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민언련 모니터] 10월 29일 이태원 핼러윈 축제 현장에서 벌어진 참사로 온 사회가 충격에 빠졌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언론은 유가족과 시민들이 사고의 충격을 견뎌낼 수 있도록 돕고, 다시는 이런 사고가 재발되지 않게 원인을 규명하고 대책을 세울 수 있도록 신중한 접근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사건 초기 많은 정보가 뒤섞인 상황에서 언론의 신중하지 못한 보도는 또 다른 피해를 양산할 수 있습니다. 특히 혼란스러운 현장에서 단편적인 정보만 갖고 누군가를 특정해 사고의 원인을 찾는 듯한 보도는 시민들의 슬픔과 분노의 방향을 잘못 유도해 사건 피해자들이 오히려 비난의 대상이 되거나 무고한 사람을 주범으로 몰아갈 수 있어 대단히 위험합니다.

31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에서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및 경찰 관계자 등이 '핼러윈 압사 참사' 현장감식을 마치고 현장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31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에서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및 경찰 관계자 등이 '핼러윈 압사 참사' 현장감식을 마치고 현장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MBC, ‘약물’ 주장 인터뷰이 방송 논란

MBC는 뉴스특보를 진행하는 도중 이번 사건에 대해 ‘단순 압사 사고가 아니라 약이 돌았다는 이야기가 돌고 있다’고 주장하는 시민 인터뷰를 그대로 내보내 논란이 됐습니다. MBC 앵커가 “현장 상황이 어떤지 보이는 그대로 전해달라”고 말하자, 전화 연결된 시민은 ‘처음에는 압사 사고라고 들었는데 단순 압사 사고가 아닌 것 같다. 이태원에서 약이 돌았다는 말이 있는 것 같다’는 취지로 발언했습니다.

생방송 과정에서 이러한 ‘돌발성’ 인터뷰가 생기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닙니다. 대형 사고가 발생하면 혼란스러운 현장에서 목격자들은 다소 정확하지 않은 정보를 전달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앵커의 대응입니다. 세월호 사건을 계기로 2014년 언론인들 스스로 제정한 재난보도준칙 13조와 14조는 ‘확인되지 않거나 불확인한 정보는 보도를 자제하고 불가피하게 단편적이고 단락적인 정보를 보도할 때는 부족하거나 더 확인돼야 할 사실이 무엇인지 함께 언급하여 독자나 시청자가 정보의 한계를 인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뉴스 진행자는 목격자들의 정보가 부정확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정보의 한계를 시청자들이 인식하도록 해야 하지만 MBC 앵커는 목격자의 발언을 다시 한 번 확인했을 뿐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습니다.

사건 시작으로 지목된 “내려가!” “밀어!” 영상, 원인 맞을까?

‘누가 먼저 밀었느냐’는 식의 소위 ‘범인’을 찾으려는 언론의 시도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좁은 장소에 인파가 몰려 벌어진 사고에 누가 밀기 시작했는지는 실제 사건의 원인에 중요하지 않을 뿐더러 그 사람들에게 대형 참사의 고의가 있었다고도 보기 어렵습니다. 언론이 관련 보도에 신중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SBS는 10월 30일 오후 4시경 <“밀어” 고함 뒤 비명이태원 참사 목격자들 공통된 증언>(10/30)에서 “사고 전후 이태원 상황이 담긴 제보 영상”이라며 시민들이 “내려가!”를 연호하는 제보영상을 보도했습니다. SBS뿐 아니라 JTBC <“"뒤로외쳤지만 순식간에사고 직후 혼돈의 순간들>(10/30), TV조선 <“당시 밀어밀어!’ 소리 들렸다정확한 사고 원인 오리무중>(10/30), YTN <[자막뉴스손짓 몇 번에 움직이는 사람들?...이태원 참사현장서 포착된 장면>(10/30) 등 현장에서 시민들이 외친 구호가 사건의 시작이라 짚은 보도가 다수 나왔습니다.

