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이어 올해도 소개하는 채널 CGV 새러데이 10 PM 코너는, 새해를 맞이한 기념인지 2013년 첫 영화로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을 택했습니다. 제가 필진으로 활동하고서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를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네요. 그것도 국내 여배우 중에서 흔치 않게 섹시한 역할에 잘 어울리는 외모를 가진 박시연이 주연한 <간기남>을 방영합니다.

■ 필름 느와르

1980년대까지 심심찮게 볼 수 있었던 장르 중에 '필름 느와르'가 있습니다. 범죄의 세계를 다룬다는 것에서는 갱스터 무비와 비슷하지만 갱스터 무비가 말 그대로 갱을 소재로 하는 것과는 달리, 필름 느와르는 간단하게 말해 더 넓은 의미에서 범죄를 소재로 하는 장르로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영어로 'Black'을 뜻하는 '느와르(Noir)'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이 필름 느와르 대개 어둡고 우울한 이야기와 분위기를 가진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이 외에도 몇 가지가 있지만 지금이 장르를 설명하는 시간은 아니니 생략하겠습니다. 최근에는 극장에서 이 필름 느와르 영화를 만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퍼뜩 떠오르는 게 그나마 1998년에 개봉했던 커티스 핸슨 감독의 <LA 컨피덴셜> 정도네요. (필름 느와르가 어떤 장르인지 궁금하시다면 강추합니다) <간기남>은 그런 필름 느와르의 스타일을 십분 차용하고 있습니다. 정직 중인 형사 선우가 함정에 빠져 살인을 했다는 누명을 쓸 위기에 처하고, 그와 함께 있는 수진이 가련한 여인상이라는 것은 필름 느와르의 공식을 그대로 따른 것에 다름 아닙니다. 다만 <간기남>은 여기에 살짝 변형을 가하고 있습니다.

■ 코미디로 풀어가는 필름 느와르

극장에서 <간기남>을 보기 시작하면서 의외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영화가 시작하자 필름 느와르일 것이라는 추측에서 벗어나 코미디에 보다 가깝게 풀어가고 있더군요. 하긴 따지고 보면 이게 또 전혀 의외는 아닙니다. 국내 시장에서 정통 느와르로 영화를 끌어간다는 게 사실 쉽지 않습니다. 느와르뿐만이 아니라 여타 장르도 현실적으로 흥행을 염두에 둔다면 코미디를 섞는 게 필수이다시피 합니다. 시종일관 진지하게 가는 영화는 적어도 최근의 상업/오락영화에서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죠. <간기남>에서 그런 역할을 하는 배우로 주인공인 박희순을 비롯해 이광수, 김정태 등이 있습니다. 이 세 사람이 한데 엮어내는 웃음이 잘 먹히고 있어서 초반에 빵빵 터졌습니다. 이것이 후반부까지 이어지면서 두 장르가 섞여 시너지 효과를 발생시는 것이 목표였을 텐데, 오히려 <간기남>은 잦은 코미디로 인해 정작 필름 느와르의 특질은 제대로 살리지 못하는 부작용을 낳고 말았습니다. 한 마디로 코미디와 필름 느와르의 배분과 배합에서 실패한 셈이죠. 한편으로는 좀 더 진지하고 우직하게 필름 느와르를 밀어붙였으면 어땠을지 하는 아쉬움도 있습니다.

■ '팜므 파탈' 박시연

박시연은 <간기남>에서 남편의 죽음을 둘러싼 의혹을 간직하고 있는 여인으로 등장합니다. 앞서 이 영화가 필름 느와르라고 한 것을 기억하고 계시고, 이 장르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고 계시다면 박시연이 연기한 캐릭터가 '팜므 파탈'이라는 것을 아실 겁니다. 팜므 파탈은 탐정과 더불어 필름 느와르에서 상징적인 캐릭터입니다. 남자를 유혹해서 자기에게 유리한 쪽으로 이용한 후에 버리는 요염하고 영악한 타입이죠. 같은 남자 입장에서 좀 얄밉긴 하지만 이 캐릭터를 외면할 수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유혹' 때문입니다. 박시연도 <간기남>에서 딱 팜므 파탈에 충실한 연기를 펼칩니다. <마린 보이>에서 아쉬웠던 것을 <간기남>에서 만회하고 있는데, 그게 아주 흡족스러운 수준은 아니라서 실망스러웠습니다.

■ 그 외 남자배우들

<간기남>에서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박희순, 박희순과 함께 간통을 전문으로 하는 사무소의 동료를 연기한 이광수, 박희순의 친구이자 함께 형사로 활동하는 김정태는 모두 코미디 연기로 제 몫을 톡톡히 합니다. 박희순은 어떤 역할을 맡겨도 실망을 안기는 배우는 아닌 것 같습니다. <작전, 의뢰인>과 같은 영화에서는 제법 진지한 역할도 멋지게 소화했고, <간기남>에서는 진지함보다는 재치와 유머가 넘치는 연기도 능청스럽게 해냈습니다. 김정태는 뭐 더 이상 말할 것도 없는 배우죠? 살벌한 연기부터 찌질한 연기까지 뭘 맡겨도 해내는 배우라는 것은 <간기남>에서도 유효했습니다. 셋 중에서 비중은 제일 낮지만 코미디의 강도로 치자면 1등입니다. 박희순과의 호흡도 좋았고요. 요즘 <런닝맨>에서 대활약하고 있는 이광수는 약간 바보스러운 캐릭터를 연기했습니다. 그와 동시에 암기에 천재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기도 해서 박희순에게는 중요한 존재입니다. 원래 이광수가 코미디 연기에 능하고 그런 역할을 자주 맡았던 터라 <간기남>에서도 변화는 없습니다. 언젠가 아주 진지한 연기를 하는 걸 한번 보고 싶네요.

영화가 삶의 전부이며 운이 좋아 유럽여행기 두 권을 출판했다. 하지만 작가라는 호칭은 질색이다. 그보다는 좋아하고 관심 있는 모든 분야에 대해 주절거리는 수다쟁이가 더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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