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소설가 김은희] “우리 아이는 아무 생각이 없어.” 친구와 후배를 만나면 딸, 아들을 말할 때 생각 없이 사는 아이라고 걱정하며 말하는 것을 자주 본다. “도대체 하고 싶은 게 없어. 뭐가 되고 싶은 것도 없고, 재밌는 것도 없어.” 친구는 답답해 죽겠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나는 한숨을 쉬는 친구에게 항상 하는 말이 있다. “꼭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살아야 해? 그 나이에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살겠니. 딱히 재밌는 것도 없을 텐데. 무엇이 되고 싶다는 생각은 더 하지 않지. 내버려 둬. 우린 하고 싶다고 해서 그대로 되었어? 강요하지 마. 착하고 건강하면 됐다.”

친구도 생각한 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래도 내 아이는 다른 아이와 달리 건설적인 생각을 하며 살기를 원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내 아이도 다른 아이들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남들이 보면 별 재미도 없는 일인데 친구들과 낄낄거리고, 주말이 되면 아침부터 게임 약속을 하고, 학원 시간이 빠듯해질 때까지 집에서 빈둥거리다 엄마의 잔소리를 듣고야 집을 나서는 다른 아이들과 내 아이가 쌍둥이처럼 닮았다.

생각해 보면 나도 그랬다. 나는 요즘 말하는 ‘아싸’였다. 학교생활에 관심 없고, 규칙에도 관심 없고, 세상 모든 게 재미없다는 표정으로 반항으로만 똘똘 뭉쳐 있는 학생으로 오직 친구들과 떡볶이를 먹고, 혼자 음악을 듣고, 나무 아래 앉아 있는 것에만 관심 있었다. 일기장은 마치 불치병에 걸려 당장 내일이면 삶이 끝나는 사람처럼 온갖 절망적인 단어와 가시 돋친 단어로 도배했다.

이미지 출처=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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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내 꿈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글을 쓰는 작가가 되는 것이었다. 시인이 되고 싶었다. 나름 고등학교 때까지는 시를 잘 짓는 학생이었다. 현재 작가는 되었지만, 시인은 되지 못했다. 그래서 아직도 시인을 보면 시집을 보면 가슴이 일렁거린다. 또 다른 하나는 새가 되어 하늘을 나는 것이었다. 꿈에 대해 친구에게 말한 적이 있었다. 친구는 어이없다는 눈으로 쳐다보며 말했다. 그냥 비행기를 타고 날아다녀. 새는, 하며 코웃음 쳤다. 허무맹랑한 꿈이었다. 그때 꾸었던 허무맹랑한 꿈이 말도 안 되는 생각이라도 창피하진 않다. 나는 늘 상상하는 아이였다. 그것이 긍정적인 상상이든, 부정적인 상상이든 생각하고 상상했다.

그 시절은 어떤 꿈을 꾸어도 허락되는 나이였다. 세상에서 가장 재미없는 표정을 짓고 있어도, 누구와 눈을 마주치며 이야기하지 않아도 용납되는 나이였다. 그래도 지금은 어른이 되어 글을 쓰며 살고 있다.

아이들에게 무엇이 될 거냐고 묻지 말자. 아이들은 모른다. 무엇이 되고 싶다고 말하는 아이는 꿈을 응원해 주면 되지만, 무엇이 되고 싶다고 말하지 못하는 아이를 한심하게 보며 꿈도 없이 사냐고 하지 말자. 아이는 크면 무엇이든 될 것이다. 단, 조건이 있다. 상상하도록 내버려 두자. 말 그대로 ‘꿈’꾸도록 내버려 두자. 현실과 동떨어진 꿈, 상상이라도. 

논술 강사로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을 가르칠 때였다. 논술로 대학 가겠다고 오는 학생들이 무슨 과를 가겠다는 생각도 없고, 무엇을 하겠다는 생각도 없이 오는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다. 논술 준비를 하면서 전공에 대해 생각해 보는 학생들도 많았다. 하고 싶은 전공을 찾는 학생들도 있었지만 찾지 못하는 학생들이 더 많았다. 남학생 중 많은 학생이 경영학과를 가겠다고 말했다. 정말 경영에 관심이 있는 학생도 있었지만, 전공을 선택 못 해 경영학과를 선택하는 학생들이 더 많았다.

이미지 출처=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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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을 전공해서 뭘 할 건데?” 남학생은 나를 힐끔 쳐다보더니 말했다. “피씨방. 그냥 편하게 돈 벌고 싶은데.” 피씨방을 하려면 경영학과는 가지 않아도 된다는 말에 대학은 가야 하니까, 다들 경영학과를 가니까. 라고 남학생이 답했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될 때까지 아이들이 나를 되돌아볼 틈도 없이 엄마 품에서 학원과 학교로 오간 탓이다.

‘내가 무엇이 되고 싶은지 아는 사람?’ 없다. 내가 누구인지 모르는데 나답게 살기란 너무 어려운 일이다. 사실 나도 아직 나다운 게 무엇인지 모른다.

물론 대학에 입학한다고 하여도 내가 누구인지, 나답게 사는 게 무엇인지 명확하게 정의하긴 어렵다. 전공이 맞지 않아 도중에 그만두는 사람도 있으며 전공을 살려 직업을 구해 능력을 펼치는 사람은 졸업생 중 몇 명 되지 않는다. 내가 꿈꾸던 꿈과 근접한 삶을 사는 사람도 있고, 아주 다른 길로 들어선 사람도 있다. 너무 늦지 않았어, 하는 나이에 꿈을 이루고 왕성한 활동을 하는 사람도 있다. 지금, 근접하였든, 멀어졌든, 다시 시작하였든 모두 나답게 사는 법을 찾아가는 중이라는 것이다.

당신에게 아직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니 마음껏 ‘꿈’꾸고, 상상해도 된다. 그럼 우주가 당신 앞에 꿈꾸는 미래를 가져다줄 것이다.

김은희, 소설가이며 동화작가 (12월 23일 생), 대전일보 신춘문예 소설 등단, 국제신문 신춘문예 동화 당선, 제30회 눈높이아동문학대전 아동문학 부문 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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