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소설가 김은희] 나는 소설을 쓰고, 동화를 쓰는 작가다. 공모전에 당선되어 며칠 전 당선 소감을 쓰게 되었다. 당선 소감 쓰는 기간은 정해져 있었고, 그 사이 나라에 큰 슬픔이 있었다. 소감문 쓰는 것을 미루다 마지막 날에 써서 보냈다. 행복하고, 기쁘다고 당선 소감문을 쓸 수 없었다. 나는 동화 작가로 아이들이 안전하게 커가는 것을 지켜볼 의무가 있는 사람인데 그럴 수는 없었다.

이태원 좁은 골목에서 많은 사람이 죽는 참사가 있었다. 일요일 새벽에 우연히 켠 핸드폰을 통해 아주 큰 사고가 있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사고 정도로 생각했다. 별일이 아닐 거로 생각했다. 아침부터 약속이 있어 분주하게 움직이며 외출 준비를 하는 바람에 뉴스를 놓쳤다. 코로나로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친구들을 만나 즐겁게 지내고 저녁에 되어서야 돌아왔다. TV를 켰는데 뉴스 특보가 전해지고 있었다. 내가 즐겁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 동안 나라 안은 뒤집혀 있었다.

5일 강원 춘천시 팔호광장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희생자 추모 촛불집회'에서 한 시민이 추모 게시판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5일 강원 춘천시 팔호광장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희생자 추모 촛불집회'에서 한 시민이 추모 게시판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좁고 경사진 골목에서 압사 사고’ ‘핼러윈의 비극’ ‘세월호 이래 최대 인명피해’를 전하는 보도가 계속되고 있었다. 앵커가 말하는 도중에도 사상자는 계속 늘어났다. 나는 앵커가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실감할 수 없었다. 내가 정말 진짜 뉴스를 보고 있는지 의심스러웠다. 오지도 가지도 못하는, 옴짝달싹할 수 없는 인파 속에서 사람들이 살려달라고 울부짖는 절규가 비명과 함께 뒤엉켜 있었다. 구해달라고, 살려달라고, 죽을 것 같다고 절규하는 사람들과 그들을 구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지옥을 방불케 했다. 영화와 책에서만 보았던 지옥이 TV 뉴스에서 재생되었다. 무섭고, 끔찍한 광경이었다.

저기가 우리나라이며, 우리가 알고 있는 이태원인지 믿을 수 없었고, 믿고 싶지 않았다. 도로는 응급실로 변해 있었다. 너무 많은 사람이 차가운 길에 그대로 누워 있었다. 누워 있는 사람들보다 더 많은 사람이 매달려 심폐소생술을 하고 있었다. 얼마나 급박한 순간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뉴스를 끝까지 보기 힘들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나는 아랫입술을 꽉 물고 있는 줄도 몰랐다. 손끝에, 발끝에 쥐고 있던 힘을 풀자 어떻게, 라는 말이 나도 모르게 흘러나왔다.

내가, 내 친구, 내 딸, 아들이 서서 죽었다. 내 친구, 내 딸, 아들이 옆에서 죽는 것을 보았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사람들이 있었다. 내 옆 사람이 죽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알고 있어서 살려달라고 울부짖던 사람들이 있었다. 얼마나 무서웠을까.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그들을 모른 척할 수는 없다. 그들이 겪은, 겪는, 겪게 될 고통을 모른 척할 수는 없다. 그들의 잘못이 아니기 때문에. 이미 그들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참혹하다.

참사가 있고 이틀 뒤 아는 선생님의 문자를 받았다. 아는 분의 글이라고 했다. 참사로 처조카를 잃은 이모부의 글이었다. 초등학생 때부터 보았던 조카는 딸 같은 아이였다. 여행도 같이 다니고, 노후를 책임지겠다며 밝게 웃던 아이였다. 취업을 앞두고 있었다. 그런 조카를 참사로 잃었다. 글을 읽고 난 후 이틀 내내 참았던 눈물이 쏟아졌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10월 31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 압사 사고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한덕수 국무총리가 10월 31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 압사 사고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그리고 왜, 라는 의문과 질문이 남았다. 왜, 매번 이런 참사가 반복될까. 나는 아직도 이해되지 않고 화가 난다. 사실, 이 글을 써야 하는지 고민했다. 나는 이 글을 쓸 준비가 되어 있는가. 쓸 수 있을까. 나에게 물었다. 나는 기자가 아니고 작가다. 참사를 보도하는 기자가 아니기 때문에 감정을 걸러내고 글을 쓸 수 있을지 자신 없었다. 그런데 한덕수 국무총리가 외신 기자회견을 하는 장면을 보고 쓰기로 결심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이태원의 끔찍한 광경을 보았을까. 보았다면 기자회견장에서 농담 따위를 할 수 있었을까. 이 끔찍한 광경을 무엇이라고 생각했기에 농담을 할 수 있었을까. 가슴이 무너져내렸다. 한 나라의 국무총리가 국민적 비극을 앞에 두고 이토록 공감 능력이 떨어지다니 이태원 참사에 대한 진상규명은 참 어려운 길이 되겠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한층 더 무거워졌다.

우리는 일상으로 복귀할 것이다. 하지만 잊지는 않을 것이다. 지켜볼 것이다. ‘몰랐다’라는 말로 일관하는 정부 관계자들에 대한 기사를 보며 오늘도 절망감만 커졌다. 그래도 지켜볼 것이다. 나는 우리나라가 ‘좋은 나라’이길 바란다. ‘당신과 내가 좋은 나라에서 그곳에서 만난다면 슬프던 지난 서로의 모습들은 까맣게 잊고 다시 인사할지도’,도 모르는 좋은 나라.

사망자 156명, 부상자 197명으로 사상자 총 353명과 그의 친구, 가족들. 깊이 애도합니다.

5일 강원 춘천시 팔호광장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희생자 추모 촛불집회'에서 시민들의 애도의 촛불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5일 강원 춘천시 팔호광장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희생자 추모 촛불집회'에서 시민들의 애도의 촛불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 제목과 글 마지막 일부는 시인과 촌장의 ‘좋은 나라’의 가사 중 일부를 사용하였습니다.

김은희, 소설가이며 동화작가 (12월 23일 생), 대전일보 신춘문예 소설 등단, 국제신문 신춘문예 동화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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