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고브릭 실눈뜨기] 버트 파벨만(폴 다노), 미치 파벨만(미셸 윌리엄스) 부부는 어린 아들인 새미를 극장에 데려간다. 태어나 처음 찾은 극장이 두려운 새미를 진정시키기 위해 아빠인 버트는 초당 24프레임의 잔상이 뇌에 남기는 과학적 원리로 영화를 설명한다. 반면 엄마인 미치는 ‘영원히 잊히지 않는 꿈’이 될 거라며 달랜다.

그렇게 입장한 극장에서는 세실 B. 드밀 감독의 <지상 최대의 쇼>가 상영됐고 기차가 충돌하는 장면에 새미는 큰 충격을 받는다. 곧 돌아온 하누카 때 새미는 모형 기차를 사달라고 버트와 미치에게 조르고, 선물 받은 모형 기차를 밤중에 몰래 충돌시킨다. 버트는 기차를 고장 내면 안 된다고 혼내지만, 새미가 원하는 걸 눈치챈 미치는 버트의 8mm 카메라를 이용해 기차의 충돌 장면을 찍도록 허락한다.

<파벨만스>에서 유독 튀는 컷이 두 번 나온다. 첫 번째는 버트와 미치가 헤어지기로 했다고 가족들에게 설명하는 순간이다. 갑작스러운 이혼 소식에 새미와 여동생들은 큰 충격을 받는다. 울음과 침묵이 교차하는 동시에 카메라를 들고 가족들을 촬영하는 새미의 모습이 보인다. 물론 실제상황은 아니지만 스필버그의 어린 시절이 현실적인 톤으로 그려지는 <파벨만스>에서 상상이 이미지로 연출된 유이한 장면이다.

이 장면은 희로애락을 체험하는 개인이자, 극적인 아이템을 찾아다니는 창작자이기도 한 새미의 자의식이 끝내 분열됐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파벨만스>가 흥미로운 지점도 여기에서 시작한다. 블록버스터의 시대를 연 <죠스>의 제작기라던가 아카데미 감독상을 향한 도전 등, 대중성과 작품성을 겸비한 무수한 히트작을 만든 스티븐 스필버그의 전기영화라면 떠올릴 수 있는 무수한 소재들을 뒤로한 채 유년기의 방황으로 우리를 이끈다.(*이하 영화 <파벨만스>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화 〈파벨만스〉 스틸이미지
영화 〈파벨만스〉 스틸이미지

창작자의 세 가지 시련

유년기의 방황은 외할머니의 사망 소식과 함께 미치의 삼촌인 보리스가 집으로 찾아오며 시작된다. 서커스단원이자 영화업계에서 일해 본 보리스에게 흥미를 느낀 새미는 자기 작품에 관해 설명을 늘어놓는다. 한참 듣던 보리스는 마치 신탁이라도 내리듯 이런 말을 한다. ‘예술이 너의 영혼을 찢어놓고 가족과 예술 중에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찾아올 거’라고. 친구들과 그럴싸한 단편영화를 만들며 재능을 키워나가던 새미였지만, 머지않아 보리스의 예언처럼 창작자이자 개인인 그의 영혼을 분열시킬 시련들이 시작된다.

첫 번째 시련은 작품 제작의 문제다. 원하는 작품만 만들 수 있는 창작자는 없듯 새미도 이제 선택의 갈림길에 선다. 보리스가 돌아간 후 새미는 보이스카우트 친구들과 함께 전쟁영화를 준비하지만, 버트는 얼마 전 가족 캠핑에서 찍은 영상들을 활용해 할머니를 잃고 실의에 빠진 엄마를 위로할 수 있는 영화를 다음 주까지 완성하라고 한다. 새미는 이미 전쟁영화의 촬영 준비를 마쳐서 시간이 없다고 하지만, 버트는 취미보다 가족이 먼저라며 캠핑 영화의 선제작을 강요한다.

새미는 캠핑 영화를 만들며 가족의 삶을 뒤흔들 사건을 겪는다. 캠핑 영화에는 미치가 버트의 절친인 베니와 불륜을 저지르고 있는 장면이 찍혀 있었다. 실망한 새미는 미치를 무시하기 시작하고, 미치는 자신을 피하고 무시하는 새미에게 화를 낸다. 결국 두 사람이 말다툼하는 상황에 이르자 새미는 따로 편집해놨던 불륜의 증거를 보여준다. 오열하는 미치에게 새미는 비밀을 지키겠다고 다짐한다. 본인의 통제력을 벗어난 창작 과정의 무력함, 한 사람의 삶을 뒤흔들 수 있는 파급력이란 두 번째 시련을 겪고 새미는 영화제작을 그만둔다.

