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군 당국이 국방 관련 사건의 공론화나 언론보도를 '위기'로 규정하고 대처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군 당국은 최근 북한의 미사일 도발을 거짓으로 공표하거나 뒤늦게 발표해 논란을 빚고 있다. 군이 작전·안보상의 이유가 아니라 조직 보호를 위해 여론과 언론을 호도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국방부 훈령인 '국방홍보훈령'은 군과 소속기관이 언론 등에 대응할 때 지켜야 하는 일종의 매뉴얼이다. 홍보계획수립, 취재협조, 보도대응과 관련해 권한과 행동요령이 세세하게 규정돼 있다. 

해당 훈령에는 '뉴미디어 모니터링 및 대응 절차'라는 도식이 있다. 해당 도식에 따르면 군은 실시간으로 온라인을 검색하며 이슈가 감지되면 이를 '위기상황'으로 판단한다. 도식에 '위기 지속' '위기 수습' 등의 문구가 명시돼 있다. 사안에 따라 국방부 장·차관에게 보고가 이뤄진다.

군은 이슈 발생 시 담당부서 등을 통해 심층분석해 대응책 존재유무, 파급력, 2차 이슈 파생가능성 등을 따진다. 이후 대응필요성을 평가해 예상되는 파급력에 맞는 대응전략을 짠다. 파급력이 큰 사안의 경우 담당부서에서 관련 자료를 작성하고 대변인실이 대응전략을 수립해 대응한다. 대응 이후에는 진행경과를 별도로 평가한다. 평가결과 위기가 지속되면 대응방향을 재검토하고, 위기가 수습되면 종결한다. 

국방홍보훈령 [별표4] 뉴미디어 모니터링 및 대응 절차 
국방홍보훈령 [별표4] 뉴미디어 모니터링 및 대응 절차 

최근 잦아진 북한의 미사일 도발에 대한 우리 군의 언론·여론 대응은 '거짓말'로 압축된다. 지난 4일 북한의 중거리탄도미사일(IRBM) 도발에 대해 군 당국은 5일 보도자료를 내고 대응력을 과시했다. 미사일 대응을 통해 "도발 원점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대응능력을 보여줬다"고 자화자찬했다. 

그러나 군이 은폐한 사실관계가 드러나는 중이다. 4일 밤 한·미 군사훈련 중 발사한 현무-2C 미사일은 경로를 이탈해 강릉 공군기지 내로 떨어졌다. 이 사고로 굉음과 섬광, 화재가 발생했다는 게 지역주민들의 SNS를 통해 5일 새벽 알려졌다. 그러나 군은 5일 아침까지 침묵했다. 군은 4일 오후 북한 도발에 대응한다는 사실을 기자단에 알리고 '엠바고'(보도유예)를 요청했다. 하지만 지역 주민들은 불안에 떨었다. 5일 오전 낙탄사고에 대한 비판이 확산되자 군은 인명피해는 없었다며 유감표명을 했다. 군은 현무-2C 미사일이 공군기지 내 골프장에 떨어졌다고 밝혔다.  

그런데 13일 해당 현무-2C 미사일 낙탄이 대형 유류저장고 인근에서도 발견됐다. 국회 국방위원회 민주당 간사 김병주 의원은 "군은 낙탄이 군대 내 골프장에 떨어졌다며 사고 가능성이 없었던 것처럼 설명했지만, 탄두가 떨어진 지점에서 200~300m에 군 막사와 교회 등이 있었다"면서 "미사일 추진체가 떨어진 곳에는 수만 리터의 기름이 보관된 대형 유류 저장고가 있었다. 추진체 낙탄 지점에서 불과 10m 거리에는 유류고의 밸브와 다수의 유류관 시설이 있었다"고 밝혔다. 12일 민주당 국방위원들은 낙탄사고 현장 검증을 진행했다. 김병주 의원은 육군 대장(4성 장군) 출신으로 한미연합사령부 부사령관, 미사일사령부 사령관 등을 역임했다.  

