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대로 ‘드라마의 제왕’이 조금씩 멜로 성향을 띄고 있습니다. 그간 앤서니와 이고은의 멜로를 좀 더 짙게 그려나가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어제 방송된 13회는 그들이 서로의 감정을 교감하는 시간으로 많은 부분을 채우더군요. 산 속에서 길을 잃은 고물 밥차 트럭 안에서, 서로를 부둥켜안고 추위를 이겨내는 장면들로 말이죠.

이고은의 어머니는 ‘경성의 아침’ 스태프들에게 현장 식사를 대접하기를 원합니다. 아침부터 몇 명의 아주머니들과 함께 스태프 수 십 명의 식사를 준비하기 시작하지요. 이제 산 속에서 촬영하고 있는 배우와 감독, 스태프들에게 전달할 일만 남았습니다. 그런데 웬일인지 앤서니는 직원들을 시키지 않고 본인이 자진해서 밥차를 몰고 가려 합니다. 그것도 이고은과 단 둘이서 말입니다.

단둘이 시골길을 달리면서 이고은을 잘 구슬려 재계약을 성사시키겠다는 계획은, 사실 핑계에 불과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앤서니는 이고은을 물끄러미 바라보기 시작했고, 그녀에게 저절로 마음이 가기 시작했죠. 내색하지 않으려고 해도, 조금씩 그녀에 대한 호감이 삐죽거리며 새어 나옵니다. 혹시나 들키지 않을까 하는 아슬아슬한 순간들을 만들어 내면서 말입니다.

촬영장으로 가던 앤서니와 이고은은 산 속에서 길을 잃습니다. 네비게이션 없이 가는 초행길에 옆에 앉은 이고은은 제대로 지도를 볼 줄도 모르는 듯했죠. 핸드폰도 안 터지는 깊은 산 속에 영락없이 갇혀 버린 앤서니와 이고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고물 밥차 트럭은 이제 시동마저 걸리지 않습니다. 누군가가 자신들을 찾아 줄 때까지, 그들은 뜨거운 국통을 끌어안고 매서운 산속의 추위를 견뎌내야 하는 신세가 되어 버립니다.

밤이 깊어가면서 추위는 견디기 힘들 정도로 심해지고, 그들의 손과 발은 꽁꽁 얼어붙어 버릴 듯합니다. 스타일 구겨지는 것 때문에 국통 하나 제대로 끌어안지도 못하는 앤서니는, 누구보다 추워 죽을 것만 같습니다. 결국 추위를 견디다 못해 이고은에게 제안 하나를 하죠. 서로를 끌어안으면서 체온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인 것 같다고 말입니다.

그들은 밤새도록 서로를 끌어안습니다. 겉으로는 추위를 견디기 위해서였지만, 사실은 서로의 마음에 자신들조차도 모르게 자리잡은 깊은 호감을 표현한 것이지요. 서로의 체온을 느끼는 그 순간들이 사랑의 시발점이 되는 듯했으며, 그들의 멜로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음을 알리는 결정적인 장면이 되기도 했습니다.

뭔가 수상한 기운을 느낀 앤서니의 옛 연인 성미나가 그들의 멜로에 끼어들 조짐을 보이기 시작하면서, 앞으로 묘한 삼각관계의 구도가 형성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야말로 멜로 성향을 더욱 확실하게 드러낼 것임을 보여준 ‘드라마의 제왕’입니다. 막판에 그려지는 멜로로 지금까지 놓쳤던 시청률을 한 번쯤은 잡아보겠다는 심산일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어제 ‘드라마의 제왕’이 2회를 연장 방송하겠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16회로 예정되었던 작품에 2회를 더해 18부로 마무리를 짓겠다는 발표였지요. 앤서니와 이고은의 멜로를 조금 더 부각시키고, 전체적인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서 연장 방송을 하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어쩌면 시청률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드라마의 제왕’이, 이대로 저조한 성적으로 끝낼 수는 없다는 다짐 끝에 내려진 결정일 수도 있습니다. 어제 방송된 13회 시청률은 7.2%! 동시간대 드라마들 중에서 꼴찌를 기록하고 있는 상황을 어느 정도는 타파해 보자는 제작진의 오기가 담겨 있는 결정일 수도 있지요.

그런데 한편으로 생각하면 참 이상한 결정이고, 그에 대한 배우들과 시청자들의 반응도 참 이상하기만 합니다. 아무도 ‘드라마의 제왕’ 연장 방송에 딴지를 거는 사람들이 없으니 말입니다. 충분히 싫은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상황입니다. 우선 시청률도 저조한데 무슨 연장 방송이냐는 SBS 측의 호통을 예상해 보지 않을 수가 없지요.

게다가 시청률이 안 나오는 상태에서 배우들이 연장 방송을 순순히 허락할 리는 만무합니다. 드라마가 한창 잘 나간다 할지라도, 이런 저런 조건을 들이미는 배우들과 어떻게 해서든 설득해 보려는 제작진간에 실랑이가 있기 마련이거든요.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드라마의 제왕’ 에는 이렇다 할 삐걱거림이 전혀 들려오질 않습니다.

오히려 모든 출연진과 스태프들, 제작진, 심지어 SBS까지도 한 마음이 되어 연장 방송을 하기로 결정했다는 훈훈한 소식이 들려올 뿐입니다. 배우들의 깐깐한 투정은 없었으며, 제작진들은 더욱 열정적으로 변했고, 방송사는 끝까지 유종의 미를 거두라는 격려만 있을 뿐이었습니다. 시청률 7.2% 짜리 드라마를 연장하겠다는 제안 앞에서 말입니다.

그들 모두에게 시청률은 별 문제가 되지 않아 보였습니다. 그보다 작품에 대한 완성도와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굳은 결의에만 집중하는 듯했죠. 그리고 ‘드라마의 제왕’을 시청하는 시청자들의 소중함을 잊지 않는 배우들과 제작진, 방송국인 것 같아 훈훈한 마음까지 느껴졌습니다. 드라마 연장 방송 소식을 이런 마음으로 접한 적이 또 있었나 싶을 정도로 말입니다.

요즘 MBC의 행보는 안타깝다 못해 비참하기까지 합니다. 통보 없이 무자비하게 시트콤, 예능 프로그램 등을 잘라내는 것을, 파격적인 개혁의 행보로 여기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2013년 시청률 1등 방송사로 만들겠다는 MBC의 대단한 야심에 ‘와우!’하며 박수를 보내는 사람이 있을까 싶죠. 시청률 저조 운운하며 기준점도 대안도 없는 폐지를 일삼는 MBC의 행보에, 시청자들은 그저 실망하고 또 실망할 뿐입니다.

‘드라마의 제왕’의 연장 방송을 허락한 SBS의 행보는, 실적주의만을 표방하고 있는 MBC를 부끄럽게 만든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비록 시청률 순위에서는 꼴찌를 기록하고 있지만, 배우들과 제작진의 주제의식과 열정을 높이사 주어야 할 필요도 있다는 것을 일러준 본보기가 된 듯해서 말입니다. ‘시청률 1위를 향해!’라는 구호만 외치고 있는 MBC를 찌질하게 만든 통쾌한 연장 결정인 듯싶어요.

그래도 MBC는 변함이 없을 겁니다. 어쩌면 꼴찌 드라마에 2회 연장 방송을 허락한 SBS 의 행보를 보며 쯧쯧거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작은 생각의 차이가, 결국 방송사의 미래를 결정하는 초석이 되지 아닐까요? 앞으로 몇 년 후, SBS 가 MBC를 바라보며 쯧쯧거리는 상황이 오게 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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