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미. 있을 유, 아름다운 미. 이렇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름을 가진 여성은 20대 초반 어느 날 개그맨 ‘이영자'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살기로 결심합니다. 그 누구보다 여린 마음을 가진 여성은 이름을 바꾸면서 자신의 원래 성격과 정반대의 모습으로 살아야 했습니다. 이유미가 아닌 TV 속 개그우먼 이영자는 비교적 큰 체구와 목소리를 가져 웬만한 남성 연예인들을 압도하는 장군 이미지가 강했습니다. 또한 전성기 당시 많지 않음 나이임에도 남다른 체격 때문에 ’금촌댁네 사람들' 여러 시트콤에서 항상 꼬불거리는 파마에 몸빼바지를 입고, 남편과 아이를 거두는 억척스러운 이 시대 어머니 역할도 자주 했었죠.

다이어트를 둘러싼 논란으로 잠시 연예계를 떠나기 전, 이영자는 그 누구보다도 잘나가던 최고의 개그우먼이었습니다. 그동안 드라마, 코미디를 막론하고 이영자처럼 남자들을 신체적으로 휘어잡는 강한 여성 캐릭터가 흔치 않았기에, 여타 개그우먼들보다 각광을 받았던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실제 이유미를 알 턱이 없는 사람들은 화면 속 외양에서 보여지는 '강한' 이미지의 이영자를 보고, 오직 그 틀로 '이영자는 이런 사람일 것'이라고 판단하기 시작했죠.

대중이 생각하는 이영자는 언제 어디서나 강하고, 목소리 크고, 그래서 남에게 결코지지 않을 것 같은 억센 여장부였습니다. 그래서 개그우먼 이영자는 자신을 둘러싼 기대치를 충족시키기 위해 이전보다 더 강한 의지를 보여줘야 했습니다. 전성기 시절 남의 말은 듣지 않는 '독불장군'으로 살아왔다는 과거의 치부까지 서슴지 않고 털어놓는 그녀입니다. 당시 대한민국에서 최고로 잘나가는 개그우먼의 타이틀을 유지하면서도 여자로서 예뻐 보이고 싶다는 당연한 욕구, 그리고 이제는 몸이 아닌 말로 웃겨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결국 그녀 스스로를 지치게 한 것이지요.

지금으로부터 46년 전 충남 아산 온양에 위치한 생선가게 딸로 태어난 이유미는 어릴 때 엄마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컸다는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장사의 달인이었던 유미의 엄마는 유미보다 아버지와 오빠에게 더 깊은 애정을 쏟았고, 자연스레 어린 유미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 지독한 생선냄새보다 엄마의 냉담과 무관심이 빚어낸 상처가 몸에 깊숙이 배이곤 하였습니다.

학력고사라는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있는 딸로 하여금 생선 배달을 시키던 어머니에게, 어른이 된 유미는 아직 서운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였습니다. 그래도 집안의 기둥인 자신이 무너지면 가족들이 힘들어하기에 아무리 힘들어도 다시 오뚝이처럼 일어나 먼저 웃어 보이는 영자가 된 유미입니다.

하지만 더 크게 웃어보아도 어릴 적 부모의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해 결핍된 자존감은 쉽게 채워질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영자는 아직까지도 누군가가 자신에게 잘해주면 어색함이 앞선다고 합니다. 자존감은 낮고 자존심은 높은 탓에 어느 누구로부터 따뜻한 사랑을 받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죠. “이젠 부모님이 줬던 삶을 끝내고 벗어나야 하는 내 삶인데 아직도 그게 남아 있는 것 같다"며 참았던 눈물을 흘리는 이영자의 슬픈 고백이 많은 시청자들의 탄식을 자아낸 것은 그런 이유에서입니다.

KBS <승승장구-이영자 편>에 몰래 온 손님으로 출연한 김숙과 권진영은 실제 이유미를 두고 강해 보이는 겉모습과 달리 눈물 많고 마음 여린 천상여자라고 증언하였습니다. 2008년 세상을 뜬 친구 고 최진실의 자식들 환희와 준희에게 큰 버팀목이자 좋은 이모가 되어주는 이영자이기도 합니다. 10년 전 본의 아니게 대중에게 실망을 안겨주고 연예계를 떠나야 하는 일도 있었지만, 오히려 이영자는 자신이 잘나서 잘된 게 아니라는 깨달음을 준 혹독한 시련기가 고마웠다고 합니다. 만약 최고의 개그우먼으로 승승장구하였다면,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주위 사람들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도 없이 성공을 향해 내달리는 괴물이 되었을 것이라구요.

마지막 자신에게 보내는 편지 시간에, 이영자는 자신에게 실패하고 자신감이 떨어져 좋다고 고백합니다. 앞으로 너의 삶은 여기서 끝이 아니라는 메시지도 있었습니다. 잠시 연예계를 떠나게 되었지만 지난 인생을 돌아보는 반성의 기회를 통해 이전보다 성숙한 모습으로 다시 대중의 곁에 돌아올 수 있었던 이영자는, 말년에 송중기 같은 멋진 남자를 만나 럭키하게 살 수 있을 것이라는 재치 있는 마무리로 시청자들을 안심시킵니다.

한때 머리로, 말로 웃기고 싶었지만 이제는 몸으로 웃기고 싶다는 이영자. 이영자처럼 머리, 마음, 몸 전체로 웃음을 넘어 시청자들에게 감동을 선사하는 개그우먼은 흔치 않습니다. 어떻게 표현할 줄 몰라 때로는 거친 말을 하지만, 속정은 많았던 우리 부모님들처럼 넓은 가슴으로 남다른 고민으로 끙끙 앓고 있는 상담자를 안아줄 수 있는 이는 이영자뿐이니까요.

그녀 스스로 자존감은 낮고 자존심이 높다고 고백하지만, 어린 시절 가족에게 받은 상처를 뒤로하고 가족을 위해 발 벗고 나서며, 오랜 친구였던 고 최진실의 아이들을 지금까지도 따뜻한 사랑으로 챙겨주는 이영자야말로 누군가에게 진실한 사랑을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고 생각됩니다. 그녀의 바람대로 꼭 송중기처럼 멋진 남자 만나 행복하길, 오랜 세월 대중에게 따뜻하고 행복한 웃음 안겨주는 개그우먼으로 남아주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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