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중고등학생 사이에서 '붕붕주스'라는 것이 은밀히 유행한다고 한다. 말 그대로 몸을 '붕붕' 띄워준다고 하여 붙인 이 액체는 에너지 드링크에 과립형 비타민을 섞여 제조한 것이다. 학생들이 직접 제조하기 때문에 마트에서나 편의점에선 찾아볼 수 없다.

이 '붕붕주스'는 카페인이 대량 함유되어 있기 때문에 마시면 마치 '환각제'를 흡입하는 기분이라고 한다. 그래서 식약청과 언론을 줄곧 '붕붕주스'의 위험성을 알려왔고, 청소년들에게 이 '붕붕주스'를 멀리할 것을 권하고 있다. 그럼에도 '붕붕주스'의 인기는 식을 줄 모르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요즘 중고생들은 마트에서도 팔지 않는 이 '붕붕주스'를 왜 구태여 손수 만들어 마시는 것일까. 청소년들 사이에서 '붕붕주스'는 '마법의 묘약'과 같다. 마시고 나면 잠시 정신을 잃는 부작용이 간혹 있긴 하지만, 한번 마시면 3일 체력을 하루에 몰아서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 청소년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온 것 같다. 그런데 왜 중고등학생들에게 이런 정체불명의 음료가 필요했을까.

18일에 방영한 KBS <학교 2013>의 주요 에피소드는 '붕붕주스'로 요약될 수 있다. 서울시내 학교에서 최하위권 성적을 기록 중인 승리고에서도 '붕붕주스'를 마시는 학생들이 늘어나고, 그 '붕붕주스' 효력에 혹한 학생들은 곧바로 '붕붕주스' 제조에 들어간다.

승리고등학교 내에서 전교 1등을 놓치지 않는 송하경(박세영 분)도 마시는 즉시 엄청난 체력을 준다는 '붕붕주스'를 외면할 수가 없다. 특수목적고에 떨어지고 승리고에 입학한 게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불행이라고 여기는 송하경은 어떻게 해서든 서울대에 가기 위해, 반 친구들 모두에게 비밀로 하고 강남 대치동에 특목고 학생들만 다닌다는 학원에 다닐 정도로 대학 입시에 남다른 공을 들인다.

간혹 변기덕(김영춘 분)처럼 평소 공부에 관심이 없지만 벼락치기로 시험을 잘 보기 위해 '붕붕주스'를 먹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이런 케이스가 대부분이라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이 아이들이 몸에도 좋지 않은 '붕붕주스'를 마시는 이유는 동일하다. 성적이 우선인 학교에서 살아남기 위해, 좀 더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 며칠 잠도 안자고 시험 공부할 수 있게 도와준다는 '독약'을 꿀꺽 마시는 것이다.

결국 시험을 더 잘 보려는 욕심에 붕붕주스를 마신 송하경은 그 부작용으로 복도에서 졸도한다. 그런데 붕붕주스라는 생소한 이름의 음료를 마시고 정신을 잃는 경우는 드라마 속 꾸며진 과장된 설정이 아니라, '붕붕주스'를 생활화한다는 요즘 학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진풍경이라고 한다.

남몰래 특목고생들만 다니는 학원까지 다니는 하경의 서울대 입학을 향한 굳은 의지는 '꼭 저렇게까지 하면서 좋은 대학을 가려할까'하는 일종의 회의감이 들게 한다. 그러나 송하경은 이 험난한 세상을 잘 살아가는 법을 일찍이 터득했을 뿐이다. 학력을 철폐한다고 하나, 결국은 명문대 출신들이 그렇지 못한 학생들보다 성공할 확률이 더 높은 세상. 그래서 잘나가는 학원 강사를 하다가 고액 과외가 탄로나 잠시 승리고에서 교사 노릇을 하게 된 강세찬(최다니엘 분)은 학생들에 언제나 현실을 주입시킨다. 오히려 학생들에게 자신이 원하는 꿈을 찾아가라는 정인재(장나라 분)의 말이 지극히 비현실적으로 들릴 정도다.

그러나 중고등학교 6년을 입시에 모두 바치면서 명문대에 들어갔다고 해도, 그들의 고통은 이제 겨우 시작일 뿐이다. 지긋지긋한 대학 입시만 끝나면 모든 게 해결될 줄 알았는데, 명문대 입시는 그나마 남들보다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통로의 문턱만 간신히 넘었을 뿐, 대학생이 되도 학생들은 어쩌면 고등학교 시절보다 더 처절하고 피터지게 공부하여야 한다.

그래서 고등학교 때 우연히 '붕붕주스'를 마시게 된 학생들은, 대학생이 된 이후에도 어쩔 수 없이 '붕붕주스'를 꿀꺽 마신다. 심지어 야근에 지친 직장인들 사이에서도 '붕붕주스'는 단기간에 체력을 보강하는 음료로 각광받는 추세다. 치열한 경쟁에서 승리한 자만이 모든 것을 다 누리는 신자유주의, 무한경쟁 체제에서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 '붕붕주스'와 같은 정체불명의 환각제를 청소년, 대학생들에게 권하는 시대로 만든 것이다.

청소년들의 건강을 위해 이 '붕붕주스'를 '불량식품'으로 정하고 강하게 규제할 수 있을까. 하지만 이 음료는 애초 시중에서 팔지 않기 때문에 금지시킬 방법도 묘연하다. 그저 과거처럼 어른들 말씀 잘 들어 '붕붕주스'를 멀리하는 청소년들의 의식변화만을 기대해야 할 판국이다.

다수의 학생을 제치고 높은 성적을 거둔 학생만이 대우받고, 또 그나마 안정된 미래가 보장되어있는 사회에서 일종의 지름길이 될 수 있는 '붕붕주스'는 끊으려야 끊을 수 없는 '마약'과 같다. 오늘 하는 투표가 '붕붕주스'를 마시는 학생들의 위험한 행보를 막을 수 없겠지만, 그래도 구태여 '붕붕주스'를 마시지 않아도 살 수 있는 사회에 아주 약간의 기대를 걸고 투표장으로 향한다. 그저 지금 자라나는 아이들과 앞으로 태어날 아이들은 굳이 '붕붕주스'를 마시지 않아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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