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일 오전 서울 중구 정동 민주노총 대회의실에서 열린 비상시국회의 기자회견에서 민주노총 비상대책위 지도부를 비롯한 참석자들이 정부의 조속한 노동현안 해결을 촉구하고 있다. 이날 비상시국회의 기자회견에서는 오는 27일 영남권 노동자대회를 시작으로 노동현안 문제가 완전히 해결될 때까지 투쟁을 멈추지 않겠다고 밝혔다. ⓒ뉴스1

4일 오전 11시 민주노총 13층 대회의실에서 ‘정리해고 비정규직 노조파괴 긴급대응 비상시국회의 기자회견이 열렸다. 기자회견에는 진보정당, 노동조합, 시민사회단체를 총망라한 대표적 인사들이 참여했다. 이들은 새 대통령이 선출된 후 수 명의 노동자와 청년이 자살하는 엄중한 시국에 맞서 정부와 박근혜 당선인에게 노동현안의 해결을 촉구했다.

진보진영의 원로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은 “이 늙은이가 앞장서서 목숨 걸고 싸울 것”이라고 천명했다. 진보정의당 노회찬 공동대표는 “대선이 끝나면 환노위를 열어준다고 말했지만 열리지 않고 있다”며 환노위 개최와 쌍용차 국정조사를 위한 동료 국회의원들의 관심을 촉구했다. 이들은 기자회견문에서 “매주 금요일마다 대한문에서 촛불집회를 개최할 것”이며 1월 5일부터 “다시 희망 만들기” 버스를 출발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특이한 점은 몇 갈래로 나뉜 여러 진보정치세력 대표들이 ‘비상대책위원장’인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민주노총 백석근, 통합진보당 강병기, 진보신당 김일웅이 모두 스스로를 비대위원장이라 소개했다. 진보정의당 공동대표 노회찬 의원 정도가 예외였으나, 진보정의당 역시 대선 이후 제2창당을 준비하는 과도기적인 세력이다. 진보정치세력은 이합집산 할 뿐만 아니라 아직까지 내부의 안정도 이루지 못한 셈이다. 기자회견에 나오지 않았으나 민주통합당마저 비대위원장을 선출해야 하는 상황이란 걸 생각하면, 야권 전체가 혼돈의 시기를 맞이했다 볼 수 있다.

“더 이상 죽이지 마라!”고 절박하게 외쳐야 하는 비상시국에 야권 정치세력들이 비대위원장을 내세워야 하는 위기를 맞고 있다는 것은 역시 야권이 격변하는 정치현실에 적응하지 못함을 드러내는 일이라고 하겠다. 노동이 극단적으로 배제되는 시기에 민주당에든 진보정당에든 노동정치세력을 의미 있게 형성하려면 이러한 난맥상을 겸허하게 인정하고 섣부른 ‘새 포장’이 아닌 근기 있는 활동이 가능한 길을 걸어가야 할 것이다.

파도에 매번 뒤집힐 게 아니라 파도를 타고 넘어가는 정치력을 발휘해야 비대위원장의 난립과 연속을 막을 수 있다. 집권당 원내대표가 “(노동자들이) 철탑에 왜 올라갔는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시대의 투쟁주체는, 임시적인 권한을 갖는 비대위원장보다 더 책임 있는 것이어야 한다. 노동정치세력의 재정비 문제에 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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