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 김민하 칼럼] 대통령실의 일부 인사 개편이 단행됐다. 홍보수석이 교체됐고 정책조정수석이 신설됐다. 쇄신 의지로 볼 수 있을까? 대다수 언론은 부족하다고 보고 있다. 내용물이 그대로인데 포장지만 바꾸는 걸로는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 100일 기자회견은 ‘참사’에 가까웠다. 쇄신 의지를 밝히고 국정 방향을 전환하는 중요한 기회가 될 수 있었지만 하나마나한 이벤트로 사실상 기회를 날려버린 꼴이 됐다. 취임 100일 만에, 그것도 지지율 하락 국면에서 ‘성과 보고’에 전체의 절반 가까운 시간을 쓴 건 무슨 의도인지 알 수 없다. 당장 집값 전월세값 안정이 어떻게 이 정부의 성과일 수 있느냐는 반박이 나오는 상황이다. 소득주도성장이나 탈원전 등 전 정부 정책을 그저 뒤집기로 한 게 성과라는 설명도 이해하기 어렵다. 참모진이 무능한 것이거나 대통령의 ‘고집’에 속수무책인 상황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어느 쪽일까? 

김대기 대통령실 비서실장이 2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브리핑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김대기 대통령실 비서실장이 2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브리핑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대통령 취임 101일째 되는 날 김대기 비서실장이 언론을 통해 인적 쇄신의 가능성을 시사한 것은 이런 상황의 반영일 것이다. 당시 김대기 비서실장의 발표는 대략적인 방향을 예고한 것일 뿐 아무것도 확정된 내용이 없는 거였다. 그럼에도 ‘검토 중’인 사안에 대한 언론 보도가 이어지고 비서실장이 직접 나서서 설명까지 해야 한 것은 취임 100일 기자회견이 쇄신의 전망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을 보면 비서실장을 비롯한 대통령실 참모진의 대다수는 뭔가 쇄신의 모양새를 갖추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예고됐던 인사는 대통령 취임 104일째 되는 21일에야 정식으로 발표되었다. 언론의 예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내용이다. 눈길이 가는 것은 김대기 비서실장이 “비서실 쇄신은 앞으로 5년 간 계속 될 것”이라고 힘주어 강조한 대목이다. 쇄신 의지를 밝힌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런데 의문인 건 이 얘기가 “문책성 인사는 아니다”, “국정 지지율과 연관시키는 것은 좀 그렇다”는 발언과 같은 맥락에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는 것은 뭘까? 혁명이 일상이 된다면, 그 혁명은 더 이상 혁명일 수 없다. 즉 ‘5년 내내 계속되는 쇄신’이란, 쇄신이 아니라고는 할 수 없으나 그렇다고 쇄신임을 전적으로 인정할 수도 없는 딜레마를 표현한 말인 것이다. 이런 딜레마가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중앙일보 보도에 의하면 대통령실은 ‘여권의 고위 관계자’가 “비서관급 이하 중에서 ‘윤핵관’ 라인이나 다른 비선 라인을 타고 들어온 인사들의 업무수행 등에 문제가 없는지 면밀히 살펴보고 추가 개편을 진행할 것”이란 발언을 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같은 기사에서 대통령실 고위 인사의 “윤 대통령이 아니라 소위 '윤핵관' 등 유력 정치인이나, 자신을 대통령실에 추천한 이들에게 충성하는 참모들을 찾아내 정리하는 작업이 진행될 것”이란 발언도 전하고 있다. 그런데 결국 대통령실 인사는 대통령의 결심에 달린 일이다. 이러한 보도 내용은 인사에 문제가 있다는 걸 대통령실 전반이 공유하고 있으나 대통령을 설득하지 못하고 있고, 따라서 이를 가능케 할 근거를 찾고 있다는 취지로 읽힌다. 결국 대통령의 ‘고집’을 참모들이 꺾지 못하는 상황에 가까운 거다.

대통령의 ‘고집’이 본인이 늘 강조하던 대로 공정과 상식, 정의에 기반한 것이라면 이러한 밀고 당기기도 하나의 자연스런 인사 정책의 일면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대통령의 ‘고집’은 애석하게도 가까운 사람은 감싸고 먼 사람은 의심하며 고언에는 화부터 내는 독단에 근거를 둔 것으로 비쳐지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1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취임 100일 기자회견 '대통령에게 듣는다'에서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1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취임 100일 기자회견 '대통령에게 듣는다'에서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최근 윤석열 대통령은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제청을 거쳐 이원석 대검 차장검사를 검찰총장 후보자로 지명했다. 검찰총장 대리로 검찰 인사 등의 협의 대상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가장 무리가 없는 인사인 동시에 윤석열 대통령과 '직장 인연'이 있는 인사라는 점에서 독립성 침해 우려가 제기되는 결정이다. 여기에 언론은 어차피 예상대로라면 인사가 늦어진 이유가 무엇인지에 의문을 표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동아일보의 경우 19일 사설에서 “윤 대통령이 복심으로 불리는 한 장관보다는 ‘덜 가까운’ 이 후보자에게 일단 직무대리를 맡겨 충성도를 테스트한 것 아니었냐는 지적도 있다”고 했을 정도다. 검찰 출신이라도 ‘가까운 사람’의 범주에 들어가는 것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이러한 폐쇄적 비합리성은 윤석열 대통령의 자기 경험에 기반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살아있는 권력’과 대립하며 자기 고집을 꺾지 않고 버티면서 정치적 중량감을 키워왔다. 이게 누군가와 싸울 때에는 분명 득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통치자의 자리에 앉아 고집하기에는 적절치 않은 태도다. 이 태도를 고치지 않으면 앞서 김대기 비서실장의 태도에서도 보듯 쇄신책을 찔끔 찔끔 쓰면서 동시에 그것 때문에 오히려 쇄신 논란에 벗어날 수 없는 악순환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

최고 권력의 이런 태도가 가져오는 가장 큰 악영향은 집권 세력 내 갈등이 대통령에 대한 눈치보기와 충성 경쟁으로 수렴되는 현상을 가속화시킨다는 것이다. 가령 지난 주말을 뜨겁게 달군 집권 여당 소속 소위 청년 정치인들 간의 입씨름을 보라. 정권과 여당이 펼쳐야 할 정치에 대한 논쟁은 없고, 오로지 나는 친윤이고 너는 친이준석이고 선거 때는 뭘 했으며 세금은 내보았느냐는 식의, 술에 취해 드잡이 하는 자리에서나 꺼낼 얘기를 비장하게 하고 있잖은가. 이게 누굴 위한 논쟁이겠는가?

대통령은 이 상황을 어떻게 느끼는지 궁금하다. 혹시라도 “계속 이렇게 해야 합니다”라며 ‘체리따봉’을 보낸 것은 아니길 바란다. 이제는 정말 바뀌어야 하고 지도자다운 모습을 보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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