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홍열 칼럼] 공교육에서 다루지 않는 내용이 수능에 나오는 문제들, 이른바 '킬러문항'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계속되고 있다. 발단은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에서 시작됐다. 지난 15일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에게 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윤 대통령은 "공정한 변별력은 모든 시험의 본질이므로 변별력은 갖추되 공교육 교과과정에서 다루지 않는 분야는 수능에서 배제하라"고 지시했다. 지난해 대통령 취임 후부터 수능 변별력 이유로 고등학교 교과 과정을 벗어나는 킬러문항을 출제하지 않도록 지시했지만 올 6월 모의평가에서도 여전히 해당 지시가 이행되지 않자, 윤 대통령은 교육부 대학입시 담당 국장을 경질했다. 

윤 대통령의 발언 이후로 대부분의 언론사들은 킬러문항의 실제 사례를 분석 기사와 함께 집중 보도하기 시작했다. 사례로 나온 문항들을 접한 사람들의 반응은 대부분 비슷했다. 너무 어려워 풀 수 없다는 것이다. 국어 영역의 경우 지문 자체에 대한 이해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필자의 느낌도 별반 다르지 않다. 꽤 많은 독서량이 뒷받침되어야만 독해가 가능한 지문을 고전 한 권 제대로 읽을 시간이 없는 학생들이 읽고 이해한다는 것이 경이롭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그리고 그 어려운 문제를 이해하고 정답을 맞히는 학생들이 있다는 것이 더 경이롭게 여겨졌다. 윤 대통령의 분노가 어느 정도는 이해됐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2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사교육비 경감 대책과 사교육 카르텔 근절을 위한 대책을 발표한 후 수능 '킬러문항' 공개를 지켜보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2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사교육비 경감 대책과 사교육 카르텔 근절을 위한 대책을 발표한 후 수능 '킬러문항' 공개를 지켜보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윤 대통령의 발언 이후 교육부가 내놓은 솔루션은 간단했다. 앞으로 수능 출제 방향은 '변별력은 갖추되 공교육 과정에서 다루지 않는 내용을 배제'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현장 교사를 중심으로 '공정수능평가 자문위원회'를 설치해 출제 전략 수립을 자문하도록 하고 시험 후에는 지난 출제 내용에 대해 평가하며 개선안 마련을 돕도록 했다. 출제단계에서는 현장교사 중심으로 '공정수능 출제 점검위원회'를 만들어 활용하도록 했다. 이외에도 사교육 카르텔·부조리 신고센터를 설치하고 2주간 집중신고기간을 운영하는 등 수능 킬러문항을 방지하기 위한 교육부의 고육지책들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이런 계획과 추진 의지에도 불구하고 킬러문항이 없어질 가능성은 희박하다. 우선 윤 대통령과 교육부 모두 변별력의 필요성은 동의하고 있다. 변별력은 필요하지만 공교육 과정의 범위에서 출제하라는 것은 현실적으로 쉬운 문제가 아니다. 일정한 점수만 되면 모두 합격하는 공인중개사 시험과 달리 수능은 철저하게 상대평가에 기초하고 있다. 누구나 다 좋은 점수를 받게 설계되어 있다면 그것이 이미 수능이 아니다. 상위권 학생들을 변별하기 위해 고난도 문제가 필요하다는 현실이 바뀌지 않으면 어떻게든 어려운 문제를 낼 수밖에 없다. 국어 수리 영역에서 킬러문항이 없어지면 과학 사회 영역에서 준킬러문항이 등장할 수 있다. 

변별력이 요구되는 이유는 성적에 차이를 두기 위해서다. 차이는 바로 차별로 연결된다. 학생들이 명문대를 가려고 노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명문대 진학이 취업, 승진, 연봉, 사회적 네트워크 구축 등 사실상 모든 분야에서 유리하다. 그리고 이런 메리트는 평생 유지된다. 시험 하나로 차이가 차별로 전환되는 불합리한 관습이 우리 사회에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에 학생들은 열심히 공부하고 교육부는 열심히 공부한 학생들을 선별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아직도 전근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다행히 전근대에서 근대로 전환되는 시그널이 여러 분야에서 보이고 있다. 

정부가 '사교육 카르텔'을 겨냥해 집중단속을 시작한 22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학원 앞에 수업 내용과 관련된 광고문구가 적혀있다. 교육부는 '공교육 제고 방안'을 발표하며 최근 논란이 된 수능 킬러문항 등과 관련해 이날부터 2주간 학원 과대·과장 광고 등에 대한 집중 신고 기간을 운영한다고 밝혔다. (서울=연합뉴스)
정부가 '사교육 카르텔'을 겨냥해 집중단속을 시작한 22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학원 앞에 수업 내용과 관련된 광고문구가 적혀있다. 교육부는 '공교육 제고 방안'을 발표하며 최근 논란이 된 수능 킬러문항 등과 관련해 이날부터 2주간 학원 과대·과장 광고 등에 대한 집중 신고 기간을 운영한다고 밝혔다. (서울=연합뉴스)

명문대를 졸업하고도 취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대학에서 배운 것들이 사회에서 도움이 못되기 때문이다. 이런 경향은 여러 분야에서 일어나고 있지만 특히 문과에서 심하다. 문과 계열에서 배운 것들의 사회적 유효기간은 거의 종점에 와있다. 필요하다고 해도 소수의 전공자들만 있으면 된다. 대부분 AI로 대체가 가능한 일이다. 이런 추세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 심해진다. AI대체가 쉽지 않은 의치대의 경우 지금과 같은 경쟁률이 한동안 유지되겠지만 대부분 대학 교과과정은 개혁 차원의 전환이 필요하다. 그러나 많은 대학이 아직도 전근대적 교과과정에 매몰되어 미래의 거대한 흐름을 애써 외면하고 있다. 

소수의 천재를 선별하기 위한 킬러문항은 분명 필요하다. 그들을 위한 별도의 교과과정 역시 필요하다. 그러나 대부분의 평범한 학생들에게 중요한 것은 명문대가 아니라 직업과 연결되는 실질적인 교과과정이다. 대학의 브랜드가 아니라 무엇을 어떻게 배우느냐가 더 중요하다. 킬러문항을 둘러싼 논쟁은 전환기에 잠시 나타난 해프닝으로 보인다. 시대가 흘러도 일부 명문대학은 여전히 존재하고 또 필요하겠지만 대부분 대학의 입학 기준은 실용적 판단에 의해 바뀔 것으로 보인다. 아니 그렇게 되어야 한다. 지금 정부에서 해야 할 일은 킬러문항을 갖고 사회적 논란을 만들 것이 아니라 대학 교과 과정을 혁명적으로 개혁하고 대학의 구조 조정을 가속화시키는 일이다. 

☞ 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미디어스’를 만나보세요~ 구독하기 클릭!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