자면 추가적인 해고를 통해 일터에서 쫓아냈던 이들의 일자리를 보전해주겠다는 것인데, 이쯤되면 ‘눈가리고 아웅’이 아닐 수 없다. 무급휴직자 복직에 원론적 환영의 뜻을 표하며 투쟁동력을 끌고 가려는 이들의 투쟁에 계속해서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기업이 일자리를 다루는 방식과, 우리 사회가 일자리에서 쫓겨난 이들을 대하는 방식 두 가지 측면 모두에서, 쌍용자동차 문제는 우리에게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 오늘 오전 11시 인수위 앞에서 노동계 인사들이 '쌍용차 국정조사 및 해고작 복직 실시 촉구 기자회견'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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