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윤광은 칼럼] 지난 7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무장 정파 하마스의 전쟁이 발발했다.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공습한 후 이스라엘 정부는 선전포고를 했고 현재 사상자는 1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생각하고 싶은 건 두 소식을 대하는 국내 커뮤니티의 어떤 반응이다. 여론은 기존의 여론 지형도를 따라 양 극단으로 갈린 상태다. 이들이 보이는 태도와 충돌은 익숙한 것이고 이 사회 현실의 일부를 알려준다.

공론장에 투하된 건 ‘참수’라는 키워드였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대변인은 이스라엘 피해 지역에서 참수된 영유아들의 시신이 발견됐다고 밝혔고 하마스 측의 부인과 함께 국제적 진실 공방이 벌어졌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유대인 지도자들과 원탁회의를 하며 어린아이들의 참수 사진을 언급했으나, 백악관 대변인은 미국 정부가 그런 사진을 보거나 영유아 살해를 확인하지는 못했다고 정정했다.

하마스의 로켓포 공격을 받은 이스라엘 마을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하마스의 로켓포 공격을 받은 이스라엘 마을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국내 인터넷 여론에선 이 소식이 두 방향으로 전유되었다. 대표적인 남성 커뮤니티 에펨 코리아, 줄임말로 ‘펨코’에선 이 뉴스에 굉장히 관심이 많은 상태다. 참수 소식을 기정사실화하고 하마스를 비난하는 글이 범람하고 있다. 반면 여성 유저가 많은 트위터와 ‘더쿠’라는 커뮤니티에선 전쟁의 원인을 팔레스타인 분쟁에 대한 이스라엘의 역사적 책임에서 찾는 여론도 많다. 이건 한국만의 동향은 아니다. 전쟁의 책임론은 세계적으로 논쟁이 되고 있고 미국에선 이스라엘을 비판하는 성명을 낸 하버드 대학생들을 기업들이 채용하지 않으려는 움직임까지 나왔다. 다만, 국내 인터넷 기층에서는 저마다의 정파적·이념적 입장에 따라 전쟁에 대한 입장이 나뉘는 것 같다.

실제로 펨코에서는 이스라엘을 비판하거나 중립적으로 사실관계를 탐색하는 의견은 ‘하마스 맘’이라고 불리며 조리돌림을 사고 있다. ‘맘’이란 표현은 맹목적인 팬덤을 극성스러운 어머니에 빗대는 여성형 멸칭이다. 더쿠에 올라온 게시물이 ‘하마스 맘들’이란 제목으로 펨코 포텐에 ‘박제’된 채 조롱당하고 그 글을 다시 더쿠 유저들이 핫게에서 퍼가서 야유하며 응전하는 식이다. 팔레스타인을 둘러싼 전쟁은 평소 젠더 이슈로 대립하던 한국 커뮤니티 사이의 대리전으로 소비되고 있다.

문제는 사태를 단순화하는 흑백 논리다. 선명한 쟁점을 통해 특정한 사실관계가 단편적이고 절대적인 도덕적 위상을 얻는다. 그것은 곧 특정 집단을 단죄하는 논거가 되고 진영논리로 발전하면서 사태를 조망하는 시선과 중간 지대는 사라진다. ‘영유아 참수’라는 토픽은 그 어떤 첨언도 용납할 수 없는 최악의 만행으로서 선악의 구분과 현실에 대한 가치판단을 종결해 버린다. 이스라엘 군대가 빚어 온 민간인 사상이나 팔레스타인 분쟁의 역사적 맥락, 국제 사회의 편향된 여론 같은 얘기는 나치가 재림한 테러 집단을 편드는 ‘물타기’라고 찍히며 축출되는 것이다.

팔레스타인 여성과 어린이들이 11일(현지시간)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습 이후 맨발 상태로 긴급 대피하고 있다. 지난 7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한 후 이스라엘의 보복공격이 이어지고 있다. (가자시티 AFP=연합뉴스)
팔레스타인 여성과 어린이들이 11일(현지시간)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습 이후 맨발 상태로 긴급 대피하고 있다. 지난 7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한 후 이스라엘의 보복공격이 이어지고 있다. (가자시티 AFP=연합뉴스)

여기서 확인되는 건 비난의 대상을 악마화하는 태도다. 나아가 상대를 악마화하면서 그를 비난하는 자신의 모든 행동을 합리화하는 태도다. 세상에는 악마라고 수식할 만한 인간이나 집단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이 머리에 뿔을 달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준수돼야 하는 가치와 다른 인간의 존엄을 유린하기 때문에 비난받아야 하는 것이다. 나의 적대 진영을 비방하기 위해 만 명이 넘는 사상자가 난 전쟁을 도구화하는 건 그런 가치를 보호하기는커녕 또 다른 방식으로 훼손하는 짓이다.

적대 진영의 악마화와 우리 진영의 피해자화는 이 사회 공론장을 지배하는 야전 교범이 됐다. ‘무슨 짓을 당해도 싼 너희’와 ‘무슨 짓을 해도 되는 우리’를 도출하기 위해 모든 사실과 논리는 납작하고 유치해진다. 그 결과가 수십 년 동안의 역사적 분쟁이 빚은 전쟁의 참상에 대한 코멘트가 “응, 하마스 맘” 한 마디로 귀결돼 버리는 끔찍한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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