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추적자> 방영 전 제작관련 내용을 들어보니 주연배우가 손현주, 김상중 등으로 연기력에 대해선 보지 않아도 저절로 안심이었으나, 스타성 있는 젊은 배우 없이 게다가 그런 묵직한 내용으로 시청률이 잘 나올 수 있을까는 의문이었습니다. 작품성보다 시청률로 판명되는 상품성을 먼저 따질 수밖에 없는, 시청률 하나로 모든 것이 재단되는 것이 오늘날 방송계의 현실이니까요.

지금 돌이켜보면 <추적자>처럼 기분 좋은 반전은 없었습니다. 앞서 이야기했지만 <추적자> 방영 전만해도, 다수 연예기자들의 관심은 비슷한 시기에 방송된 장동건의 <신사의 품격>, 소지섭의 <유령>에 쏠려있었습니다. 그동안 한국 드라마 현실을 비추어볼 때, <추적자>가 이렇게 잘될 줄 쉽게 예단하지 못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시청자들은 <추적자>와 같은 시대의 부조리함을 관통하는 명품 드라마를 간절히 원하고 있었고, 손현주, 김상중, 박근형 등 진정한 배우들이 매 회 선사하는 명장면에 제대로 흡입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천편일률적인 한국 드라마 시장에서 묵직한 장르 드라마 성공 가능성을 터트렸고, 작품과 배우들의 연기만 좋으면 시청률에서도 성공을 거둘 수 있다는 본보기를 보여준 유쾌상쾌통쾌한 사례가 되었죠.

작품성과 연기력을 놓고 보면 이번 <2012 SBS 연기대상>의 트로피는 단연 <추적자> 주인공들에게 돌아가 마땅해야했습니다. 특히나 <추적자>에서 손현주가 딸과 아내를 연달아 잃고 그녀들이 쓰던 숟가락을 쓰고 오열을 하던 씬과, 마지막 회에서 벌어진 재판 선고를 받고 나타난 딸의 영혼에 미소를 짓는 장면은 한국 드라마 역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 중의 명장면이었습니다. 2012년 SBS 연기 대상은 손현주의 손으로 돌아가야 마땅해보였습니다.

그러나 가능할 것 같았던 손현주의 대상에 막강한 변수가 생겼습니다. <추적자>의 시청률도 좋은 편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장동건의 <신사의 품격>이 앞선 상황이었습니다. 게다가 장동건은 대한민국에서 최고의 상품성을 가진 톱스타입니다. 장동건이 <신사의 품격>에서 보여준 존재감 또한 만만치 않았구요.

또한 현재와 같은 분위기에서 정치적으로 민감한 부분을 건드린 작품의 배우들에게 큰 상을 수여할까가 초미의 관심사이기도 했습니다. 지극히 상식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고려할 가치도 없는 변수였지만.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에선 당연하다고 여기는 '상식'이 아닌 '예외'가 앞서는 경우가 종종 있어왔으니까요.

그래도 최근 들어 연예대상, 연기대상을 통틀어 그 어떤 방송사보다 공정하게 상을 수여한 SBS를 믿어보기로 했습니다. 2012년 유일하게 남아있던 지극히 조그마한 '상식'마저 깨져버린다면 그 약간의 배신감은 꽤 오랜 후유증으로 남을 뻔 했습니다.

다행히 SBS 연기대상은 수많은 시청자들이 기대하던 2012년의 남은 '상식'을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연기대상이 온전히 손현주의 몫으로 돌아간 것은, 20%라는 성공지표를 훌쩍 뛰어넘은 높은 시청률이 지탱해준 덕분도 없지 않습니다. 그러나 지난 30일 방영한 MBC <연기대상>에선 시청률 20% 넘은 <빛과 그림자>의 주인공 안재욱이 대상은커녕 최우수상도 못 받고 빈손으로 돌아가는 촌극이 벌어졌습니다. <SBS 연기대상> 시상식에 참여하지 않았지만, 최우수연기상과 10대 스타상을 수상한 장동건과 심하게 대비되는 풍경이었죠.

손현주와 더불어 가장 강력한 대상 후보였던 장동건이 해외체류 상 불참한다는 통보가 나왔을 때부터, 2012 SBS 연기대상 수상자는 자연스레 누군가로 향해 있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대상 수상자로 호명되어 무대로 나온 손현주는 "세상에 이런 일도 있다. 해가 서쪽에서 뜨겠다. 이런 상이 나한테까지 왔다."면서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실제로 손현주는 시상식 전 레드카펫에서 자신이 대상을 받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손사래를 칠 정도였다고 합니다. 막강한 대상후보로 거론되었고 또 응당 손현주의 몫이라는 분위기였음에도, 정작 자신이 이룩한 최고의 성과에 진심으로 놀라워하고 겸손해하는 모습. 의도하지 않아도 절로 드러나는 성품이 우리 시청자들이 손현주를 더더욱 좋아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지요.

손현주가 대상을 받으면서 많은 이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던 감동 수상소감대로, <추적자>는 시작 당시 많은 이들의 기대를 받은 작품도 아니요, 그 흔한 아이돌도, 상품성 있는 유명 스타도 없는 작품이었습니다. 하지만 작품 자체의 탄탄한 완성도와 흡인력 있는 연출 그리고 아이돌은 없었지만 박근형이 있었다는 손현주의 소감처럼 박근형, 손현주, 김상중, 류승수 등 명품 배우들의 투혼과 뚝심으로 2012년 최고의 드라마 <추적자>가 탄생할 수 있었습니다.

<추적자>는 우리나라에서도 오직 드라마적 완성도와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만으로도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제시해준 시대의 명작입니다. <추적자>의 의미심장한 메시지는 '미완'으로 남게 되었지만, TV밖에 머물러 있는 시청자들에게 용기와 비전을 제시한 것만으로도 <추적자>는 대중문화가 보여줄 수 있는 한계 내에서 정의와 상식의 중요성을 일깨워준 큰일을 수행했습니다. 그리고 <추적자>의 주인공인 손현주가 대상을 품에 안으면서 그나마 우리가 당연하다고 믿고 있는 상식을 보존할 수 있었습니다.

주어진 상황에 묵묵히 최선을 다하면 세상의 수많은 개미들도 허리 쭉 펴고 살 수 있다고 하나, 그 당연하다고 믿었던 정의가 퇴색되어가는 시대. 그리 긍정적이지 않은 조건에서도 오직 자신들이 가진 실력과 노력만으로 결국 정상의 자리에 우뚝 선 개미들의 신화가 <2012 SBS 연기대상>에서 통했다는 것이 감격스럽습니다. 그리고 또 다시 조그마한 희망을 품어봅니다. '상식'이 통하는 시대를 말이죠.

데뷔 이래 20년가량 배우로서 우직하게 한 우물을 파고 시청자들에게 더 좋은 연기를 보여주기 위해 고심했던 손현주의 노력이 결실을 맺은 찬란한 순간, 응당 받을 사람이 상을 받아야하는 상식이 똑똑히 이뤄진 시상식. ‘상식’이 자꾸만 퇴색되어가는 방송계에서 대중이 믿는 조그마한 ‘상식’이나마 지켜준 SBS라는 상업방송이 그 어느 공영방송보다는 공정했음을 보여준 2012년. 어떻게든 2013년을 버터야 하는 대다수 개미들에게 희망을 준 손현주의 감동적인 수상 소감. 2012년 마지막 하루와 2013년 새로 시작되는 하루는 '손현주의 대상 수상'으로 다시금 치열하고 열심히 살아갈 수 있는 조그마한 용기를 갖게 된 의미 있는 날로 기억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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