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민하 칼럼] 카카오톡 사용을 중단한 지 꽤 오래 지났다. 정치적 결단의 결과물은 아니다. ‘초연결’을 강요하는 빨간 알림 표시로부터 해방되고 싶었다. 모든 메신저 사용을 중단했다. 그런 입장에서 ‘카카오톡 대란’ 사태를 보는 기분은 묘하다. 이번 사태를 대하는 언론과 정부, 정치권의 반응을 보며 또 한 번 ‘적대적 공생’을 떠올렸다.

언론과 정치권은 한목소리로 카카오의 안이한 대처를 비판하고 있다. 한쪽에서 문제가 생기더라도 다른 분산된 자원을 활용해 서비스를 이어가는 대처가 필요했음에도 그러한 일이 가능한 시스템을 갖춰 놓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지적은 일리 있다. 카카오 측이 내놓은 해명은 잘 납득이 되지 않는다. “데이터센터 한 곳 전체가 영향을 받은 것은 이례적인 상황이어서 이원화 조치를 적용하는 데 예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는 것은 애초에 제대로 된 ‘이원화 조치’를 안 했다는 얘기로 받아들여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연합뉴스 자료 사진 
연합뉴스 자료 사진 

그런데, 이런 사태를 방지하려면 어떤 조치를 해야 할까? ‘이원화 조치’를 제대로 하도록 법 제도로 강제성을 부여해야 할까? 여기서 논란의 소지가 생긴다. 전기통신사업법에 카카오, 네이버 등 부가통신사업자에 대한 망 서비스 품질 유지 의무가 규정돼 있다고는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을 통해 품질 유지 의무를 부여할 것인지는 논의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방송통신발전 기본법상 방송통신재난관리기본계획의 수립 시행 대상자에서 부가통신사업자가 제외돼 있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2018년 KT 아현국사 화재 이후 관련 논의가 진행됐지만 지금 문제가 되는 카카오 등 기업의 부담이 크다는 이유로 법 개정안이 처리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어찌보면 지금의 ‘카카오 대란’은 예상됐던 일이라고 볼 수도 있다. ‘기업의 부담’이라는 핑계는 단지 ‘재난’을 늦추는 역할만을 했을 뿐이다.

그런데 뒤집어 보면 지금 상황은 카카오나 네이버가 가진 ‘IT 공룡’으로서의 지위를 국가가 인준하는 연속된 과정으로 비춰지는 면도 있다. 우리는 어느새 카카오나 네이버 없이는 살 수 없는 세상에 살고 있다. 이런 세상이 좋은 것인지 판단하고 논의할 여유는 없다. 그런 논의조차 카카오나 네이버의 플랫폼에서 해야 한다. 우리 사회는 이런 게 좋은 일인지를 따지는 것보다는 ‘IT 공룡’들의 지위를 서둘러 인정하는 것에 초점을 맞춰왔다. 덕분에 ‘국가기간통신망 마비 사태’에 준한다는 평가를 받는 이번 일에 대해서도 카카오는 ‘이원화 조치’를 제대로 적용하기만 하면 기존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고 카카오나 네이버 없이는 살 수 없는 세상도 계속될 것이다.

‘IT 공룡’ 힘의 원천은 가입자 숫자이다. 카카오톡은 서비스 초기만 해도 ‘무료 문자 플랫폼’ 이상의 기능과 의미를 갖지 않았다. 수익 모델도 없었다. 그러나 대다수 국민이 스마트폰과 카카오톡의 조합을 이용하기 시작하면서 국내 대표적 포털사이트를 삼킬 만큼의 위력을 갖게 됐다. 검색 엔진에 불과했던 네이버가 그 역할을 넘어 사실상 정보의 가두리 양식장으로 변모한 것과 비슷한 과정이다.

코로나19는 이들의 위상이 ‘국가기간’의 수준으로 사실상 인준된 결정적 계기 중 하나라고 말할 수 있다. 잔여 백신 예약이나 전자출입명부 등 카카오와 네이버가 방역 시스템의 중요한 일부로 받아들여지게 된 과정에는 정부가 개발한 백신 예약 시스템이 부실하다는 비판이 상당 부분 작용했다. 민간의 도움을 받으면 쉽게 해결될 일을 비효율의 상징인 정부가 무리하게 틀어쥐고 가다 사고가 났다는 식의 비판이 넘쳐났다.

언론과 전문가들의 이런 비판은 물론 정부에 부담이 됐지만, 또 어떤 면에서는 오히려 바라던 바였을 것이다. 정부는 자기가 관리해야 할 시스템의 일부였던 것들을 ‘IT 공룡’들에 아웃소싱하는 것에 아무런 거리낌이 없다. 이제 우리는 국세청, 건강보험공단 등의 고지서부터 예비군 훈련 통지서까지 카카오, 네이버 등과 연계된 ‘국민비서’ 서비스를 통해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이전까지는 ‘보냈다’와 ‘받았다’ 사이의 간극을 정부가 온라인으로 메꿀 수 없어 곤란했던 일이다. 하지만 카카오나 네이버가 자체 개발한 앱이 정부와 국민 사이 연결을 ‘보증’하게 되면서 문제가 해결되었다. 이러한 과정 덕분에 카카오나 네이버가 벌일 수 있는 사업의 기회 역시 많아진 지금의 이 상황에 대해선 아무도 의문을 갖지 않는다.

이러한 지금까지의 과정으로 보면 오늘날의 사태도 같은 방식으로 마무리 될 거라는 예감을 가질 수 있다. 국가가 더 많은 의무를 부여하는 만큼, 카카오와 네이버 등이 정부의 역할을 대신하게 되는 만큼, ‘IT 공룡’들은 이를 기반으로 더 많은 사업 기회를 얻게 될 것이다. 마치 디스토피아 소설이나 영화가 표현하는 것처럼 먼 미래에는 ‘IT공룡’이 국가를 대신할 수도 있다. 물론 대다수의 국민은 그런 흐름에 동조하고 동참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선택지를 가질 수 없다. 그렇다고 ‘IT 공룡’들의 서비스로부터 탈퇴하는 게 답이 되는 것도 아니다. ‘초연결사회’는 이미 거부할 수 없는 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적어도 우리 사회는 ‘초연결’이 누구의 이득으로 돌아가야 하는지, ‘초연결’의 바람직한 모습이 어떤 것인지를 논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데, 세상의 주인으로서 이 필요성을 부정할 수는 없다. 이번 사태가 그런 계기가 될 수 있다면 좋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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