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소설가 김은희] 오랜만에 연극을 보러 갔다가 그곳에서 소설가를 만났다. 직장을 다니며 소설을 쓰고 있어요, 라고 말하는 소설가의 첫 마디를 듣는 순간 어깨와 등이 아팠다. 그 일이 얼마나 고독하고 힘든 일인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직장 다니며 소설을 쓰고 있다는 소설가는 새벽에 일어나 6시부터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쓴다고 했다. 책상 앞에 앉아 어제 쓰던 글을 되새김질하며 조금씩 앞으로 나아간다. 나는 나도 모르게 소설가의 등을 쓸어내렸다.

나도 얼마 전까지 직장을 다니며 글을 썼다. 하루 중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은 아침 몇 시간밖에 없었다. 직장은 출퇴근 시간만 세 시간에서 네 시간이 걸렸다. 1시까지 출근해야 하는 학원은 10시에 수업이 끝났다. 수업 끝나고 정리까지 하면 10시 20분은 되어야 퇴근할 수 있었다. 집에 도착하면 자정이 다 되어 있었다. 집에 들어와 거실 소파에 앉으면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 잠깐 숨 돌리고 씻으면 새벽 한, 두 시는 기본이었다. 인터넷 서핑이라도 하면 새벽 세 시가 훌쩍 넘었다.

이미지 출처=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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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들기 전에 독서를 하겠다는 계획은 거의 실현되지 않았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꿈에서나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책을 읽고 싶다는 생각이 눈곱만큼도 들지 않았다. 글자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고, 이해되지 않았다. 학원에서 독서와 논술 강의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미 충분히 책과 글에 시달린 상태로 더는 활자를 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글을 쓰고 책을 읽는 사람으로 살고 싶었는데 학원 생활은 책에서 멀어지게 만들었다.

인터넷을 뒤적거리다 언제 잠들었는지 모르게 잠이 들고 아침이 되면 일어나기 싫어하는 몸을 깨워 간신히 출근 준비를 했다. 보통 8시에서 8시 30분쯤 일어나 출근 준비를 끝내고 근처 카페로 직행하면 9시 30분이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카페는 10시에 오픈이지만 매일 이때쯤 나타나는 나를 위해 문을 열어 주었다. 감사한 일이었다. 항상 밝게 맞아 주고 덥지 않은지, 춥지 않은지 살펴준 것에 대해 감사한다. 지금도 카페 사장님과 직원분들에게 감사하고 있다. 내가 등단하고 글을 쓸 수 있었던 것은 카페 사장님과 직원분들의 덕도 크다. 온전히 글에만 투자할 수 있는 시간은 카페에 앉아 있는 시간이 다였다. 전화라도 걸려 오는 날이면 그날은 글 쓰는 시간이 그냥 날아가 버렸다.

이미지 출처=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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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에 앉아 글을 쓰는 시간은 두 시간. 앉자마자 바로 글을 쓸 수는 없다. 소설은 흐름이 있고, 리듬이 있고, 호흡이 있다. 흐름을 다시 연결하고, 리듬을 되찾고, 호흡을 되살리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했다. 직장생활 하며 글을 쓰는 일에서 가장 힘들었던 점이 이것이었다.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는 것도, 체력에 한계를 느낀다는 것도 문제였지만 무엇보다 호흡이 끊겨버린다는 것이었다. 끊긴 호흡을 되찾아 쓸 수 있는 시간은 두 시간. 미친 듯이 글이 써졌으면 좋겠지만 대부분 시간을 그냥 앉아서 보낼 때가 많았다. 모니터만 바라보다 노트에 몇 줄을 끄적이다 시간이 다 되어 일어나야 하는 일이 많았다.

그래도 아침이 되면 일어나지 않으려는 몸을 깨워 카페로 출근했다. 한 글자도 쓰지 못해도 카페에 가서 앉아 창작 노트를 끄적거리고 모니터를 뚫어지게 쳐다보는 일은 매일 하였다. 그렇지 않으면 아침에 글을 쓰는 습관이 무너진다. 

 

이렇게 오랜 시간을 버텼다. 오랜 시간은 생활이 되었고, 생활은 몸을 망쳤다. 오랜 습작 기간을 거치며 마음의 병을 얻었다면 직장을 다니며 시간을 쪼개 글을 쓰는 생활은 몸이 부서지는 것을 몸소 체험하는 시간이었다. 허리 병과 위장병은 기본이고 면역력이 약해지는 것은 옵션이다. 다행히 등단해 마음의 짐은 좀 덜어내고 글을 쓰고 있지만 이제 글이 좀 써지네, 하는 시기가 되자 손목은 시큰거리고, 손가락 마디 마디가 아프기 시작했다. 그래도 매일 글을 쓴다. 여전히 그 카페에 앉아 대부분 시간을 모니터만 노려보며 조금씩 글을 쓰고 책을 읽는다 .

이미지 출처=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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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쓰는 행위는 노동이라고 했다. 의자와 한 몸이 되어 견디고 버티는 시간이 고스란히 작품에 담긴다. 이제 추석이 지나면 신춘문예 준비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바빠질 것이다. 수없이 많은 날을 담금질하며, 직장생활 하며 없는 시간을 쪼개 쓴 내 소설이 빛을 보는 날이 코앞에 와 있다. 그들이 옆에 있다면 연극 공연에서 만났던 소설가에게 했던 것처럼 등을 쓸어내릴 것이다.

나는 당신이 견딘 시간을 알아요.

그리고 또 얼마나 많은 견딤의 시간을 보내야 하는지 알아요.

그런데도 쓰는 것을 멈추지 않을 것도 알아요.

그렇기에 당신의 고독한 시간에 박수를 보냅니다. 

김은희, 소설가이며 동화작가 (12월 23일 생), 대전일보 신춘문예 소설 등단, 국제신문 신춘문예 동화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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