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 방영한 MBC <보고싶다> 14회는 놀라운 충격으로 다가오는 세 가지 요소가 동시다발적으로 등장, 시청자들의 등을 오싹하게 하였다.
몇몇 네티즌들의 추리대로 14년 전 이수연(윤은혜 분)에게 몹쓸 짓을 한 강상득(박선우 분)을 살해한 유력 용의자로 강형준(유승호 분)이 떠오른 상태다. 예전부터 해리 강형준이 강상득을 죽지 않았나는 의견이 분분했지만, 형준뿐만 아니라 수연 또한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받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지난 14회에 강상득 형 상철마저 강상득과 비슷한 방법으로 살해당하자 형사인 한정우(박유천 분)은 강상득이 살해당하기 전 기절시킨 청소부 아줌마(김미경 분)을 찾아간다. 그리고 청소부 아줌마는 정우에게 강상득 살해범 찾는 데 유력한 '힌트'를 제공한다.
"똑 또각, 똑 또각." 참으로 독특한 발자국 소리 때문에 청소부 아줌마는 얼마 전 하이힐을 신고 자신과 경찰서에서 만난 수연이 강상득을 죽인 범인인 줄 알았다고 했다. 하지만 언제나 킬힐을 신고 다니는 수연의 발자국 소리는 분명 "똑 똑 똑 똑"이다. 그런데 한 쪽 다리를 절어 지팡이를 짚고 다니는 강형준의 발자국 소리가 "똑 또각, 똑 또각"이다. 정통멜로를 표방하고 있지만 무게 있는 스릴러요소까지 다분한 <보고 싶다>는 14회 만에 소름끼치는 방식으로 강상득을 죽인 범인을 어느 정도 보여주었다.
그런데 형준의 엄마 강현주가 살아있다는 것보다 더 충격적인 것은, 현주의 등장으로 정우와 형준이 삼촌과 조카가 아닌 친형제라는 설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첫회부터 삼촌과 조카로 설정된 정우와 형준은 지난 14회까지는 형과 동생이라고 볼 만한 요소가 전혀 없었다.
그런데 정우 이모라는 부모의 말을 듣고, 현주를 보고 정말로 정우와 닮았다는 아름의 대사 이후 <보고싶다>의 족보가 뒤틀릴 수 있다는 위기감이 급습한다. 만약 현주가 정우, 형준 모두를 낳았다면 이보다 더 충격적인 막장스토리는 없을 것이다. 정우도 태준 자식이 아닌, 할아버지 자식이었다면 모를까 태준 아버지의 후처였던 현주가 정우 할아버지, 정우 아버지 모두 다 취했다는 식이라면, 그동안 막장 요소가 다분해도 요즘 보기 힘든 명품 드라마라고 불리던 <보고싶다>의 좋았던 이미지에 제대로 자살골 넣는 형국이다.
지난 13회 강상철을 병원 지상으로 떨어트리면서 한 형준의 대사처럼 정우와 수연, 그리고 형준은 태준의 탐욕에 큰 상처를 입은 피해자이다. 태어나는 순간, 자신을 해치려드는 태준의 위협 속에서 살아가야 했던 형준은 그 과정에서 다리를 절게 되고 엄마 현주와 생이별을 경험한다. 어릴 때부터 어른들의 제대로 된 보살핌을 받아보지 못하고 자신을 위협하는 세력에게서 스스로 몸을 피해야 했던 형준은 자연스레 자신을 불행으로 치닫게 한 태준을 원망하고 복수를 꿈꾼다.
그리고 자신이 가장 힘들 때 유일하게 손을 내밀어준 수연에게 강한 집착을 보인다. 이제 수연이 자신이 아닌 정우를 사랑한다고, 자신의 키스를 거부하는 수연에게 손찌검을 하고 폭력을 휘두르기까지 한다. 만약 조이가 다시 이수연으로 돌아갈 경우, 태준이 자신을 찾아 죽일 수도 있다고 계속 자기 곁에 있으라는 용의주도함까지 펼친다. 형준의 말이 맞긴 하지만, 결국은 수연을 계속 자신의 손아귀에 넣으려는 형준의 집착이 만들어낸 말이다.
반면 수연을 형준 못지않게 사랑하는, 아니 더 사랑하는 것 같은 정우는 자신의 마음보다 수연의 마음을 존중한다. 14년 동안 수연을 찾아 전국 방방곡곡을 헤매고 다닌 정우였건만, 막상 그토록 기다리던 수연이 자신의 눈앞에 나타나니, 정우는 다시 수연으로 돌아가기 싫다는 수연이 원하는 대로 자신의 벅찬 가슴을 추스르고 수연에게 더할나위없는 '좋은 친구'가 되어주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왜 형준이 수연에게 강한 집착을 보일 수밖에 없는지 이유를 알기에, 요즘 들어 문득 드러나는 형준의 폭력성이 안타까울 뿐이다. 이처럼 <보고 싶다>는 어릴 때 어른들의 따스한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자란 아이들이 커서 얼마나 극단적인 폭력성을 띄고, 스스로를 얼마나 불행에 몰고 갈 수 있는지 심리학적으로 풀어내는 명품 드라마다. 한정우처럼 친아버지가 천하의 악질에 평생 잊지 못할 큰 상처를 받았다 해도, 명희와 같이 남의 자식도 친자식처럼 거두고 보살피는 좋은 어른을 만나면 타인의 마음을 헤아리는 성숙한 어른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제시하는 드라마가 <보고싶다>이기도 하다.
만약에 형준도 재벌가 후처 자식이 아니라 평범한 집안에서 부모의 사랑을 받고 자랐다면 자신이 좋아하는 여자가 자기 아닌 다른 남자를 좋아한다고 폭력을 휘두르거나, 과거 자신에게 악행을 벌인 누군가에게 복수의 칼을 겨누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 청소부 아줌마처럼 법이 자신이 당한 억울한 피해를 제대로 보호해주지 않는 한 말이다.
<보고 싶다>는 단순 멜로를 넘어 프로이트식 아동 심리학적 접근 방식으로 자신의 이익 때문에 점점 타락해져가는 사회 속에서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 상처받은 아이들을 통해 '상식'을 잃어버린 시대의 변화를 촉구하는 강렬한 메시지를 가지고 있다. 요즘 같은 사회에 절실히 필요한 이 좋은 드라마가 자칫 '정우, 형준 친형제설'로 무너질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등이 오싹거린다. 하지만 적어도 문희정 작가는 엄청난 화제성을 위해 잘나가다가 삼천포로 빠지게 하는 무모함을 감수하지는 않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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