시민들이 “내려가” 구호를 외치는 현장 영상을 보도한 SBS(10/30)
시민들이 “내려가” 구호를 외치는 현장 영상을 보도한 SBS(10/30)

그러나 10월 31일 오전 새로 알려진 사실만 봐도 당시 시민들이 외친 구호가 결정적인 원인이라고 보긴 어렵습니다. 그날 아침 동영상 공유 플랫폼 ‘틱톡’에는 사고 2~3시간 전 시민들이 똑같이 ‘내려가’를 외치면서 질서를 회복하고 막힌 길이 뚫리기 시작하는 영상이 올라왔습니다. 현장에 제대로 된 통제가 있었는지가 문제의 핵심이지, 수백 명이 밀고 밀치는 상황에서 누가 먼저 밀었느냐를 찾는 것은 공허한 논쟁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인터넷 커뮤니티발 소문 잇따라 보도, ‘마녀사냥’ 우려

여기서 더 나아가 인터넷 상의 추측을 그대로 기사화하여 누가 범인인지를 단정하는 듯한 보도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10월 30일부터 온라인상에는 이른바 ‘토끼 머리띠’를 사건의 주범으로 지목하는 게시글이 올라오기 시작했는데, 한국일보 <쏟아지는 밀어밀어” 의혹...온라인 동영상·목격담 잇따라>(10/30)을 시작으로 조선일보 <“5~6명이 밀기 시작”“토끼머리띠 남성” 잇단 증언...경찰, CCTV 분석>(10/31), 중앙일보 <“다들 뒤로’ 외칠때맨뒤서 밀어’ 외쳐경찰, CCTV 분석>(10/31), MBN <목격자 토끼머리띠 남성이 밀라 했다경찰, CCTV·현장 증언 분석>(10/31) 등 보도가 잇따랐습니다.

인터넷 발 ‘토끼머리띠 남성’ 의혹을 그대로 기사화한 언론 보도(네이버 검색화면 캡쳐)
인터넷 발 ‘토끼머리띠 남성’ 의혹을 그대로 기사화한 언론 보도(네이버 검색화면 캡쳐)

이러한 기사는 제목에서 ‘토끼머리띠 남성’이라는 키워드를 경찰의 CCTV조사와 나란히 배치해 마치 경찰이 어떤 남성을 범인으로 특정했다는 인상을 주지만, 기사 내용을 살펴보면 경찰은 CCTV를 ‘디지털증거 긴급분석’ 대상으로 지정하고 조사하겠다고 했을 뿐 누군가를 범인으로 특정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심지어 누군가 ‘밀어!’라고 외쳤다는 주장도 경찰에 따르면 현장 목격자들의 증언이 엇갈리고 있다고 합니다. 세계일보는 <토끼머리띠 남성부터 BJ책임론까지추측성 마녀사냥’ 경계해야>(10/31)에서 검증되지 않은 무분별한 의혹 확산을 경계하는 목소리를 냈습니다.

1989년 영국 힐스버러 스타디움에서도 많은 인원이 경기장에 입장하면서 보호철망이 무너져 94명이 압사하고 766명이 부상당하는 대형 참사가 있었습니다. 그때도 경기장에서 전문적으로 난동을 벌이는 훌리건 5,000여명이 난입해 사고가 벌어졌다는 이야기가 돌았고, 경찰까지 그렇게 발표했으나 영국 정부는 독립적 위원회를 구성해 23년에 걸친 공식 조사 끝에 사고의 원인은 인원 통제를 잘못한 경찰에게 있다고 결론내리면서 사건 피해자들은 ‘훌리건 누명’을 벗을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대형 사고의 원인은 긴 시간 차분히 조사해야 원인을 밝힐 수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단편적인 영상만으로 몇 가지 정황을 짜 맞춰 보도하다가는 잘못된 결론에 이르기 쉽다는 점을 언론은 유념해야 할 것입니다.

* 모니터 대상 : 2022년 10월 29~31일 13시 네이버 뉴스에 송고된 ‘이태원 압사 참사’ 관련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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