김 의원은 "화염 지점에서 30~40m 떨어진 곳에는 정비대와 창고가 있었으며 130m 떨어진 곳에는 병영 막사가 있었고 사고 당시 병사들이 잠을 자고 있었다"면서 "군은 의도적으로 탄두 낙탄 지점만 설명하고 위험 가능성이 없었다는 듯 은폐·축소했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국방부는 유류고가 폭탄투하에도 견딜 정도로 견고하게 구축되어 있다며 김 의원 주장을 "근거없는 부적절한 주장"으로 치부했다. 

국회 국방위 소속인 더불어민주당 김병주 ·김영배 ·송옥주 의원이 12일 오후 강릉 공군18전투비행단을 찾아 오홍균 18전투비행단장, 이현철 육군 미사일전략사령부 2여단장과 함께 지난 4일 발생한 현무-2C 낙탄 사고로 인해 깊게 파인 골프장 페어웨이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군은 4일 현무-2C 외에 동해상으로 에이태큼스(ATACMS) 전술지대지미사일도 2발 발사했는데, 이 중 1발은 추적신호기가 끊겨 실종된 것으로 뒤늦게 드러났다. 군이 보도자료를 통해 대응력을 과시한 미사일 중 하나다. 13일 동아일보 단독 보도를 통해 군의 미사일 추적이 실패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에이태큼스 미사일은 대북 킬체인(Kill Chain·선제타격) 핵심 전력무기로 유사 시 북한의 핵·미사일 시설을 원점타격한다. 

동아일보에 따르면 5일 새벽 0시 50분 우리 군과 주한미군은 각각 에이태큼스를 2발씩 동해상으로 발사했다. 이 중 우리 군이 쏜 2발 중 1발이 160여km 떨어진 동해상 가상의 표적을 향하다가 갑자기 추적 신호가 끊어졌다. 현무-2C 낙탄사고 이후 2시간 뒤에 실시된 에이태큼스 훈련이 실패한 것이다. 이에 대한 군의 해명은 애초에 동해상으로 미사일을 발사하는 것이 목적이었지 목표물 명중이 목표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군은 5일 에이태큼스 2발이 가상표적을 '정밀타격'했다고 발표했다. 

또한 우리 군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 사실을 공표하지 않고 있다가 북한 관영매체가 보도하고 나서야 해명에 나섰다. 북한 노동신문은 13일 장거리 전략순항미사일 2발을 12일 새벽 시험발사했다고 보도했다. 노동신문은 순항미사일 2발이 2000km를 비행해 표적에 명중했다고 전했다. 김정은 조선노동당 총비서 겸 중앙군사위원장의 현지 지도에 따라 전술핵운용부대가 시험발사했다. 북한의 전술핵무기 훈련이었지만 우리 군은 노동신문 보도가 있기 전까지 북한의 도발 사실을 발표하지 않았다. 

군은 상황을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있었으며 관련해 국가안보실에서 안보점검회의가 진행됐다고 전했다. 또한 북한 순항미사일 발사는 유엔 안보리 제재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 것이 관례라고 해명했다. 

김형남 군인권센터 사무국장은 14일 미디어스와 통화에서 "훈련 진행은 작전상의 이유로 숨길 수 있다. 국민들이 납득하는 수준에서 기밀에 해당할 수 있기 때문"이라며 "그런데 낙탄 사고가 나거나 미사일을 쐈는데 실패를 했다거나 이런 것은 사후의 일이거나 즉각적인 대응이 필요한 일이다. 비난받기 싫으니까 거짓말을 공보하는 것인데, 요즘 시대에 이런 정부부처가 어디 있나"라고 질타했다. 

김 국장은 "정부부처가 거짓말로 된 보도자료를 만들어 뿌리고 국민을 속이고 있는 것인데 요즘 같은 세상에 속인다고 속여지나.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라는 목적으로 군사기밀이라는 개념이 있는 것인데 이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면서 "(국방부 훈령)도식을 보면 관계기관과 조직이 다 협의해 조직적으로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인데, 조직보호가 가장 큰 이유일 것이라고 본다"고 지적했다. 

