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영복 교수가 직접 작성한 뉴스타파 제호 ⓒ뉴스타파

대선이 끝난 후 누리꾼들 사이에서 ‘국민방송’을 만들자는 청원 및 모금운동에 대한 논의가 한창이다. 선거 패배의 주요한 원인 중 하나로 공영방송 장악과 종편 허용을 지목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조류는 1987년 대선의 패배 이후 1988년에 한겨레가 폭발적인 모금운동을 통해 창간된 역사의 ‘재림’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올드 미디어의 역습, ‘국민방송’으로 돌파?

‘국민방송’을 요구하는 이들이 공유하는 인식엔 설득력이 있다. 야권 지지자들이 팟캐스트나 SNS 등 뉴미디어의 가능성을 높이 평가한 것과 별개로 종편이 의외의 영향력을 보였다는 시선이 존재한다. 지역 출신들은 “지역에 거주하는 어르신들은 종편의 정치평론을 신뢰한다. 기존 방송보다 단순하고 화끈하며 원초적인 얘기들을 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야권 지지자들이 ‘나꼼수’에 열광하듯이 그들은 종편의 시선을 재미있어 한다”고 증언한다.

트위터 이용자들이 널리 알려진 것처럼 더 많은 매체의 더 많은 시선의 기사를 보며 정치의식을 쌓아간 것은 사실이지만, 엄밀히 말하면 정보습득량과 득표수는 별개의 문제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한 트위터 이용자가 조중동 및 종편 독/청자에 비해 열 배 많은 뉴스를 소비했다 해도 그들의 투표권은 1대1이다. 이런 상황에서 뉴미디어의 가능성만을 예찬하기 보다는 ‘방송 장악’에 대해 훨씬 더 심각한 문제의식을 지녔어야 한다는 자성이 가능하다.

그러나 곰곰이 따져보면 이러한 ‘자성’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명박 정부의 ‘공영방송 장악’과 ‘종합편성채널 허용’에 대해 언론계가 우려하고 반대한 것도 그러한 사실을 이미 ‘알았기’ 때문이다. 사실은 SNS에 대한 예찬도 다른 수단들을 뺏겨 버린 상황에서 기대를 걸 구석이 거기 밖에 없었기 때문에 나온 측면이 있다.

‘국민TV방송’의 케이블 진출은 가능한가

그렇기 때문에 국민방송을 말하는 이들의 문제설정에 동의하더라도 국민방송을 만드는게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적절하고 효율적인 방책에 대해서는 따로 논의할 필요가 있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국민방송’ 혹은 ‘국민TV방송’ 운동에는 두 가지 다른 결이 있다. 전자는 말하자면 국민들이 힘을 모아 공중파 방송이나 종편에 대항할 수 있는 그런 방송을 만들자는 것이다. 후자는 현재 존재하는 대안언론들을 묶어서 하나의 플랫폼을 만들어 좀 더 체계적으로 정보를 공급하자는 것이다. 편의상 전자를 '국민방송 운동'으로, 후자를 '대안언론 단일 플랫폼 제안'으로 지칭해보자.

결론부터 말하자면 전자는 가능하지 않고 현실적으로 원하는 의미를 창출해낼 수 없다. 하지만 후자는 가능하고 의미부여도 어느 정도는 가능하다. 공영방송과 종편의 기능의 편향을 중화하고 싶었다면 ‘국민방송’을 만드는 게 아니라 사실 정권을 가져오는 것이 답이었다. 물론 이는 ‘고양이 목에 방울달기’ 식 논리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현재의 틀 안에서 모금을 통해 국민방송을 만든다고 해도 케이블 진입도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 너무나 분명하기 때문이다.

