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소설가 김은희] ‘전화벨이 울려요.’

가슴이 뛰기 시작한다. 모르는 사람이면, 나와 관계없는 사람이라면 받지 않으면 그만이지만 ‘아는 사람’이다. ‘아는 사람’, 혹은 ‘알지도 모르는 사람.’ 친구다. 선배다. 거래처 사람이다. 손에서 땀이 나기 시작한다. 망설이는 사이에 전화를 끊기고 부재중 표시가 뜬다. 다시 고민이 시작된다. 전화해야 하나, 문자를 남겨야 하나? 뭐 하나 쉬운 게 없다. 나는 콜포비아인가?

누군가와 말하는 게 이토록 어려운 일이 될 줄 몰랐다. 만나지 않고, 전화하지 않고, 될 수 있으면 그게 무엇이 되었든 메일로, 문자로 해결하고 싶다. 요즘 전화 통화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다. 전화 통화가 어려우니 대면은 생각만 해도 두렵다. 특히 MZ세대에게서 많이 나타나는 현상으로 ‘콜포비아’라고 한다. 말 그대로 전화 공포증이다. 전화(call)+ 공포증(phobia)의 합성어로 전화 통화를 꺼리는 현상을 말한다.

이미지 출처=Pixabay.com
이미지 출처=Pixabay.com

20대, 30대인 MZ세대는 디지털 소통이 익숙한 세대로 비대면이 더 친숙하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소통 방식이 많이 달라졌다. 코로나19로 홀로 있는 시간이 장시간 지속되면서 생활 모습도 많이 달라졌다. 사람들과 만남, 관계를 이어가는 방식, 소통의 방식에서 비대면이 주가 되었다. 직접 만나지 않아도 만남이 이루어지고, 관계를 이어 나갈 수 있고, 소통할 수 있게 되었다. 학교 수업도, 회사 회의도 화상으로 진행되고, 근무도 재택근무로 전환되었다.

비대면 세상에서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문자로 소통하는 방식에 익숙한 MZ세대의 패턴이 더 강화되는 시간이었다. 대학에 입학했지만, 강의실 근처에도 가보지 못한 채 비대면으로 수업이 진행되었고, 동기도 만날 수 없었다. 회사에 입사했지만, 사내에서 대화 금지로 업무에 관한 이야기뿐 아니라 잡담도 문자로 주고받았다. 필요한 것이 있으면 인터넷을 이용하면 되었다. 앱 하나면 주문, 배달 모두 해결되었다. 전화를 걸어 상담원과 상담하지 않아도 손가락으로 화면을 몇 번 터치하면 주문이 완료되었고, 궁금한 것이 있으면 문자로 질문하고 바로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비대면에서 대면으로 일상이 복귀되면서 관계가 예전과 같지 않게 낯설게 느껴졌다. 만나지 않던 사람들을 만나 같은 공간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 힘들고 어려워졌다. 사람들과 대화하고 관계를 만드는 방식을 잊어버렸다. 어떤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대화를 어떻게 이끌어 가야 할지 진땀이 난다. 서로 얼굴을 보지 않고 문자로 하면 편한데, 하는 마음은 전화벨 소리에도 깜짝 놀라 가슴이 벌렁거린다. 일단 전화를 받지 않고 끊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전화를 받지 못했다는 문자와 전화를 받을 수 없는 상황이라는 문자를 보낸다. 전화 통화를 하지 않고 문자로 대화를 이어갈 구실을 찾는다. 전화를 걸 때도 받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크다. 통화연결음이 길게 울리다 받지 않으면 내심 안도한다. 통화를 하지 않아도 되는 구실이 생긴다. 당당하게 문자로 용건을 말할 수 있다.

이미지 출처=Pixabay.com
이미지 출처=Pixabay.com

얼마 전 모임에서 MZ세대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다 친구 A가 퇴사한 직원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아침에 문자가 왔는데 퇴직하겠다는 문자였다고 했다. 퇴사할 때도 문자로 통보하고 나오지 않는다는 말에 정말? 하고 되물었다. 친구 B는 입사한 지 일 년이 넘은 직원이 거래처에서 걸려 오는 전화를 회피해 골치 아팠다고 말했다. 전화벨이 울려도 받을 생각을 하지 않았고, 심지어 자신 책상에서 울리는 전화도 받지 않았다. 뭐가 문제냐고 물으면 우물쭈물 말하지 못했다. 전화 통화가 어렵다고 말해 거래처에서 전화가 걸려 왔을 때 받는 방법, 대처하는 방법까지 모두 알려주어야 했다. 친구는 웃으며 말했다.

요즘 많아. 전화 통화하는 걸 어려워하는 MZ세대가 많아. 대화의 방식을 모르는데 어떡해, 가르쳐야지. 그 직원 말이야. 그래서 연습해. 말하기, 대화하기 연습. 

비대면이 익숙한 사회라고 하지만 직접적인 만남을 통한 소통, 대화를 모두 무시하고 건너뛰고 살 수는 없다. 언제까지 ‘톡’으로만 이야기할 수 없다는 뜻이다. 콜포비아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노력해야 한다. 친구 회사의 직원처럼 연습해야 한다. 편한 대상을 찾아 마음 놓고 통화하는 것부터 시작해 차츰차츰 범위를 넓혀가는 방법도 좋다.

밖에 나가면 점원이 없는 상점도 많고, 점원이 있다고 하여도 주문을 직접 받지 않는 상점도 많다. 대면 소통이 줄어드는 시대로 접어들었기 때문에 소통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관계를 만들기도 어렵고, 그나마 있던 사람과 관계가 끊길 수 있다. 사람을 만나 대화를 나누는 것은 어쨌든 에너지가 필요하다. 친분의 정도에 따라 에너지의 필요량이 달라지겠지만 아주 친하고 격 없는 사람을 만난다고 하여도 에너지는 필요하다. 만나는 사람과 친분을 쌓고 이어가고 싶다면 그만큼 공을 들여야 한다.

대화하는 방법을 잊어버리지 않도록,

목소리를 잊어버리지 않도록, 당신의 목소리를 들려주세요. 

김은희, 소설가이며 동화작가 (12월 23일 생), 대전일보 신춘문예 소설 등단, 국제신문 신춘문예 동화 당선, 제30회 눈높이아동문학대전 아동문학 부문 대상 수상.   

  ☞ 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미디어스’를 만나보세요~ 구독하기 클릭!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