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윤광은 칼럼] 난파된 클린스만 호의 잔해가 불타오르고 있다. 이번 주 영국 언론 ‘The Sun’의 보도로 부상한 축구 대표팀 손흥민과 이강인의 다툼 설은 국내 언론들의 후속 보도로 기정사실화되었다. 급기야 ‘디스패치’는 이강인이 손흥민의 얼굴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는 다소 충격적인 얘기를 전했다. 소문의 진위는 아직 다 가려지지 않았고, 이강인 측은 이 보도를 반박하는 입장을 냈다. 불화설의 세세한 진위를 따지는 것보다는 이 소식이 아시안컵 실패 이후 대표팀에 대한 여론 위에 얹히고 있는 맥락을 살피는 것이 생산적일 것 같다.

아시안컵 대회 기간부터 축구 팬들 여론은 한 방향으로 통일돼 있었다. 대표팀의 졸전에 대한 책임을 클린스만 감독과 정몽규 축구협회장에게 물으며 비판을 일점사했다. 여기엔 지난 월드컵 이후 감독 선임 과정부터 클린스만을 거부하는 여론이 강했지만, 정몽규 회장이 선임을 강행했고, 감독이 된 후에도 해외에 머무는 등 클린스만의 근무 태도가 꾸준히 논란이 된 배경이 있다. 아시안컵 탈락 역시 클린스만의 무전술과 불성실, 그런 인물을 데려온 정몽규 탓이라고 만장일치로 합의돼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대표팀 내분 소식이 터진 것이다.

위르겐 클린스만(독일) 국가대표팀 감독,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 (사진=연합뉴스)
위르겐 클린스만(독일) 국가대표팀 감독,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 (사진=연합뉴스)

축구 팬들은 처음엔 ‘The Sun’ 기사가 ‘찌라시’일 것이라고 사실을 부정했다. 국내에서도 잇달아 보도가 떠서 도저히 부정할 수 없게 되자, “핵심은 그게 아니다”라고 방향을 선회했다. 정몽규와 클린스만을 문책하는 것에 집중해야지 초점이 희석돼서는 안 된다는 논리다. 손흥민 대 이강인 불화설은 축협이 선수들에게 책임을 떠넘기려는 ‘언플’이니 놀아나지 말라는 것이 다수 축구 팬들의 입장이다. 하지만 문제의 핵심을 그렇게만 규정하는 건 자의적인 정리이고 지나친 단순화일 수 있다.

클린스만 감독의 직무 수행에 문제가 있다는 건 이론의 소지가 없어 보인다. 클린스만과 축협이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하는 주체란 건 분명하다. 하지만 그들이 문제에 책임을 지는 것과 대표팀에 관한 모든 문제가 그들 탓이라고 환원하는 건 다른 이야기다. 대표팀을 비판하는 건 문제에 대응하는 원인을 찾아내서 교정하기 위함이다. 그래야 잘못을 반복하지 않고 더 알찬 열매를 거둘 수 있다. 만약 다수 언론 보도와 같이, 대표팀 주장과 나이 차이가 큰 후배가 멱살잡이를 벌이고, 나아가 팀 내부에 파벌이 존재해 갈등을 빚는 게 사실이라면 정상적인 경기력이 발휘될 리가 없다. 단체 경기의 팀 조직력을 직접 저해하는 변수다.

이런 상황을 묻어둔 채 더 나은 팀을 만들 수 있을까? 실제로 다툼이 벌어진 다음 날 치러진 요르단 전은 이전 경기들에 비해 압도적으로 무기력한 경기 내용이 나왔다. 팬들과 언론은 이 패인을 모조리 클린스만의 전술 부재에서 찾았지만, 불완전하고 부정확한 진단이었던 셈이다. 만약 선수단 내분이 공론화되지 않았다면 갈등은 숨겨진 채 곪아 들어서 대표팀을 심층에서부터 와해시켰을 것이다. 다수 보도에 따르면, 몇몇 선임급 선수들이 이강인의 요르단 전 명단 제외를 요청하려 했고, 앞으로 이강인을 제외하지 않으면 대표팀 차출을 보이콧하겠다는 의사를 전했다고 한다. 사태의 심각성을 알 수 있다.

지난 7일(한국시간) 카타르 알라이얀 아흐마드 빈 알리 스타디움 열린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요르단과의 준결승전 당시 손흥민과 이강인 모습. (서울=연합뉴스)
지난 7일(한국시간) 카타르 알라이얀 아흐마드 빈 알리 스타디움 열린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요르단과의 준결승전 당시 손흥민과 이강인 모습. (서울=연합뉴스)

요는 불화설이 축협의 ‘언플’이냐 아니냐가 아니다. 최초 보도는 영국에서 나왔고 축협이 굳이 영국 언론을 통해 ‘언플’을 할 개연성이 없다. 설령 뒤이어 국내 보도가 쏟아지는 과정에 ‘언플’이 개입했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과정이야 어찌 됐건, 대표팀에 관해 이만한 문제가 불거져 나왔는데 “핵심”은 그게 아니니까 묻고 가자는 건 비현실적이고 비논리적인 태도다. 축협과 감독의 책임은 책임대로 따지고, 선수단 문제는 또 그것대로 논의하면 되는 것이다. 대표팀을 둘러싼 문제의 “핵심”이 무엇인지는 정의하기 나름이겠지만, 선수단 내분이 간과할 수 없는 수준으로 치달아 하나의 논점이 되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가 없다. 일각에선 선수들 불화마저 클린스만 책임이라고 성토하고 있다. 물론 라커룸을 단합시키는 건 감독의 역할 중 하나이지만, 선수들 역시 성인 대표팀의 일원으로서 팀워크를 실천할 책임을 지고 있다는 걸 외면해선 안 된다.

대표팀 선수들을 향한 팬들의 애정은 뜨겁다. 한국을 대표하는 해외파 선수로서 많은 팬을 거느린 손흥민과 이강인이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호명되었으니 크게 당혹스러울 것이다. 선수들 허물을 들추기보다는 최종적인 책임을 진 주체를 소환하고 싶을 것이고, 팬들 의중을 대변하며 앞가림하는 ‘축구 유튜버’들도 “핵심은 그게 아니다”라면서 정몽규와 클린스만을 부르짖는다. 하지만, 선수들이 몸담은 대표팀 환경을 정비하기 위해서라도 상황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6일(현지시간) 카타르 알라이얀 아흐마드 빈 알리 스타디움 열린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4강전 한국과 요르단 경기에서 0-2로 패배한 대표팀 선수들이 아쉬워하고 있다. (알라이얀=연합뉴스)
6일(현지시간) 카타르 알라이얀 아흐마드 빈 알리 스타디움 열린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4강전 한국과 요르단 경기에서 0-2로 패배한 대표팀 선수들이 아쉬워하고 있다. (알라이얀=연합뉴스)

요는 현 상황이 단순한 가십성 이슈로 전락하거나 특정 선수에게 비난이 전가되는 것이 아닌, 대표팀의 ‘팀워크’라는 정제된 토픽으로서 미래지향적 시제를 통해 다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선수들 사이에 골이 파여 있다면 선수단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자질과 이력을 지닌 새로운 감독을 선임하는 것이 아시안컵 실패에 대한 구체적 수습책이 될 수 있다. 대표팀은 이미 붕괴된 상태다. 지금 상황은 “같이 지내다 보면 남자들끼리 그럴 수도 있는 일” 수준을 넘었다. 그걸 인정해야 재건에 착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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