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보면 처음은 아니었다. MBC 연기대상에 망조가 들었다며 분개했던 기억은 무려 8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4년 MBC 연기대상은 그 이름이 무색한 한강수 자축연이었다. 남녀 우수상에 김선민, 김석훈을, 남녀 최우수상은 최민수, 김혜수가, 급기야 대상은 고두심에게 마지막으로 공로상을 받은 한강수 타령의 연출자 최종수 PD까지. 무려 6개의 부문을 드라마 '한강수 타령'이 석권했던 것이다. 한강수 타령이 상을 받지 못했던 아니 받을 수 없었던 분야는 신인 연기상과 네티즌의 투표로 결정되는 인기상과 베스트 커플상, 그리고 드라마와는 무관한 분야인 라디오 부문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이 네 가지를 제외한 모든 부문을 한강수 타령의 배우와 제작진들이 차지했던 것이다.

누군가는 물을 것이다. ‘한강수 타령이 그렇게 대단한 드라마였던가?’라고. 실상은 그렇지 못했다. 동시간대 KBS 주말극에 잦은 KO패를 당하던 MBC는 이번에야말로 그들을 눌러보리라는 야심찬 의도로 드라마 한강수타령을 기획했다. 하지만 상대는 만만치 않았다. '여우와 솜사탕' 표절 시비를 통해 MBC에 상처를 받고 친정을 떠나다시피 한 김수현 작가가 KBS에서 칼을 겨누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드라마가 바로 '부모님 전 상서'였다. 주말드라마의 캐스팅으로는 다소 파격적인 김혜수와 최민수까지 기용하며 시종일관 드라마를 홍보하기에 여념이 없었던 MBC는 초반 팽팽했던 두 드라마의 기 싸움에서 우위를 선점하기 위해 파격적인 기획을 제공했다. 아직 뜨뜻미지근한 반응의, 이미 진행 중인 드라마의 모든 주연 배우에게 상을 몰아주며 드라마를 홍보하기 위한 최악의 수단을 강행했던 것이다.

이런 시상식은 한 해를 마무리한다는 말을 붙이기도 아깝다. 진행 중인 드라마를 홍보하기 위해 연기대상 하나를 통째로 날려먹은 엽기적인 시상식이 2004년도의 MBC 연기 대상이었다. 생각해보면 이때부터였던 것이다. MBC에서 대상이라고 불리는 하나의 콘텐츠가 개그콘서트 보다 웃기는 엽기 코미디물로 전락하고 있었음은.

이제 더 이상 기대할 것도 없는 MBC 연기대상이었지만 그래도 미리 밝혀진 대상 후보들을 예측한 기사들을 보며 요것들 봐라?하고 기대감을 가졌던 내가 나빴다. 공공연하게 대상 후보자로 떠돌던 인물들은 마의의 조승우, 골든타임의 이성민, 빛과 그림자의 안재욱이었다. 그 누가 상을 받는다고 해도 불만이 없을 수상이다. 하지만 이 중의 한 명 조승우가 상을 받았음에도 불만의 여론이 끊이지 않고 있다. 도대체 그 이유는 뭘까?

조승우가 연기를 못했기 때문이 아니다. 조승우와 함께 후보에 오르지 못했던 사람들의 박탈된 권리에 대해 시청자의 의문이 멈추지 않는 것이다. 강력한 대상 수상자로 거론되던 안재욱과 이성민은 아예 후보자 리스트에서조차 이름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이유는 간단했다. MBC 연기대상의 대상 후보 리스트는 최우수상을 받은 사람들의 한에서 결정되는데 안재욱과 이성민이 바로 이 최우수상을 받지 못했다는 이유였다. 문제는 여기에서부터 시작된다. 도대체 왜 그들에게 최우수상조차 허락되지 않은 것인가? 안재욱, 이성민이 아닌 다른 후보자들이 최우수상의 자리를 나눠가졌는가를 돌이켜보면 이 불만은 더욱 증폭될 수밖에 없다.

늘 그랬듯이 올 한해도 MBC의 나눠갖기 수여식은 변하지 않았다. 최우수상을 받은 이가 무려 여섯 명이었고 이들이 자동으로 대상 후보자로 결정되었다. '마의' 조승우, '메이퀸' 김재원', '해를 품은 달' 김수현, '해를 품은 달' 한가인, '신들의 만찬' 성유리, '메이퀸' 한지혜가 올 한해 MBC가 결정한 대상 후보 리스트였다. 문제는 이들 가운데 올 한해 연기 논란의 수면을 떠들썩하게 하지 않았던 인물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톡 까놓고 말해 조승우를 제외하면 드라마판 '골든 라즈베리 시상식'이라고 해도 과언이 없을 정도의 리스트였다. 그에 비해 이성민과 안재욱은 올 한해 가장 많은 극찬을 받은 배우라는 것이 더 큰 불만사항이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수상 내역이다.

대상을 받은 조승우의 손이 무안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이날 조승우의 얼굴은 대상 수상자라는 영광스러운 직함과 달리 몹시도 무안하고 씁쓸한 표정이었다. 심지어 연기대상의 진행자 김재원이 "대상 후보자 여섯 분 중 특별히 미안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느냐"라는 질문에 후보에도 없는 사람의 이름을 꺼내 들었다. 그가 바로 9개월간 빛과 그림자의 1위를 지켜왔던 주연, 안재욱이었다.

"아 저는 솔직히 말씀드리면 대상 후보님들도 계시지만 솔직히 안재욱 선배님한테 가장 죄송스런 마음이 들어요."

씁쓸한 얼굴을 하고 대상 후보자의 리스트에도 없었던 안재욱의 이름을 고한 조승우는 안재욱을 바라보며 슬쩍 트로피를 들어보며 미안한 얼굴로 윙크했다. 뮤지컬 시상식에서조차 쓴소리를 잊지 않는 조승우 특유의 돌직구가 빛나던 순간이었다. 순간 뭐라 말할 수 없는 어색한 분위기가 시상식 위를 감돌았다. 진행자들은 어색한 헛웃음을 날려야 했다.

조승우의 수상 소감을 듣고 안재욱은 웃었지만 시청자는 패배감을 느껴야만 했다. 그 누구보다 강력한 대상 후보자로 거론되던 안재욱이 후보에서조차 밀려나는 처지가 되었다. 어찌하여 사태가 이렇게 돌아갔는가에 대해 시청자의 반응은 각양각색이다. 다소 비관적인 뉘앙스의 유신 시대를 담았던 빛과 그림자의 시대 배경이 안재욱 푸대접을 만든 주요 원인이 아닌가에 대한 추측이 기정사실로 되는 분위기다.

결국 9개월간 MBC 안방극장을 지켰고 뮤지컬 출연 중인 바쁜 시간을 쪼개어 MBC 연기 대상에 참석했던 안재욱은 무관의 불명예를 안은 빈손으로 쓸쓸하게 돌아서야만 했다. 조승우가 나빴던 것이 아니다. 그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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