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소설가 김은희] 올해 여름은 일찍 시작되었고 내내 무덥다. 더운 것도 참을 수 없는데 습하기까지 하다. 6월부터 본격적으로 30도가 넘는 무더위가 시작되더니 폭우성 비가 쏟아졌다. 아침에도 점심에도 저녁에도 밤에도, 더위 때문에 지치고 고단하고 짜증이 났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흐르고, 습도가 높아 옷이 물에 젖은 미역처럼 척척 달라붙었다. 이런 날이면 고민이 생긴다. 속옷 때문이다.

이렇게 덥고 습한 날 브래지어를 착용하는 것은 형벌이다.

더운 여름 외출을 앞두면 옷장 앞에서 항상 고민한다.

입을 것인가, 말 것인가. 

나는 가을에서 봄까지 브래지어를 착용하지 않는다. 여름에도 표나지 않는 셔츠라면 입지 않는다. 일단 브래지어를 한 번 하지 않게 되면 다시 입는 게 쉽지 않다. 노브라로 지내면서 갑갑함에서 벗어난 것은 둘째이고 어깨 통증과 흉부 압박에서 해방되었다. 처음 와이어가 있는 브래지어에서 노와이어로 넘어왔을 때 그 해방감과 행복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어떻게 가슴을 압박하고 찌르는 와이어를 십 년이나 넘게 하고 다녔는지 나 스스로 이해할 수 없었다. 이런 가학적 행위를 내가 내 몸에 아무렇지도 않게 하였다는 게 새삼 놀라웠다. 

이미지 출처=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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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와이어에서 노브라로 넘어가는 것은 와이어에서 노와이어로 넘어가는 것처럼 간단하지는 않았다. 유두라고 말하는 젖꼭지 때문이었다. 젖꼭지는 표나선 안 되는 것. 표나면 남사스럽고 창피하고 징그럽고 정숙하지 못한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신경 쓰였다. 그래서 니플 패치를 사용해 보기도 하였는데 피부가 약한 내겐 맞지 않았다. 브래지어를 다시 해야 할까 고민했지만 결국 몸에 붙지 않는 옷을 입고 노브라를 선택했다. 

처음에는 겨울에만 노브라로 외출했다. 노브라로 겨울을 보내고 봄이 되어 브래지어를 했을 때 할 수 없겠구나, 숨이 막히네, 라는 생각이 들었다. 노브라로 옷을 입기 위해 그에 맞는 속옷을 찾고, 최대한 붙지 않는 옷을 찾아 입었다. 나는 그때도 지금도 아직 노브라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다. 사람들, 특히 남자들은 유독 브래지어에 관해서는 야박하다. 브래지어를 하지 않은 가슴으로 다니는 여자에 대해 비난을 서슴지 않는다. 

이미지 출처=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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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이 되었을 때였다. 내가 다니던 학교는 남녀 공학이었지만 남학생과 여학생이 분리되어 있었다. 체육 선생님이 여자였는데 체육 시간에 운동장에 모인 여자애들에게 다음 시간에는 모두 브래지어를 하고 오라고 했다. 1학년 때였다. 이제 봉긋하게 가슴이 나오기 시작한 애들에게 브래지어를 하지 않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인 것처럼 말했다. 체육복 위로 젖꼭지가 드러나는 것은 야하고 정숙하지 못하다고 말했다. 미처 브래지어를 하지 못한 여자애들은 잘못이라도 한 것처럼 잔뜩 어깨를 움츠리고 체육복이 가슴에 붙지 않도록 손으로 체육복을 당겼다. 처음으로 내 가슴이 야하고 수치스러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날 나는 내내 가슴이 신경 쓰여 제대로 뛰지도 못하고 수업에 집중할 수 없었다. 

여자의 가슴은 항상 야하기만 한 것이고, 브래지어 속에 감춰져야 하는 것인가.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올해 가슴 밑을 드러내는 언더붑이 유행이라고 한다. 언더붑뿐 아니라 가슴골이 드러나는 옷은 화제가 되지만 비난의 대상이 되지는 않는다. 문제는 젖꼭지에 있다고 본다. 젖꼭지가 직접 드러나지 않아도 옷 위로 도드라지거나 표나는 것은 용납되지 않는다. 많은 노브라 아이템이 나왔다. 노브라 티셔츠, 노브라 속옷 등이 계속 나오지만 여전히 젖꼭지는 감춰져야 하는 것이다. 젖꼭지는 표나서는 안 되는 것이다. 젖꼭지는 선정적이고 품위를 떨어뜨린다. 그런 이유로 젖꼭지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을 꺼린다. 글에서 젖꼭지, 라는 단어보다 유두, 니플, BP, 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도 그 이유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미지 출처=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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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가슴을 드러내는 것은 괜찮고 노브라는 안 된다는 생각이, 같은 사람 같은 머리에서 나왔다는 것이 신기하다.

내 가슴은 내 것인데, 내가 다 벗고 다니겠다는 것도 아니고

브래지어 하나 하지 않겠다는 것인데

노브라가 이슈가 되고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락내리락하며

손가락질 대상이 되어야 하는 것이 요상하다. 

여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변화되었고 발전하였다고 하지만 무더운 여름인데도 여자의 가슴은 여전히 브래지어 속에 갇혀 있어야 한다. 답답하든 아프든 여자의 가슴은, 젖꼭지는 품위를 지키며 정숙해야 한다. 

그럼 노브라로 다니는 여자는 정숙하지 못한가? 노브라는 저속한가? 누구의 생각인가?

김은희, 소설가이며 동화작가 (12월 23일 생), 대전일보 신춘문예 소설 등단, 국제신문 신춘문예 동화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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