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윤광은 칼럼] 지난주엔 스페인 축구리그 프리메라리가 소속 빅 클럽 아틀레티코 마드리드(AT 마드리드)가 내한했었다. 프리 시즌을 맞아 쿠팡플레이의 초청으로 한국에 왔고, K리그 올스타 및 역시 쿠팡의 초청으로 내한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맨체스터 시티와 경기를 치렀다. AT는 많은 미담을 남겼다. 폭염에도 불구하고 정예 멤버를 가동해 필드에 비지땀을 뿌리며 달렸고, 경기장 밖에서도 훌륭한 매너와 성의 있는 태도를 보였다. 간판선수 앙투안 그리즈만은 단연 돋보였다. 자상한 팬 서비스와 정중한 인터뷰는 물론, 경기장에서 활짝 웃는 얼굴로 환호성에 답례하고 관중과 어울려 파도타기 응원까지 지휘했다. 그리즈만은 지금껏 내한한 해외 선수 중 손에 꼽힐 모습으로 호평받았고 ‘우리즈만’이란 별명을 얻었다.

팀 K리그와 친선전을 앞둔 스페인 프로축구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앙투안 그리즈만이 7월 25일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에서 입국장을 나서며 팬들에게 사인을 해주고 있다. (영종도=연합뉴스)
팀 K리그와 친선전을 앞둔 스페인 프로축구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앙투안 그리즈만이 7월 25일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에서 입국장을 나서며 팬들에게 사인을 해주고 있다. (영종도=연합뉴스)

이런 그리즈만에겐 한국에선 잘 알려지지 않은 사건이 있었다. 4년 전 바르셀로나 소속일 때 일본 투어에서 있었던 인종차별 논란이다. 호텔 룸에 들어온 현지 직원 옆에서 팀 동료 우스만 뎀벨레와 함께 인종적 비하의 혐의가 있는 모욕적 언사를 프랑스어로 떠들었다. 사실 문제가 된 발언은 뎀벨레가 했고 그리즈만은 웃으며 듣고 있는 정도였지만, 그 역시 다른 장소에서 동양인의 언어를 우스꽝스럽게 흉내 내는 행동을 한 영상이 남아 있다. 이 일은 뒤늦게 폭로돼 바르셀로나의 스폰서를 맡고 있던 라쿠텐이 항의했었고, 그리즈만과 뎀벨레는 사과문을 썼다. 그리즈만은 ‘나는 어떤 종류의 차별에도 반대해왔다’며 비판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하는 한편 일본인들이 느낀 불쾌감에 사과의 뜻을 전했다.

이 말은 사과라기보다 항변처럼 들린다. “나는 잘못한 게 없지만 네가 기분 나빴다면 사과할게”라는 사과 아닌 사과의 예시문 같다. 하지만 차별에 반대해 왔다는 말도 거짓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는 실제로 사회적 차별에 반대하는 행적을 남겼다. 게이 잡지 커버 모델을 맡아 동성애 혐오에 반대하는 인터뷰를 했고, 이주민 출신이 많은 프랑스 대표 팀에서 흑인 동료들과 절친한 교분을 맺고 있다. 소수자 차별에 대한 세계인들 의식 수준을 그래프로 그려 본다면 그리즈만은 평균치 이상의 집단에 속할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왜 그런 인물이 동양인에 대해선 동료의 차별적 발언을 제지하지 않고 ‘칭챙총’ 같은 행위를 했는가. 비판받아 당연하다. 다만, 이를 위선으로 치부하기에 앞서 맥락을 짚어 보는 길도 있다.

