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민하 칼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친일이냐” 하니 국민의힘 지도부와 당권주자들이 “친북이냐” 한다. 경제와 안보가 동시에 위기인 때에 이런 퇴행적인 논란을 계속 봐야 할까. 어이가 없다.

이재명 대표는 복잡한 문제를 지나치게 단순화 시키고 있다. 북한이 여러 미사일을, 여러 곳에서, 여러 시간에 발사하는 상황에서 주변국들과의 군사적 대응 강화는 현실적으로 피할 수 없는 선택지다. 다만 지금과 같은 방식이 적절한지, 여러 쟁점에서 다뤄볼 수 있을 뿐이다. 특히 국회 다수당이라면 야당이라 해도 대안적인 제안을 내놓을 필요가 있다. 단순히 일본과 멀고 가까운 관계를 논하는 친일-반일 구도로는 이 문제를 제대로 다룰 수 없다. 평론가나 지지자들이 이런 평가를 할 수는 있어도 거대 야당의 대표가 하기에는 부적절한 얘기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7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7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연합뉴스) 

지금 국면이 황당한 것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가 마치 ‘일본 문제’처럼 다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의 중거리탄도미사일이 일본 영공을 통과한 것은 사실이지만 북한의 미사일 발사가 가장 위협이 되는 국가는 남한이다. 북한을 때리든 달래든 상황의 주도권은 우리가 쥐어야 한다. 그런데 바이든 미 대통령은 기시다 일본 총리와만 통화했다. 마치 미-일의 공동대응에 한국 정부가 협력하는 이상한 모양새가 된 것이다. 

이건 미일의 이해관계가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 북한 미사일에 대한 대응을 통해 보통국가화를 완료하고 싶어한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사전 탐지하고 대응하기 위해선 한국의 협력이 필요하다. 일본이 ‘납북자 문제’를 들어 북한 문제의 당사자임을 거듭 주장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일본에게 있어 한국과의 협력에 걸림돌이 돼온 것은 과거사 문제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과거사 문제를 주변화하고 있다. 9일 국회 외통위 감사에서 언급된 강제징용 배상판결에 대한 ‘병존적 채무 인수 방안’과 같은 게 대표적 예다. 이 방안의 경우 기존의 ‘대위변제안’보다 한 걸음 더 후퇴했다고 생각된다. 피해자 동의가 필요 없는 데다 한국 정부 산하 재단이 채무를 인수하므로 일본 기업의 법적 배상 책임이라는 쟁점이 아예 사라진다는 점에서 그렇다. 일본 기업이 재단에 출연하더라도 그건 도의적 성격의 것이지 책임을 지는 방식은 아닌 거다.

보수언론 등은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국회에서 거듭 한국과의 관계 개선을 말하는 것을 높이 평가하고 있지만, ’청구권협정 이래’의 한일관계 개선을 전제하고 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결국 일본의 과거사에 대한 입장은 변한 게 없는데, 한국 정부는 북한 도발에 의한 군사적 협력 필요성을 핑계로 일본 입장을 스리슬쩍 용인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셈이다.

물론 일본과의 관계 개선은 필요하다. 보수세력이 말하는 ‘국익’의 관점에서도 그렇다. 그런데 이 ‘국익’에는 정부나 기업의 정치적 경제적 이득뿐만이 아니라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이익도 포함될 것이다. 군사적 필요를 이유로 이 대목을 외면하는 것은 국익 최대화가 아니다. 백보 양보해 그런 게 불가피하다면 적어도 국민적 합의를 전제하는 방식이 되어야 한다.

북한 도발에 대해 속수무책인 지금 상황을 대하는 정부의 태도에 대해서도 지적할 대목이 없는 게 아니다. 북한의 7차 핵실험은 시진핑 3연임 이후, 미 중간선거 전에 이뤄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북한과의 강대강 대치는 내년까지 이어질 수밖에 없는 조건이다. 북한의 도발과 한미일의 군사적 대응은 서로가 서로를 핑계로 해 계속해서 그 수위를 높여갈 것이다. 벌써 북한의 7차 핵실험이 이뤄질 경우 정부가 9.19 군사합의 파기를 선언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다.

그러나 우리가 익히 경험했듯 남북 문제는 강대강 대치로만 해소되기 어렵다. 지금 시점에 대화가 불가능하다고 해도 플랜B, 플랜C가 있어야 한다. ‘비핵화’를 전제로 해 북한이 호응할 가능성이 거의 없는 ‘담대한 구상’ 외에는 윤석열 정부의 총괄적인 대북 정책 패러다임은 사실상 없다. 더군다나 미일의 밀착에서 보듯 이 문제는 남북 그리고 주변국들의 파장으로 끝나지 않는다. 북한 문제는 미국이 상정한 대립적 세계 전략의 하위 변수가 될 수밖에 없다. 이게 가져올 파장의 범위는 전방위적이다. 북한의 도발과 한미일의 군사협력이 가져올 파장에 대해 지금이라도 초당적 논의와 협력, 대응이 필요한 때라는 것이다.

2018년 자유한국당 원내대책회의. '절대권력은 절대 부패한다 우리도 그래서 망했다'라는 문구가 눈길을 끈다(연합뉴스) 
2018년 자유한국당 원내대책회의. '절대권력은 절대 부패한다 우리도 그래서 망했다'라는 문구가 눈길을 끈다(연합뉴스) 

중앙일보 보도에 의하면 대통령실은 이재명 대표의 ‘극단적 친일’ 발언을 두고 이른바 ‘영수회담’은 물 건너 갔다는 평가를 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럴 때가 아니다. 미국의 중국을 겨냥한 반도체 규제의 불똥이 어디로 튀는지를 보라. 시진핑 3연임 이후 국제 정세의 불안정 속에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는 한국 경제의 현 상황을 직시해야 한다. 모든 것을 양보하더라도 경제와 민생에 있어서 만큼은 야당과 협력을 하겠다는 태도의 전환이 필요한 때다.

아쉽게도 윤석열 대통령이 ‘비속어 논란’ 등을 통해 지금까지 보여준 리더십은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강경일변도에 가깝다. 그래서 이러한 전환은 어려울 수 있다. 이런 때에는 여당이 설득에 나서는 것으로 국정의 책임을 다해야 한다. 그런데 ‘이준석 리스크’ 해소 이후 전당대회 국면으로 진입한 여당의 분위기를 보면 그런 역할은 어려울 것 같다. 유승민 전 의원 등의 항전(?)을 핑계로 다들 ‘윤심’을 잡는 데에만 혈안이 돼있지 제대로 목소리를 내겠다는 목소리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재명 대표의 “친일이냐”는 주장에 “친북이냐”고 대응하는 배경도 본질적으로는 여기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당권장악을 위해서라도 핵심 지지층만 쥐고 가면 된다는 얕은 계산법이다.

국민의힘은 과거 자유한국당 시절 문재인 정권을 겨냥해 “우리도 그래서 망했다”는 문구가 적힌 걸개를 회의실 배경으로 내건 일이 있다. 자기들이 한 잘못을 문재인 정권도 똑같이 하고 있다는 거였다. 지난 대선을 전후해 국민의힘 사람들은 문재인 정권을 겨냥해 독재라느니 팬덤정치라느니 하는 여러 비판을 제기한 바 있다. 이제 그런 비판이 고스란히 자신들에게 다 돌아갈 판이다. 이제 더불어민주당이 “우리도 그래서 망했다”고 할 차례인가? 그럴 것 같지 않지만, 혹시 그런 문구의 걸개를 배경으로 건다면, “친일이냐” 하는 더불어민주당도 그 문구에 비추어 스스로 돌아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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