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민하 칼럼] 잼버리 대회 파행을 둘러싼 정치권의 입씨름을 보면 할 말을 잃게 된다. 서로의 탓을 하다 급기야 성범죄 우려 등을 제기하며 퇴영을 결정한 국내 참가 단체에 대해 “누구의 사주로 그런 반(反)대한민국 결정을 했는지 정치적 배후에 대한 합리적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는 황당한 주장을 하는 의원까지 나타났다. 가짜뉴스를 유포해 공론장을 오염시키고 그 대가로 음모론자의 지지를 확보하는 전형적인 21세기 극우 포퓰리즘의 방식이다.

백보 양보해 득표 논리를 따지는 각 정당이야 그렇다 치자. 파행의 책임을 따지는 언론에 대통령실이 “준비 기간은 문재인 정부 때였다. 전 정부에서 5년 동안 준비한 것”이라고 답한 것은 어떤 기준으로도 납득하기 어려운 태도이다. 이 정권에 유난히 너그러운 조선일보도 7일자 사설에 “정부 출범 1년 3개월이 지났는데 이런 것까지 전(前) 정부 탓을 하면 국민이 공감하겠나”라고 짚고 있다. 어떤 언론도 이런 대응을 잘했다고 평가하지 않는다. 그러니 이런 일을 반복하는 대통령실 참모에 대해선 인사조치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과연 그런 조치가 있을 것인지는 회의적이다. 지금까지의 과정을 볼 때 ‘전 정권 탓’을 통하여 세상만사를 정쟁화하는 본체는 대통령 본인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자신의 입을 통하여 수차례 모든 것을 전 정권 책임으로 모는 인식을 드러냈다. 그러니 대통령실 참모와 여당은 그 방향으로 따라갈 수밖에 없다. 그 정치적 책임은 결국 자신들이 지게 될 것이지만, 우리 사회가 맞닥뜨리는 가장 큰 문제는 이런 인식이 현안의 본질을 따지지 못하게 하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2023 새만금 세계 스카우트 잼버리에서 조기 퇴영한 영국 스카우트 대원들이 6일 서울 용산역에서 잼버리 관련 뉴스를 바라보고 있다.(연합뉴스) 
2023 새만금 세계 스카우트 잼버리에서 조기 퇴영한 영국 스카우트 대원들이 6일 서울 용산역에서 잼버리 관련 뉴스를 바라보고 있다.(연합뉴스) 

지금 짚어야 할 것은 뭔가? 잼버리 대회 참가자들을 당황케 한 폭염이나 배수 문제는 이미 이전부터 우려가 제기됐다. 그 우려는 근본적으로 야영에 적합하지 않은 장소에서 행사를 개최하기로 결정한 것으로부터 비롯됐다. 바닷물을 머금고 있어야 할 갯벌을 매립해 부지를 조성했으니 물이 잘 빠질 리가 없다. 게다가 애초 관광레저 용지로 지정돼 있던 곳을 매립 예산 조달을 위해 농업용지로 바꾼 게 문제를 키웠다. 행사가 끝나면 부지를 농업용도로 반환해야 하는데 배수 문제 해결에 진력할 수 있었겠는가.

이런 문제는 똑같이 간척지에서 진행한 2015년 야마구치현에서 열린 잼버리와 비교해보면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때도 폭염이 문제가 됐지만 적어도 배수 문제는 없었다는 게 언론의 평가다. 행사가 진행된 부지가 애초에 대형 행사를 기획하고 개최하는 용도로 개발됐고 이전부터 그러한 용도로 쓰여왔기 때문이다. 반면 새만금 간척지는 시대와 상황에 따라 용도가 이리저리 바뀌어 왔다. 잼버리 대회 부지로 선정된 것 역시 그러한 맥락에서 자유롭지 않다.

새만금 사업은 쌀이 부족했던 시기 박정희 정권이 간척사업을 통해 농지를 확보하겠다는 계획에서 출발했다. 1987년 대선에서 노태우 후보가 호남 표심을 겨냥해 대선공약으로 내놓으면서 새만금 사업은 정치적 문제가 되었다. 그러나 실제 사업 추진은 지지부진했으므로 이후 정권들에서 새만금 사업은 마치 전북 유권자들의 숙원인 것처럼 돼버렸다. 환경단체의 반발로 인한 소송까지 거치고 나서 참여정부 말기인 2007년 12월이 돼서야 새만금특별법이 제정됐고, 유난히 개발사업을 좋아했던 이명박 대통령이 “새만금이 나를 필요로 한다”고 하면서 사업은 본격적으로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주목할 것은 이 때는 이미 쌀 생산량이 부족하다고 볼 수는 없는 시점이었다는 점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새만금을 한국의 두바이로 만들겠다”, “사람과 돈과 물류가 모이는 동북아의 성장기지로 만들겠다”고 했는데 이에 따라 새만금 사업을 통해 조성될 용지는 금융과 고부가가치 산업 등의 용도로 전환되었다. 즉, 여기서부터는 어떤 필요성이 있어서 사업을 진행하는 게 아니라 이미 기존의 목적은 없어진 채로, 조성될 부지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에 초점이 맞춰지게 됐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세계 청소년들이 모여 야영을 하며 교류하는 잼버리를 유치하자는 발상도 이런 맥락에서 비롯됐다. 문재인 정권에선 잼버리를 제대로 치르는 데 필요하다며 새만금 신공항의 예비타당성 조사를 면제했는데, 공사도 시작하지 않은 신공항은 적자를 면치 못할 거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공항 역시 선거 때 지역 표심을 겨냥해 등장하는 전형적인 개발 공약 사례의 하나라는 점까지 고려하면 이 상황의 본질이 무엇인지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애초 새만금 사업은 정치화되어 있으므로 여의도 논리로 이 사업을 거둬들이기는 어렵다. 새만금 사업 중단이 지역 여론에 미칠 영향이라는 리스크를 누구도 감당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매립이 예상대로 되지 않아 사업 기간이 늘어나고 들어가는 비용이 증가해도 사업은 반드시 계속돼야 하는데, 이걸 왜 하는지를 아무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는 상태다. 그러니 간척지가 조성되면 이런 것도 할 수 있고 저런 것도 할 수 있다는 식으로, 사업의 정당성을 뒷받침하기 위해 잼버리 대회가 동원된 모양새가 됐다고 할 수밖에 없는 거다.

그늘도 없는 간척지에서의 행사라지만 폭염과 폭우가 없었더라면 그나마도 나았을지 모른다. 최근의 폭염과 폭우는 기후변화의 영향이 있다는 것에 이견을 표하는 사람은 드물다. 새만금 사업이 미궁에 빠지다시피한 것도 본질적으로는 인간의 오만에 대한 자연의 경고라고 볼 수 있다. 지난 몇십년 간 해온 일이 무엇인지, 갯벌과 거기에 서식하던 작은 생명들 및 그들의 덕으로 살아가던 어민들을 희생한 결과가 무엇인지를 돌아볼 때가 아닌가? 그런 방향으로는 눈길도 주지 않으면서 오로지 남탓만 해대는 여의도에 무엇을 기대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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