AFC의 인종차별 반대 영상에 출연한 박지성 [AFC 인스타그램 캡처]
AFC의 인종차별 반대 영상에 출연한 박지성 [AFC 인스타그램 캡처]

누군가 타자를 향해 차별적 행위를 할 때, 자신이 차별을 한다고 생각하고 있을까? 꼭 그렇지는 않다. 한국에서도 어떤 표현이 혐오표현인지 아닌지 발화자와 비판자들 사이 논쟁이 붙는 경우는 흔하다. 얼굴을 시커멓게 칠하는 블랙 페이스는 흑인에 대한 대표적 혐오표현이지만, 몇년 전 한 국내 고교 학생들의 흑인 분장 졸업 사진이 논란이 됐을 때 그들이 흑인을 경멸할 목적으로 사진을 찍었던 걸까? 비아시아 지역에는 눈을 찢는 포즈가 있고, 동양인에 대한 전형적 혐오표현이다. 하지만 그런 행동이 인종차별이란 자각 없이 수행될 때도 있다. 박지성은 해외 선수들이 인종차별에 무지하다고 말하며 친한 동료로 유명한 테베즈가 자신을 위해 눈을 찢는 골 세리머니를 하겠다고 제안했다고 말한 적이 있다.

물론 악의 없는 차별도 차별이다. 악의가 없으면 모른 체 해도 된다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악의가 없다는 것은 자각도 되지 못할 만큼 차별에 관해 무지하거나 사람들 내면에 차별이 무의식 중에 스며들어 있다는 뜻일 수 있다. 다만 그런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차별을 목적의식화한 인종차별주의자라는 결론이 늘 도출될 수는 없다. 이건 피부색을 떠나 성별과 성적지향, 장애 등 여타 사회적 정체성에도 해당되는 이야기다. ‘병신’은 장애인들이 시정을 요구하는 장애인 멸칭이지만, 비장애인끼리의 대화에서 서로를 향해 오가고 미디어에서 평범한 욕설처럼 쓰이곤 한다. 이런 케이스들은 단순히 차별주의자라고 규정하며 비난하는 것으로 해소되긴 어렵고 현실을 너무 단순화하는 것이 될 수 있다.

7월 30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쿠팡플레이 시리즈 2차전 AT마드리드와 맨체스터 시티의 경기. 경기 종료 후 AT마드리드 그리에즈만이 관중에 인사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7월 30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쿠팡플레이 시리즈 2차전 AT마드리드와 맨체스터 시티의 경기. 경기 종료 후 AT마드리드 그리에즈만이 관중에 인사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논리적으로 보면 해소될 가능성이 큰 건 자각 없는 차별이다. 행위의 의미를 알려 주는 것으로 자각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건 사람의 의식과 행동이 변화할 수 있다는 긍정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다. 사실 동양인에 대한 차별적 표현도 세계적으로 문제의식이 많이 퍼진 상태다. 그렇게 보면 그리즈만이 정말로 악의가 없었는지 의심이 들 수도 있지만, 그가 한국에서 보여준 건 피부색에 관계 없이 팬들에게 최선의 존중을 바치는 태도였다. 어쩌면 과거의 논란을 의식해 더욱 신경을 쓴 것일 수도 있지만 그게 문제가 될 순 없다. 사람은 불완전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행동을 옮겨 나간다면 오히려 평가받아 마땅하다. 타인을 무작정 차별주의자라 비난하는 것도 불합리할 수 있지만, 사람들 저마다가 갖춰야 하는 미덕과 의무도 자신을 돌아보고 잘못이 있다면 고쳐 쓰려는 마음가짐이다.

그리즈만 논란은 ‘에펨 코리아’ 같은 국내 축구 커뮤니티에서는 오래전부터 질타당해 왔다. 그 커뮤니티에서 ‘목화밭 노예’처럼 자각이 넘쳐나는 혐오의 조어로 흑인 선수를 부르는 멸칭이 일상화된 것을 떠올리면 팬덤 싸움의 연장선이나 누군가를 마음껏 비난할 명분이 굴러들어 온 것 이상의 의미를 둘 수 있을지 모르겠다. 차별이 나쁜 건 누구도 정체성만으로 모욕과 불이익을 당해선 안 되기 때문이다. 이 보편적 원칙을 머리에 새기지 않는다면 차별에 대한 갖가지 논의와 논란은 왜곡되고야 만다. 같은 커뮤니티에서 ‘우리즈만’을 칭송하기 위해 “그리즈만은 일본만 싫어하는 반일이다” 같은 우스갯소리가 떠도는 것도 차별에 관한 논란을 또 다른 혐오로 정당화하는 어긋난 사고방식이란 건 설명할 필요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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