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윤광은 칼럼]

“노제, 돈 받아야 사과문도 올리려나…”

“약도 답도 없는 연예인병… 지독히 걸린 노제와 그 소속사”

이번 주 5일과 6일, JTBC 엔터뉴스팀 김진석 기자가 쓴 기사 제목이다. 엠넷 <스트릿 우먼 파이터>에 출연해 유명해진 댄서 노제가 빚은 논란을 ‘비판’하는 표현이다. 헤드라인을 김진석 기자 본인이 붙인 건지, 아니면 편집부에서 따로 붙인 건지 알 수 없다. 어쨌든, 본문을 읽어도 제목 못지않은 표현이 도처에서 튀어나온다. “돈독이 제대로 올랐다.” “인기 좀 끌었다고 연예인병 제대로 걸려” “명품 광고는 척척 잘 올리던 노제(노지혜)가 본인의 입장은 내놓지 않고 있다.” "노제의 인성과 (...) 소속사의 환장의 궁합" 같은 표현이 그렇다.

노제는 중소 브랜드 업체들로부터 인스타그램 광고 포스팅을 의뢰받고 약속된 기한이 지나서 광고를 올렸거나, 올린 후에도 약속된 기한이 지나기 전에 삭제했다고 한다. 소속사가 입장문을 통해 인정했으니 사실관계는 확정이 됐다. 그러면서 명품 브랜드 광고 포스팅은 지우지 않고 놔뒀다고 하니 사실 빈축을 살 만한 상황이다. 이런저런 댓글에서 야유가 나오는 건 자업자득인 면도 있다. 하지만 그건 공론에 대한 책임이 상대적으로 작은 네티즌들의 댓글이다. 언론사 타이틀을 걸고 내는 기사라면, 하물며 JTBC 같은 저명한 언론사에서 낸 기사라면, 설령 그것이 연예부 기사라고 해도 어떤 ‘선’이 있어야 한다.

JTBC 언론사가 작성한 '노제' 기사 (네이버 뉴스 검색 화면)
JTBC 언론사가 작성한 '노제' 기사 (네이버 뉴스 검색 화면)

해당 기사 두 편은 각각 원고지 10매가 되지 않는 짧은 기사다. 사건에 대한 기본적인 사실관계를 전하고 노제와 소속사를 비판하는 가치판단을 내리고 있다. 그 자체만 본다면 사실 전달에 왜곡된 부분은 없고 가치 판단의 방향이 큰 틀에선 틀린 것도 없다. 이미 다른 기사로 전말이 폭로되었고 소속사도 잘못을 인정했으니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같은 이야기를 하더라도 정제된 방식으로 하는 것, 인신공격과 선정적인 표현을 넘어 비판의 취지와 논거를 논조의 중심에 놓는 것이 지켜져야 할 하한선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언론이라는 타이틀 자체로 일정한 공신력을 얻으며 언로를 누리는 언론의 책임이다.

언론이 무엇 때문에 누군가의 잘못을 비판하는가? 그가 사회적 책임을 어기거나 올바른 가치를 해치는 옳지 않은 행동을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걸 비판하는 측에서도 올바른 방식으로 비판할 책임을 걸머져야 한다. 누군가의 불의를 빌미로 어떤 종류의 비난이든, 혹은 수단을 가리지 않는 보도가 정당화된다면 사회 정의와 멀어지는 결과를 부를 것임은 자명하다. 그리고 이미 그 대상을 비난하고 있는 여론을 과열시키거나 여론의 폭력성을 부추길 수도 있다.

“대놓고 노제 노빠꾸로 저격하는 최신 기사 ㄷㄷㄷㄷㄷ” “노제 갑질 사건, 노빠꾸로 들이받은 기자” 여러 커뮤니티에서 해당 기사를 올린 게시물에 붙은 제목들이다. 김진석 기자의 기사는 인터넷에서 퍼져나가며 호응이 좋았다. 네이버 뉴스 창에서도 해당 기사에는 만여 개의 공감 수치가 찍혀 있다. 사람들은 저 기사를 보면서 통쾌함과 신기함, JTBC 같은 언론사가 자신들이 댓글 창에서나 쓰는 ‘저격성’ 단어로 유명인을 “노빠꾸”로 비난하는 데서 카타르시스를 느꼈을 것이다. 요즘 일상어가 된 표현을 빌리면 ‘팩트’로 ‘두들겨 팬다’며 환호했을지도 모른다. 이건 군중 성향의 말초적인 부분을 수요로 맞춰 기사를 공급하는 것이고, 언론의 하한선을 그 수준까지 하향시키는 일이다.

JTBC 뉴스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JTBC 뉴스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언제부턴가 이 사회엔 ‘유명인 모욕 콘텐츠’라 부를 만한 것이 만성화됐다. 오래전부터 유명인의 몰락과 스캔들은 언론의 대목이자 여론의 놀이터였다. 하지만 언론이 난립하고 SNS와 유튜브가 발달하며 유명인에 관한 논란을 퍼트리는 콘텐츠가 다각적인 매체를 통해 쉴 틈 없이 일상에 공급되고 있다. 제도권 언론사에서 개인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까지, 조회수가 곧 수익으로 연결되는 체계로 운영되기에 ‘제목 장사’가 성행하고 선정성이 고삐가 풀린 채 날뛴다. 특히 여론 호감도가 낮아서 가십에 대한 소비 수요가 큰 유명인이 어떤 잘못을 저지른 경우에는 눈 뜨고 보기 참혹할 만큼 잔혹한 썸네일을 단 유튜브 영상이 무더기로 쏟아져 내려서 해당 인물의 이미지를 사장한다.

어쩌면 이건 제동을 걸기 힘든 사회적 흐름일지 모른다. 그런 현상에 제동을 걸라고 존재하는 게 언론이지만, 지금 시대에 언론에 그만한 영향력도 없고, 이미 조회수 중심으로 형성된 시장을 거부한다면 회사 운영 자체가 힘들 수도 있다. 하지만 최소한 나쁜 흐름을 선도하지 않는다는 선택지는 있다. JTBC처럼 규모가 커서 군소 언론사에 비해 자립할 능력이 있는 데다, 손석희 사장 취임 이후 '정론'으로 이름값을 얻은 언론사라면 그만한 선택지는 더더욱 확보해야 한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유명세로 큰돈을 버는 유명인들인데 잘못을 하면 욕을 먹는 건 감당해야 하지 않느냐는 반문이 들 수도 있다. 마찬가지다. 언론 역시 공론장에 기사를 발행하며 사업을 한다. 그들에게도 기사에 대한 비평을 감당해야 할 책임이 있다. 말했듯이, 그건 기사로 다뤄진 유명인의 잘못과 별개로, 기사를 발행한 언론의 잘잘못을 가려내는 일이다. 그 두 가지 기준 사이의 고민과 긴장감이 사라져 있는 것이 범람하는 '연예부 기사'들의 현주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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