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일 군소후보 토론회에 참석한 무소속 김소연 후보(왼쪽)와 무소속 김순자 후보(오른쪽)의 모습 ⓒ뉴스1

이번 선거는 마치 50% 여성할당제를 실시하는 비례대표 순번처럼 홀수번은 모두 여성후보다. 1번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여성이고, 2번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는 남성이며, 3번 통합진보당 이정희 후보는 여성이다. 이들은 선관위 기준으로 주요 후보 토론에 초청받을 수 있는 사람들이다. 5석 이상 정당이 지지하는 후보, 직전 선거에서의 유효투표총수의 3%이상을 득표한 정당이 추천한 후보, 선거 30일 전부터의 여론조사 평균지지율이 5%를 넘는 후보가 초청을 받게 되는데 이정희 후보의 통합진보당의 경우 6석의 의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5번과 7번도 여성후보다

사퇴한 심상정 후보의 진보정의당 역시 7석의 의석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사퇴하지 않았다면 선관위 토론에 초청받았을 것이다. 비슷한 규모의 군소정당의 후보인 심상정과 이정희 두 후보는 한쪽은 사퇴한 후 민주당과 정책협약서를 쓰는 길을 갔고, 다른 한쪽은 공식선거운동을 하면서 ‘박근혜 저격수’를 자임하는 길을 갔다. 야권연대의 대상이 되는 정당과 그렇지 못하지만 진보적 정권교체를 말하는 정당의 차이일 것이다.

선관위에서 초청받지 못하는 후보들 중에도 두 명의 여성후보가 있다. 5번 김소연 후보와 7번 김순자 후보가 그들이다. 두 후보는 공교롭게도 야권연대 바깥의 두 명의 진보 후보들이다. 두 사람은 자신들이 노동자 후보 내지는 좌파 후보라고 강조한다. 그러나 이정희 후보조차 1%를 넘지 못하다가 첫 번째 토론회 이후 1%대를 돌파한 상황에서, 두 후보의 지지율은 여론조사상에서 의미있는 수치를 만들어내지는 못하고 있다. 전반적으로 진보정당 운동이 1997년 이전으로 후퇴했다는 평을 듣는 시국이지만, 어떤 의미에서 본다면 거리에서의 반응도 1987년이나 1992년의 백기완 선거에 비해서 훨씬 미진한 것이 사실이다.

물론 두 후보가 처한 곤경은 그들이나 캠프의 잘못이라기보다는 시대적인 것이다. 선거는 누군가에겐 추수의 공간일 수도 있지만 다른 누군가에겐 함께 씨앗을 뿌릴 사람을 늘려가기 위한 선전의 공간일 수도 있다. 선거에 개입하는 정치세력이 약하고 내세운 후보의 지지율이 낮을수록 후자의 비중이 커질텐데, 전자만 생각하고 그들이 쓸데없는 짓을 하고 있다고 비웃어서야 정치변혁의 가능성을 죽이는 것이 된다. 그러나 후자 역시 하나의 전략이라면 그 전략의 효용을 평가하는 것은 가능할 것이다.

김소연 후보, 진영의 내부 비판을 대선에 등장시켜

토론회와 공식 홈페이지에서 드러나는 김소연 후보의 특징은, 이 선본의 구호와 주장이 대중을 겨냥한다기 보다는 노동운동과 좌파진영 내부의 혁신 및 재무장을 주문하는 듯 하다는 것이다. 물론 김소연 후보는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의 경제민주화를 공박하고 노동자 민중을 위한 정치를 시작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거듭 반복되는 ‘노동자 민중’이란 수사는 오늘날의 대중에게 와 닿는 말은 아니다. 토론회에서의 김소연 후보의 발언에 대해 박권일 ‘자음과 모음R’ 기획위원은 트위터에서 ‘(다른 후보에 비해) 정보값은 제일 많았지만 운동권 특유의 용어들이 자꾸 걸린다’고 평했다. 하지만 단지 문화와 용어의 문제만 있는 것이 아니다. 김소연 선본의 구호가 내용적으로 영세자영업자를 배제하는 것은 아닐 텐데, 노동자란 말이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 뿐만이 아니라 한국 사회에서 노동인구의 1/3 정도를 점하는 영세자영업자를 포함한다는 식의 설명도 찾아볼 수 없다.

반면 홈페이지에 올라온 글과 인터뷰에서 김소연 후보가 줄곧 강조하는 것은 진영 내부의 혁신과 재무장이다. 홈페이지의 글을 보면 ‘노동자 대통령’의 당위를 말하면서 “어렵게 밀고 온 노동자민중의 정치는 신자유주의와 타협하고 출세주의에 오염되어 노동자민중의 파탄난 삶에 대해 진정한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고 설명한다. ‘신자유주의와 타협’이란 부분은 아마도 국민참여당을 포함해서 출범한 통합진보당을 비판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또한 ‘출세주의에 오염’이란 부분은 아마도 진보정당이 의원직에 연연하거나 민주노총의 전현직 간부들이 문재인/안철수 캠프에 합류한 현실을 꼬집는 것이라 여겨진다.

