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한상희 칼럼] 안녕하세요? 저는 아침마다 습관적으로 TV 뉴스를 켜 놓고 출근 준비를 하는 평범한 시민입니다. 사실, 바쁜 아침 시간에 한쪽으로 흘려듣는 뉴스가 얼마나 눈과 귀에 들어오겠습니까마는 그래도 제가 뉴스를 보는 이유는 포털을 통해 조각조각 파편화된 뉴스를 보는 데서 오는 갈증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날의 뉴스를 어떤 흐름을 타고 보고 있다는 것이, 물론 나만의 착각일 수 있습니다만, 사회의 흐름을 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요?

서론이 길었습니다. 여하튼, 오늘 아침에도 그런 흐름을 느끼고자 뉴스를 시청하고 있는데 순간 거슬리는 어휘들이 귀에 들어왔습니다. 공영방송의 아침 뉴스에서 <“호기심에”...모텔 돌며 ‘몰카’ 설치한 중국인 구속>이라는 타이틀을 단 보도가 나오고 있었습니다.

10월 11일 KBS 뉴스 보도화면 갈무리
10월 11일 KBS 뉴스 보도화면 갈무리

뭐가 귀에 거슬렸다는 건지 이해가 안 된다고요? 비속어도 없고, 혐오표현도 없는데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고요? 우선, ‘몰카’라는 어휘가 아직도 불법촬영물과 동의어로 사용된다는 것이 답답합니다. 오래전부터 여러 시민단체들이 ‘몰카’나 ‘야동’과 같은 어휘를 ‘불법촬영물’과 같은 의미로 사용하지 말 것을 수차례 지적했음에도 불구하고 왜 아직도 반복되고 있는 것일까요?

‘몰카’라는 어휘가 왜 문제인지 아직도 이해가 안 된다면, 먼저 그 기원부터 따져봐야 할까요? 수십 년 전 한 예능에서 '몰래카메라'가 처음 등장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연예인들이 카메라가 있는지 모르고 하는 행동들을 보여주어 재미를 주었던 이 코너의 이름이 '몰래카메라'였고, 이후 줄여서 '몰카'라고 하게 된 것이지요. 즉, '몰카'는 재미를 위한 이벤트를 뜻하는 것이지 범죄를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불법촬영(물)’이나 ‘디지털 성착취영상’을 ‘몰카’와 ‘음란물’‘야동’ 등으로 표현하는 것은 범죄의 심각성을 희석시킬 뿐만 아니라, 범죄로 인식하지 못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기사에서 이런 어휘들로 표현될 때 순간의 클릭은 유도할 수 있겠지만, 피해자에게는 실제로 일어난 범죄만큼이나 심각한 2차 가해일 수 있는 것입니다.

‘호기심’도 마찬가지입니다. ‘호기심’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것이며 이 때문에 하는 행위들은 '그럴 수 있는 행위'로 간주됩니다. 때로는 창의적이고 발전적인 의미를 가지면서 부정적 의미를 거의 내포하지 않습니다.

불법촬영 경고문 (연합뉴스 자료사진)
불법촬영 경고문 (연합뉴스 자료사진)

아, 이 짧은 제목 하나에서 묻고 싶은 것이 참 많아지네요. ‘중국인’이라는 국적은 반드시 기사의 제목에서 밝혀야만 하는 것인가요? 시청자나 독자들이 범죄자의 국적을 아는 것이, 특정 국가나 민족에 대한 혐오가 충분히 예상되는 내용을 밝혔을 때 나타날 수 있는 문제보다 더 중요한 것인지 궁금합니다.

아침 뉴스 한 꼭지에서 이런 의문들이 생기면서 다른 언론사들도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빅카인즈를 통해 지난 3개월 간의 기사를 검색한 결과 총 279건의 기사에서 ‘불법촬영물’ 범죄에 대해 ‘몰카’라는 표현을 사용하였습니다. <“비율 좋아 찍었다” 여고생 정류장 몰카 30대 남성 입건>, <성관계 몰카찍고 소변까지 먹였다...10대 성착취한 20대 집유, 왜> 등과 같이, 지면으로 다시 옮기는 것조차 망설여지는 제목의 기사들도 버젓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날카롭게 지적하고 비판하는 과정이 언론사 분들께는 다소 불편하고 언짢으셨나 봅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아직도 이렇게 부적절한 표현들이 버젓이 기사화될 수는 없었겠지요. 정중하게 말씀드립니다. 시청률과 클릭을 부르는 제목을 작성하기 전에 한 번만 더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한다면 좀 더 냉철한 기사들로 시청자와 독자들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요?

2023년 10월 12일, 시민 드림

* 한상희 언론인권센터 사무처장칼럼은 사단법인 언론인권센터에서 발행하는 '언론인권통신' 제 1018호에 게재됐으며 동의를 구해 미디어스에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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