김 국장은 최근 사태와 국방부 훈령 등을 통해 군의 인식을 엿볼 수 있다며 전면적인 인식개선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국장은 "국방부 훈령 도식을 공개 규칙으로 걸어놨다는 것은 이게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니까 가능한 것"이라며 "허위보도나 악의성이 인정되는 언론보도는 반박을 해야겠지만 그게 아니라 비판이 이뤄지는 모든 것들을 이런 식으로 처리하겠다는 것은 인식부터 바꿔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북한이 9개월 만에 장거리 순항미사일을 발사했다고 공개 보도한 13일 오후 서울역 대합실에 관련 보도가 나오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은 전날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전술핵운용부대에 배치된 장거리전략순항미사일 2발 시험발사를 현지에서 지도했다고 보도했다. (사진=연합뉴스)
북한이 9개월 만에 장거리 순항미사일을 발사했다고 공개 보도한 13일 오후 서울역 대합실에 관련 보도가 나오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은 전날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전술핵운용부대에 배치된 장거리전략순항미사일 2발 시험발사를 현지에서 지도했다고 보도했다. (사진=연합뉴스)

13~14일 주요 언론에서 군의 대응에 대한 질타가 이어지고 있다. 조선일보는 사설 <대북 경고 사격 미사일 3발 중 2발 고장, 그러고 거짓말>에서 "2발 중 1발이 어디로 날아갔는지도 모르면서 정밀타격했다고 사실상 거짓말을 했다. 군의 거짓말 습성은 도저히 고쳐질 수 없는 고질인 모양"이라며 "13일 언론이 에이태킴스 실종 사실을 보도하지 않았다면 끝까지 속였을 것이다. 현무-2 낙탄 사고도 군은 날이 밝을 때까지 정확한 상황을 알리지 않아 주민들의 불안과 혼란을 키웠다"고 비판했다. 

경향신문은 사설 <낙탄 지점·전술미사일 실패 숨긴 군, 북핵 대응하겠나>에서 "군은 사실을 일주일이나 감추고, 들통난 뒤에도 변명을 늘어놓고 있다. (중략)군에 불리한 내용은 숨기고 보자는 식의 대응을 언제까지 할 것인가"라고 따져 물었다. 이어 경향신문은 "정부 한편에서는 책임의 화살을 엉뚱한 곳으로 돌리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북한과 유화적인 관계를 유지하다 훈련을 제대로 못했다는 것"이라며 "군 당국은 더 이상 군색한 변명을 늘어놓지 말고 사실을 밝혀야 한다"고 촉구했다. 

동아일보는 사설 <현무는 낙탄, 에이태큼스는 실종… 쉬쉬하다 불신 키운 軍>에서 "이런 실패에도 군 당국은 그 사실을 공개하지 않은 채 '도발 원점을 무력화할 수 있는 능력과 태세를 보여줬다'고 밝혔다.(중략)어떻게 이런 편의적 판단이 가능한지 의문"이라며 "국민을 안심시키는 게 우선이라는 핑계를 댈지 모르지만, 창피한 것은 일단 숨기고 보자는 태도가 군에 대한 불신을 더욱 키울 뿐임을 알아야 한다"고 썼다. 

한국일보는 사설 <북한 순항미사일 도발을 北 보도로 알아야 하나>에서 "북한이 7차 핵실험을 상정하고 도발 수위를 높이는 위기 상황에서 이 같은 군의 늑장 정보 공개, 안보당국의 느슨한 대처는 문제가 있다. 순항미사일의 위협성은 탄도미사일에 못지않은 만큼 제재 위반 여부라는 기계적 기준만으로 대응할 일이 아니다"라며 "윤석열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 북한 방사포 발사에도 엄중 대응을 강조하지 않았나"라고 꼬집었다. 

세계일보는 사설 <北 또 순항미사일 도발, 구멍 뚫린 킬체인으로 막을 수 있나>에서 "합동참모본부는 미사일 발사가 이뤄진 하루 뒤, 그것도 북한 매체가 보도한 뒤에서야 이런 사실을 공개했다. 유엔안보리 결의 위반도 아니고 제재대상도 아니어서 즉각 국민에게 알리지 않았다는 게 이유인데, 너무도 안이하다"며 "최근 북한 안보 위협의 심각성을 감안한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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