그런데 이러한 내부비판이 민주노총의 선거에서가 아니라 대선정국에 제기되었다는 것 자체가 ‘민주노조 운동’의 결실인 민주노총이 현재의 위기상황을 타개할 어떠한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한다는 사실에 대한 뼈아픈 증명일 것이다. 물론 이것은 김소연 후보 선본이 책임져야 할 일은 아니다. 더 큰 문제는 이 내부비판의 내용이다. 이 비판은 겨냥하는 현상들은 있지만 사실상 아무런 구체성이 없다. 말하자면 이런 식의 비판은 '기득권을 내려놓자'라거나 '초심으로 돌아가라'고 말하는 안철수식 정치쇄신안의 좌파적 변형에 해당한다.

김소연 후보 본인과 그녀가 2천년대 중반 이후 이끌었던 기륭노조 조합원들의 경우 민주노동당원이다가 통합진보당이 만들어질 때 국민참여당과의 합당에 항의하며 탈당했던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녀를 후보로 내세운 이들은 지난 십 오년 동안의 진보정당 운동을 비판하거나 관망했던 정당 외곽의 좌파단위들이다. 그런데 ‘타협’과 ‘출세주의’를 비판하는 이들의 인식은 운동의 위기를 도덕 재무장과 가열찬 투쟁으로 돌파해야 한다는 뻔한 결론 이상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물론 그 결론은 옳을 수 있지만,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노동자 대통령’ 후보를 통해 어떻게 그 투쟁을 재점화할 것이냐는 방법론의 문제가 될 것이다. 누구도 쉽게 답할 수 없는 문제이긴 하지만, 김소연 선본의 홈페이지는 이 문제에 대해 기존 운동의 관성을 질타하는데 할애한 분량만큼의 고민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신자유주의와의 타협, 출세주의라는 비판 합당할까?

구체적으로 따져볼 때, 과연 국민참여당과의 합당은 신자유주의와의 타협이었을까? 국민참여당이 참여정부를 계승하고 유시민 등 몇몇이 참여정부의 실세였다는 것은 인정되며 그렇기에 노동운동가들이 느꼈던 반감도 충분히 이해된다. 하지만 합당과정에서 노선을 바꾼 것은 오히려 국민참여당이었지 민주노동당이 아니었다. 합당 직전의 국민참여당을 신자유주의 세력으로 지칭하는 것은 이념적 규정이라기보단 ‘한번 신자유주의자였던 이의 전향을 고깝게 보는’ 감정적 규정이었다.

또한 최근 몇 년 동안 진보정당 운동이 의원직에 연연하는 것처럼 보였던 것이 과연 출세주의라는 비판만으로 극복할 수 있는 곤경이었을까? 정당의 역할을 중시하는 쪽에서 본다면 대번에 ‘원내정치를 무시하고 운동만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그릇된 신념이 진보정당 운동을 망쳤다’는 반론을 내세울 수 있는 부분이다.

물론 정당정치에 대한 최장집 그룹의 조언이 노회찬과 심상정 등 진보정당의 주요 정치인들에게 그릇되게 수용되면서 악영향을 미친 부분도 생각해볼 수 있다. 정당정치의 강조에 대해선 원론적으론 동의할 수밖에 없지만, 공교롭게도 그런 조언이 진보정당에 흘러들어오던 그 시기의 진보정당은 지금 돌이켜보면 기반이 되는 운동 및 대중조직의 형해화 혹은 고립으로 인해 하강하는 중이었다. 그래서 진보정당에 대한 그들의 조언을 진보정당의 주요 정치인들은 기층운동이나 민주노총 등의 난맥상에 대해 질끈 눈을 감고 의회 내에서의 자신들의 역량을 강화하는데 매진하란 것으로 수용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지난 몇년간 진보정당 운동은 다시 씨뿌릴 때가 되었단 걸, 그간 고생한 시간이 아까워 인정하지 않은채, 추수하는 방법이 잘못 되었느니 농기계를 비싼 걸 안사서 그렇느니, 농장을 합쳐서 규모의 경제를 만들어야 한다느니 갑론을박하고 있었던 셈이다. 현실인식을 이런 기조로 가져간다면 ‘다시 투쟁이 필요하다’는 김소연 선본의 문제인식에 공감할 수 있다.