영화 〈파벨만스〉 스틸이미지
영화 〈파벨만스〉 스틸이미지

유대인이란 이유로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하던 새미에게 다시 카메라를 잡을 일이 생긴다. ‘땡땡이의 날’이라는 주제로 학교 축제에 상영할 영화를 찍게 된 것이다. 새미는 새로운 영화를 찍으며 주도적으로 자신을 괴롭히던 로건을 영웅처럼 그려낸다. 영화를 본 로건은 새미에게 현실과 달라 자괴감이 든다며 울어버린다. 괴롭힘에서 벗어나고픈 개인적 소망일까. 아니면 단순히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고 싶던 창작자의 본능이었을까. 새미도 알 수 없는 진심과 고민이 작품의 본질을 대하는 창작자의 마지막 시련이다.

<파벨만스>에서 새미가 겪는 시련들은 스필버그가 성인이 됐다고 피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니다. 한정된 시간과 자원으로 만들 수 있는 작품을 선택해야 하고, 통제할 수 없는 현장에서 겨우겨우 제작한 영화가 불러올 사회적 파급력을 고민해야 한다. 창작자가 작품을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무엇인가에 관한 고민도 극장에서 필름이 돌아갈 때까지 붙들고 있어야 한다.

이런 고민의 과정과 결과는 60년간 뛰어난 작품을 만들어온 스필버그의 세계에서 단 한 편의 영화, 단 한 시대로 표현할 수 없다. 가족이 세계의 전부인 유년기라는 <파벨만스>의 배경은 스필버그가 그의 작품 곳곳에 깔아두었던 감정적 원형에 도달해 그의 작품세계를 관통하는 테마를 발견할 수 있는 유일한 시공간이다. 또한 선명하게 드러낸 유년기의 상처들은 완벽한 필모그래피를 쌓아온 거장에게서 인간적인 연민을 느끼게 하는 지점이다.

영화 〈파벨만스〉 스틸이미지
영화 〈파벨만스〉 스틸이미지

스필버그의 지평선이 남긴 꿈

버트와 미치는 결국 갈라섰고, 새미는 버트와 함께 할리우드가 있는 LA에서 살게 된다. 새미는 일단 학업을 이어가지만, 우울증과 공황증세를 보인다. 버트에게 고통을 호소하던 새미는 마지못해 다니던 대학교를 그만두고 수많은 이력서를 돌리고 CBS에 입사해 현장으로 나선다. 그리고 입사 첫날, 선배의 소개로 전설적인 감독 존 포드와 대면한 새미는 그의 방에 걸려있는 사진을 보고 똑같은 질문을 두 차례 받는다.

무엇이 보이느냐는 물음에 횡설수설하던 새미에게 존 포드는 질문을 바꿔 묻는다. 지평선은 어디에 있느냐고. 방금 전보다는 조금 더 자신 있게 사진에서 지평선의 위치를 설명한 새미에게 존 포드는 말한다. ‘지평선이 아래에 있으면 흥미롭다. 지평선이 위에 있어도 흥미롭다. 그런데 지평선이 중앙에 있으면 더럽게 재미없지. 그것만 기억해라’. 존 포드의 말이 무슨 소리인지 이해가 덜된 새미를 보며 존 포드는 꺼지라고 말한다. 이제 두 번째 튀는 컷이 나올 차례다.

존 포드의 사무실 밖으로 나와 세트장이 늘어선 스튜디오에 선 새미. 창작자와 개인의 균형보다 영화의 재미를 위해 살아왔다는 걸 강변하듯, 영화 내내 관조하던 스필버그의 카메라가 요란하게 움직이며 지평선을 아래로 향하고 <파벨만스>의 막이 내린다. 그렇게 중간에 남기를 포기한 지평선의 존재로 비로소 알게 된다. 유년기의 잊지 못할 시련으로 덧그어진 스필버그의 지평선이 창작자의 영역에 머물렀기에, 그의 영화를 찾은 우리가 ‘영원히 잊히지 않는 꿈’의 세계에 머무를 수 있었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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