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춘효 칼럼] 올해 언론계를 관통하는 핵심 쟁점은 대통령의 명예훼손 혐의다. 검찰이 최고 선출 공직자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혐의로 언론사와 언론사 대표 그리고 기자의 사무실과 집을 압수수색했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검찰이 선출될 권력 후보자를 검증 보도한 언론을 명예훼손 혐의로 수사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 언론사에 전무후무한 일이다. 결국, 이에 관한 판단은 법정에서 가려질 것이다.

미국 사법부는 선출직 공무원에 대한 명예권보다 표현의 자유를 더 우위에 두고 있다. 언론이 제공하는 정보가 국민의 합리적 선택권을 보장하는 공적 기능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사법부도 유사하다. 언론의 자유가 생존할 수 있는 ‘숨 쉴 수 있는 공간’의 확보가 더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법원 판단에 큰 차이점이 있다. 미국은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한 입증 책임을 1964년 이후부터는 공인이 진다. 하지만, 한국은 소송을 당한 언론사가 입증 책임을 진다. 이로 인해 한국 언론의 고위공직자 업무에 대한 비판 검증 보도가 미국보다 소극적인 경향성을 보인다.

사실, 미국과 한국의 언론 제도는 몇 가지에서 비슷하다. 양국 모두 광고주가 언론사의 재원을 담당하는 상업주의 방식이다. 또한 언론사가 경영과 제작을 분리 운영하고 있으며 기자들의 전문가주의를 강조한다는 점도 유사하다. 제도의 유사점은 외부 평가 점수로도 확인된다. 2023년 ‘국경 없는 기자회’가 세계 180개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언론 자유 지수에서 미국과 한국 순위는 각각 45위와 47위다. 중상위권이다.

유사한 언론 운영 구조를 가진 미국과 한국의 공인에 대한 사법부의 명예훼손 판결 경향성의 비교 분석을 통해, 현재 검찰의 언론에 대한 강압적 수사에 대한 판결을 예상해 보고자 한다.

설리반 vs 뉴욕타임스 사건 = 미국 남부 앨라배마주의 선출직 공무원인 설리반은 미 동부 뉴욕주에 있는 뉴욕타임스사를 명예훼손 혐의로 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앨라배마 인권 운동가 들은 1960년 3월 29일 <뉴욕타임스>에 유료 의견광고를 냈다. 내용은 남부의 흑인에 대한 탄압에 항의하고 인권운동 지지를 호소하는 한편 마틴 루터 킹의 법정 변호비 지원을 호소하는 것이었다. 설리반은 일부 내용이 허위이고 부실한 정보를 담고 있으며, 이는 자신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주장했다.

이 소송에 대해 앨라배마주의 대법원은 설리반의 손을 들어줬다. <뉴욕타임스>는 그에게 50만 달러의 손해배상금을 지불해야 했다. 이 판결은 기존 판례를 따른 것이었다. 1960년대 초반까지 공무원의 명예권이 언론의 표현의 자유보다 우위에 있던 시대였다. 당시 공직자들은 비판적인 언론 보도를 막기 위해 명예훼손 소송을 통해 언론의 비판 보도에 재갈을 물렸다. 하지만, 4년 뒤 미연방 대법원은 관습의 재갈을 풀어버렸다.

설리반 판결 내용=미연방 대법원은 이번 판례를 통해 최초로 공인의 명예훼손에 대한 기준을 제시했다. 대법원은 판결문을 통해 “공무원이 자신의 공직 행위를 비판하는 사람들에 대해 제기한 명예훼손 소송에서 언론과 언론에 대한 헌법적 보호가 국가의 손해 배상 결정 권한을 제한하는 범위를 처음으로 결정해야 한다”라고 명기했다. 제한 기준은 ‘공인’(a public figure)과 ‘현실적 악의’(actual malice) 개념 도입이다. 공무원과 관련된 경우 또는 공적인 사항에 대해선 국민이 공공 문제를 결정하고 해결할 수 있도록, 충분한 정보가 제공되어야 하고, 이를 위해선 표현의 자유를 반대하기보다는 표현의 자유에 찬성하여 의혹을 해결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특히, 다수 의견에서 브래넌 판사는 공공의 관심 사안에 관한 토론은 제한받지 않고, 건강하고, 폭넓게 공개되어야 하며 정부와 공인에 대한 신랄하고, 날카롭고 종종 인내하기 불편할 정도의 예리한 공격을 포함한다며 현실적 악의 기준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즉, 공무원이 업무 관련 행위에 대해 명예훼손 혐의를 주장하기 위해선 보도된(또는 유포된) 내용이 실제적 악의를 담고 있다는 것을 공인이 증명해야 하고, 동시에 단순한 과실이나 부주의 표기는 실제적 악의나 악의 증거가 아니라고 덧붙였다.