그런데 과연 이러한 ‘오류’를 ‘출세주의’란 이름으로 재단할 수 있을까? 오히려 이쪽도 뭔가 잘해보려고 했는데 그것이 잘 안 된 것에 가깝지 않을까? 방법론에 대한 고민을 하기 보다 실패에 대한 주체의 품성을 강조하는 어법은 ‘진심’이 정치를 바꿀 수 있다고 말하며 그 방법에 대해선 모호한 태도로 일관하는 안철수 식 정치개혁론의 좌파적 변형으로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또 ‘투쟁이 필요하다’는 결론으로 치닫는다 해도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김소연 선본은 “전국 곳곳에서 각각 벌어지고 있는 노동자민중의 투쟁을 한곳으로 집중하고, 투쟁에 대한 지지를 사회적 공감대로 형성하고 그래서 더 강력한 투쟁으로 우리 요구들을 쟁취”해야 한다고 설명하지만 투쟁이 전국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해서 대부분의 ‘노동자민중’이 투쟁하고 있는 상태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비정규직화와 외주화로 노동시장의 이중구조가 강화되는 상황에서 많은 사람들은 ‘투쟁하는 노동자’를 일종의 특권층으로 여기게 된 것이 현실이다. 이것이 민주노총이 넘지 못한 한계였으며 진보정당 운동 하강의 주된 원인이었는데, 이런 부분에 대한 고민을 생략하고 투쟁으로 돌파한다는 자세가 과연 향후의 진보운동을 위해 바람직한 것인지 의문이 든다. 12월 19일 선거보다 12월 15일 광화문에서의 시위를 강조하는 김소연 선본의 공보물과 홈페이지의 설명이 급진적이라기보다는 공허해 보이는 이유다.

김순자 후보, 대선 후의 정치적 전망 제시하지 못하다

김순자 후보의 경우 울산과학대 청소노동자 투쟁을 통해 진보정당들과 인연을 맺게 되었고, 지난 총선에서 진보신당의 비례대표 1번 후보로 출마하면서 진보정치의 길에 발을 들여놓은 사람이다. 진보신당 내부의 대선대응 논의가 난맥을 거듭하는 가운데 그녀는 ‘대선 독자대응’을 바라는 일부 당원들과 함께 진보신당을 탈당한 후 선거에 임하고 있다. 현재 김순자 선본에 참여하는 이들 모두가 ‘구사회당계’ 출신인 것은 아니지만, 진보신당 내부에서 대선 독자대응을 주장했던 이들이 대체로 사회당 출신이었고 김순자 선본의 정책의 얼개가 구사회당의 것이기 때문에 김순자 후보의 선거는 ‘사회당의 선거’로 여겨지기도 한다.

김순자 선본의 논리는 김소연 선본에 비해서는 앞서 말한 문제의식들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진보신당이 지난 총선에서 주장했던 ‘미조직 노동자’들의 조직화 문제를 지적하고 있고, 그간 사회당 등이 꾸준히 한국 사회에 제출해왔던 기본소득의 논리를 말하고 있다. 이는 민주노총이 대기업-정규직-중년-남성 노동자 층에 고립되고 진보정당이 그 틀을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을 인지하고 이를 돌파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했다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김소연 선본과 함께 김순자 선본에서도 발견되는 문제는, 대선 이후의 전망이 발견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당선이 목표가 아닌 선본도 있을 수 있지만 그렇더라도 그 선거를 통해 향후 정치적 목표를 내세울 조직을 어떤 식으로 구성할 것인가에 대한 전망 정도는 있어야 선거를 치루는 의미가 있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김순자 선본의 정서를 지배하는 것은 ‘선거 이후의 전망’보다는 ‘대선에 대응하지 않는 정치조직은 가치가 없다’는 식의 어떤 당위다.

그렇다면 뚜렷한 대선대응의 기조가 없었던 진보신당에서 분화해 나온 김순자 선본이 대선 이후에도 진보신당과 갈라져서 별도의 단위로 활동할 것인지, 다시 함께 하려고 생각한다면 그렇게 해야 할 이유는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해봐야 할 시점이다. 물론 선거 이후의 대응이란 건 선거 결과에 따라 좌우되기도 하지만 현실적으로 김소연 후보나 김순자 후보나 1%를 넘기가 힘든 상황에서 대선운동 과정에서 어떤 단위와 접촉하고 힘을 합쳐 대선 이후에 정치세력화를 할 것인지에 대한 전망이 부재하다는 것은 크나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진보정치의 위기 : 시대의 문제와 방향의 부제

현실적으로 당선이 목적도 아니고 의미있는 지지율을 기록하기도 힘들 두 후보에게 ‘단일화’를 요구하는 것도 부적절한 일일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면 두 후보의 선거운동에서 구별되는 뚜렷한 정치적 목표와 전망이 요구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은 김소연 후보를 추대한 좌파단위들이 대선 이후 어떤 정당을 만들어낼지도 애매하고, 김순자 후보를 추대한 이들이 대선 이후 신당을 구성할 것인지 다시 진보신당에 합류할 것인지도 애매한 상황이다.

이 불확실성이 물론 그들 선본의 책임만이 아니라 진보정당과 노동운동의 하강 때문에 발생한 일이란 점은 분명하지만, 두 선본의 선거운동이 이 불확실성에 대한 어떤 종류의 대답을 마련하지 못한 채로 관성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들이 왜 나왔는지를 유권자들만이 모르는 것이 아니라, 진보정당에 대한 지지층이나 진보신당원들조차 잘 모르는 현실은 이러한 목표와 전망의 부재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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