<뉴스타파 시즌2> 제작에 참여했던 박중석 전국언론노동조합(위원장 이강택) 민주언론실천위원장은 25일 <미디어스>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케이블 진입에 대해 “재정적인 측면에서 불가능한 얘기”라고 일축했다(기사 링크). 시민들은 1차모금액을 50억으로 설정한 상황이지만 현재 부실한 방송으로 악명이 높은 종편 4사만 해도 월 적자가 20억에서 80억까지 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 일간지 기자는 “한마디로, 방송은 ‘스케일’이 전혀 다르다”고 지적했다. 한겨레 등 진보언론이 종편 참여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도 종편 허용의 절차적 문제에 대한 항의 측면을 넘어 현 진보언론의 규모에서 가능하지 않다는 판단을 내렸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방송의 가능성에 대해 조심스럽게 진단한 오마이뉴스 기사에서도 (기사 링크) 정연우 세명대 광고홍보학과 교수의 말을 빌려 "MBC 한 해 예산이 7000~8000억 원 정도인데, 대안방송 기능을 하려면 1000억 원 정도는 있어야 한다"며 "월 1만 원씩 내는 후원회원이 100만 명은 있어야 한다"고 계산하고 있다. 백번 양보해 일단 방송이 출범하면 양질의 컨텐츠를 기반으로 여러 종류의 스폰서를 따낼 수 있다고 하더라도 최초의 종잣돈을 '50억'으로 상정하는 것은 시민들에게 이 프로젝트의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를 제대로 알리지 않는 일일 수 있다. 가령 '50억'이 아니라 '500억'이라고 조건을 말했다면 시민들이 이 프로젝트에서 느끼는 현실성이 사뭇 줄어들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 언론사 관계자는 “케이블이 비록 허가제가 아니라 신고제이긴 하지만, 플랫폼 사업자들이 괜찮은 채널을 배정하고 광고를 받아야 하는 등의 ‘허들’이 있다. 게다가 보도전문 채널이 되려면 ‘허가’를 받아야 한다. 가령 현재의 CJ 계열 채널들에도 보도기능은 없다. 보도전문 채널을 만들려면 연합뉴스 등의 사례를 봤을 때 최소 자본금이 600억 정도는 필요할 텐데, 그걸 들고 간다고 해서 허가해 주는 게 아니다. 박근혜 정부가 진보성향의 보도전문 채널을 허가해 줄 가능성이 있다면 우리가 왜 이런 논의를 하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일각에선 ‘한미FTA 독소조항’을 활용해서 미국국적 자본으로 한국 채널을 인수하면 된다는 말까지 나오지만 이런 일을 벌이려면 현실적으로 수천억이 필요한 상황이다. 결국 '국민방송 운동'의 취지를 살린 채 그 길을 나아간다고 했을 때엔, 일단 케이블을 만든 후 TVN 등에서 그렇게 하듯 교양프로그램 편성으로 정치적 내용을 녹여내는 것이 재정적/제도적으로 가능한 최대치일 것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지속가능성이 희박하단 문제를 넘어서 시민들이 원하는 그 '국민방송'의 모습이라 볼 수는 없다.

▲ 작년 12월 1일 종편 4사가 출범하던 날 용산 전자상가의 한 매장의 풍경. 종편 4사의 월간 적자액은 각각 최소 20억에서 최대 80억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뉴스1

대안언론을 한데 모으는 플랫폼은 가능하고 의미있어

반면 ‘뉴스타파의 상시화’라는 컨셉으로 볼 수 있는 ‘대안언론 단일 플랫폼 제안’은 어느 정도 의미를 지닐 수 있다. 미디어오늘 보도에 따르면, 뉴스타파 제작진인 최경영 KBS 기자의 경우 "뉴스타파 매일 보고 싶으세요? 100억이면 가능하다고 봅니다"라고 말한 박대용 춘천MBC 기자의 말을 인용하며 이 프로젝트가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한다. (기사 링크) 몇 년 전 언론운동가들이 2008년 촛불시위 이후 ‘진보포털’을 고민했을 때도 이에 필요한 비용을 60억 정도로 추산했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일차 목표액 50억에 그 이상의 돈을 모아 이 정도의 일은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 <나는 꼼수다> 김용민 PD를 중심으로 기획된 미디어협동조합 <국민TV방송>의 경우도 현실적인 목표치는 '국민방송 운동'이 아닌 '대안언론 단일 플랫폼 제안' 정도에 머물 수밖에 없다. 이 경우 <뉴스타파>와 <국민TV방송> 운동이 따로 갈 것이 아니라 협의를 통해 단일 플랫폼을 고민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지 않겠느냐는 의문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만일 이러한 플랫폼이 생긴다면 두 가지 차원에서 의미가 있을 것이다. 첫째는 1988년의 한겨레가 독재정권 당시 해직기자들을 중심으로 대안 컨텐츠를 만들어냈듯이, 이명박 정부 치하 해직기자들을 활용하여 공영방송과 종편이 만들어내지 않는 컨텐츠를 생산해낼 수 있다는 부분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 측면은 더 중요한 부분인데, 이런 컨텐츠들이 일종의 ‘포털’을 통해 정렬한다면, 정보에 민감한 트위터 유저의 세계를 넘어 정치적 중도파들에게 대안 컨텐츠 소비를 권유하기 쉬워지리라는 점이다. 현재까지 시도된 대안언론들은 주로 스마트폰과 SNS를 통해 전파되곤 했다. 그리고 이것들은 트위터 유저들의 정보습득량을 현저하게 늘리긴 했지만 이 기기와 매체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데엔 일종의 한계가 있었다. 새로운 플랫폼이 그런 이들에게도 지속적으로 진보적 컨텐츠를 소비할 수 있게 도와준다면 그것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일이 될 것이다.