1960년 3월 뉴욕타임즈에 실린 전면광고 "그들의 주장에 귀를 기울여라"(Heed Their Rising Voices)
1960년 3월 뉴욕타임즈에 실린 전면광고 "그들의 주장에 귀를 기울여라"(Heed Their Rising Voices)

설리반 vs. 윤석열 명예훼손 판단? = 한국 대법원도 내용상으론 설리반 판결의 기준을 받아들이고 있다. 공인과 사인을 구분해 언론의 비판 수위를 폭넓게 인정하고 있으며, 진실이라 믿을만한 상당한 객관적 증명이 있는 경우, 고위공직자의 명예훼손보다 언론의 자유를 더 인정해주고 있다.

하지만 입증 책임을 미국처럼 원고인 공직자에게 요구하지 않고, 명시적으로 ‘실제적 악의’ 개념을 받아들이고 있지는 않다. 즉, 언론의 공인에 대한 폭넓은 비판은 수용하지만, 현실적 악의 (또는 고의성)을 갖고 보도했다고 공직자가 주장했을 경우, 이에 대한 입증 책임은 언론사가 증명해야 한다. 언론사의 증명 과정에는 사실 확인을 위한 다양한 노력도 포함된다. 검찰이 최근 언론사와 기자들의 취재 경위를 들여다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윤석열 대통령 명예훼손 사건이 법정으로 옮겨졌을 경우, 가장 쟁점이 되는 부분은 언론사가 사실 확인을 위해 얼마나 노력했느냐가 관건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김경호 제주대 교수는 2011년부터 2020년까지 언론을 상대로 제기한 명예훼손 소송 중 대법원까지 올라온 13건(표현의 자유 포함 2건)을 분석했다. 빈도가 높은 원고의 유형은 검사로 군검찰 1건을 포함하면 총 6건이며 국회의원이 3건으로 뒤를 이었다. 쟁점이 된 언론 내용은 △변호사 수임 비리 검사 연루 △대통령실 민정수석 작성 인사파일 △광우병 위험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 △BBK 주가조작 △떡값 검사 △언론사 임원 성 상납 △세월호 사건 당일 대통령 7시간 행적 등이다.

대법원은 최종 판결 13건 중 11건은 언론에, 2건은 공직자에 승소 판결했다. 대법원 판단 근거는 △명예훼손 언론 보도 내용이 정책 결정과 공적 업무 수행 등 공적 관심사에 해당한 것인지 △보도 내용에 대한 진실 증명이 있는지, 없는 경우라면, 그 내용이 진실이라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었는지 △보도된 내용이 의견 표명 혹은 사실의 적시인지 △문제 된 내용이 경멸적이고 악의적인 인신공격에 이르렀는지 △집단 표명이 구성원 공직자 개개인을 특정하여 명예훼손에 이르는지 그리고 △ 진실이라 믿을만한 상당한 이유의 입증 책임을 원고에게 물어야 하는지 등이었다. 특히, 고위공직자가 승소한 2건의 사례는 언론 보도의 진실성에 대한 적절하고 충분한 취재가 이뤄지지 않은 점과 공직자의 인격권을 침해하는 표현을 한 경우다.

정리하면, 미국은 1964년 설리반 판결을 통해 공인에 대한 언론의 폭넓은 표현의 자유를 인정하는 판결 기준을 제시했지만, 한국은 아직 그 기준이 명문화된 적이 없다. 이에 따라, 검찰의 윤석열 대통령 명예훼손 사건의 법리적 쟁점은 언론사(기자)가 공인인 윤석열 후보자에 대해 제기된 의혹에 대해 진실성을 확인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느냐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언론사가 윤석열 후보를 떨어뜨릴 악의적인 목적을 갖고 취재 보도했다고 주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법원이 명시적으로 공인에 대한 현실적 악의를 인정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위 칼럼은 노동인권저널리즘센터 뉴스레터 'LACY 톡톡'에 게재됐으며 동의를 구해 미디어스에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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