문제의식이 전도되지 않았나 하는 성찰이 필요한 때

하지만 이런 식으로 가능한 방법과 그 의의를 기술했을 때에 우리는 ‘국민방송 운동’의 문제의식이 다소 뒤집힌 것이라는 점을 알 수 한다. 본시 ‘국민방송 운동’의 문제의식은 뉴미디어를 활용하지 못하는 계층, 공중파와 종편 방송에 영향받은 이들을 설득해 내야 한다는 데에 있었다고 여겨진다.

하지만 대안언론의 경우 비록 그 의의는 분명하게 있으되 애초의 문제의식에 대한 해결방법은 되지 못한다는 것이 분명하다. ‘대안언론 단일 플랫폼’은 신문은 조중동만 보고 방송은 공중파나 종편을 보는 이들을 유인해 내지는 못할 것이다. 반면 막 정치적 관심을 가진 이들에게 트위터 사용 유무와 상관없이 지속적인 정보를 제공하며 정치의식을 나름대로 ‘업데이트’하게 하는 데는 크게 유용할 것이다.

말하자면 순전히 정치적 유불리의 문제로 봤을 때 이 운동은 ‘1470만표’를 유지해 내는데엔 의미가 있을 테지만, ‘1580만표’를 분할하기 위한 복안은 아니다. 물론 박중석 전국언론노동조합 민주언론실천위원장의 말처럼 “선거에서 졌기 때문에 방송국을 가져야 한다는 논리는 저널리즘을 훼손할 수 있는 섣부른 얘기"라는 지적이 기본적으로 옳지만, 한편으로는 이 접근이 전술적으로도 ‘선거에서 이기는 방책’은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뉴스를 많이 소비하는 계층’이 ‘뉴스를 적게 소비하는 계층’을 이해하지 못하고 멸시하기만 했다는 것이 이번 선거 패배의 원인 중 하나일 것인데, ‘국민방송’ 프로젝트의 경우 그 우월감은 그대로 유지한 채 상대방을 조중동이나 종편이 그렇듯 ‘계몽’ 내지는 ‘세뇌’하려는 의지가 엿보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1470만’의 지지자들이 지금보다도 많은 컨텐츠를 소비하며 정치의식을 키워나갔을 때, 그 결과 그들이 새누리당을 찍는 빈곤층에 접근하는 방법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실천하게 되는 상황이 대안언론들이 만들어낼 수 있는 최대한의 기대치일 것이다. 현재의 야권 정치인들과 지지자에겐 ‘계몽’ 혹은 ‘세뇌’라는 보수의 무기를 통해 경쟁하는 것을 포기하고, 자아성찰을 하며 각자의 처지를 가진 이들과 소통하며 대안을 찾는 자세가 절실하게 필요하다. 이것이 진보적 가치를 확산시키는 길이면서 보수세력과의 경쟁을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국민방송 운동’에 실려 있는 열망이 과연 이 방향을 지행하고 있는지를 그 주체들은 끊임없이 반성하고 고민해야 할 필요가 있다.

▲ 지난 24일자 한겨레 사설. 시민들의 열망에 고무되는 것은 이해하지만 진보언론도 현실적으로 가능한 언론의 역할과 기능에 대해 냉정하게 평가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자발적 움직임'이 의미를 지니려면 그것이 지향하는 방법이 실현가능하고 필요한 것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겨레와 미디어오늘 등의 매체의 관련 보도에서는 안타깝게도 그러한 부분을 찾기 어려웠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