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제 개념이 드물었던 우리나라에 무려 13년 전 첫 포문을 열었던 드라마가 네 번씩이나 지상파에서 방영되었다는 것은 분명히 놀라운 일이다. 흔한 말로 일본의 학원물 드라마, 고쿠센도 3시즌까지가 최선이었는데 말이다. 물론 등장인물과 캐릭터가 그대로 유지되지 않고 매회 바뀌는 학교 시리즈를 기존의 시즌제 드라마의 개념이라 우기는 것은 억지에 가까울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학교 시리즈를 세는 뉘앙스는 시즌이 아니라 몇 탄이라고 말하는 것이 더 어울린다. 그리고 2012년 학교시리즈가 부활했다. '학교 2013'이라는 반갑고 신선한 이름을 달고.

드라마 학교 시리즈는 1999년 2월 말에 포문을 열었던 1탄을 시작으로 2002년 3월 말에 마감한 학교4를 끝으로 종영되었다. 끝이 있으면 시작도 있는 법이겠지만 무려 네 편에 걸쳐 한 드라마가 같은 포맷으로 방영되었다는 것은 분명 그만큼의 메리트가 있고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는 증거가 될 것이다. 그것도 한정된 연령층을 대상으로 만든 이 학원물 드라마가 일회성으로 그치지 않고 연속적인 시리즈 드라마로 이어졌다는 것은 분명 놀라운 기록이라 아니 말할 수 없다.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이런 캐스팅이 가능했을까, 제작진을 그저 황금을 투시하는 신기에 가까운 눈을 가지고 있다고 찬사를 보낼 수밖에 없는 라이징 스타들의 활약과 드라마 '해를 품은 달'을 통해 인기 작가의 궤도에 오른 진수완 작가와 부활, 마왕을 통해 마니아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김지우 작가의 날카로운 사회 고발과 신선한 캐릭터 창출 능력은 언타이틀의 주제곡 '학교'의 종소리와 더불어 매회 하이틴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천재성의 연속이었다. (심지어 이 드라마의 오프닝 타이틀을 담당한 언타이틀의 유건형은 현재 싸이 매직을 일으킨 강남 신드롬의 작곡가다.)

문제는 짐짓 평범하게만 보였던 이 하이틴물이 이 정도 성공의 아우라와 천재성을 감추고 있었던 작품이라는 것을 상기해봤을 때, 상대적으로 십여 년 만에 돌아온 '학교 2013'에 대한 기대치는 초라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학교 시리즈가 2012년 부활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대중의 반응은 대체로 그러했다. "학교 만들면 뭐 하겠노. 아이돌이나 나오겠제." 제작진은 이런 대중의 반응을 익히 알고 있었다는 듯 우리 드라마에서 아이돌 안 씁니다-! 라는 대대적인 선언까지 하며 하나둘 캐스팅을 터뜨렸지만, 이미 이전의 학교 시리즈가 보여주었던 잠재된 스타의 가능성을 되새기는 시청자들에겐 마음에 찰리가 없는 캐스팅이었다.

분명 드라마 학교 시리즈가 방영될 무렵의 조인성이나 장혁, 배두나와 같은 인물들이 스타였던 것은 아니었지만, 지금의 대중은 이미 스타가 된 그들의 화려함을 당시의 캐스팅과 동일 선상의 기대치로 바라게 된다. 그렇다면 방법은 두 가지다. 정말 조인성, 장혁, 김래원, 배두나, 임수정 정도의 캐스팅을 갖추거나, 아니면 그들만큼의 십 년 뒤 가능성을 기대하게 하는 라이징 스타를 발굴해오든가. 하지만 지금의 제작 시스템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전자의 가능성에 맞춘 스타들은 비중을 나누어 갖는 이런 부류의 학원물에 출연하지 않을 것이고, 후자의 기대치에 부합하는 인물을 발굴하기엔 스폰서와 기획사의 알력 다툼을 무시할 수 없는 제작 환경으로 바뀌어버린 지 오래다. 결국 지금의 드라마 시스템에서 정상적인 학교 시리즈를 만들기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예상대로 ‘학교 2013’의 캐스팅은 밋밋하기 짝이 없었다. 아이돌을 쓰지 않고 연기력만을 중점으로 보겠다고 발표했던 것과 달리 사실 공개된 캐스팅의 대부분은 이미 연기 논란이 있었거나 작품 속에서 그리 연기력을 인정받지 못했던 신인 배우와 아이돌 그리고 모델 출신의 캐스팅이 대부분이다. 벌써 십 년도 더 전의 하이틴 드라마가 지금까지도 대단한 작품으로 대중의 기억 속에 회자되는 첫 번째 이유는 무엇보다 '인재의 발굴'이라는 미덕이었다. 작품 하나로 신데렐라가 되었다는 거창한 존재감보다도 이 작품을 발판으로 숨어있는 인재들이 발견되고 재평가된다는 사실이 드라마 학교의 가치를 높여주는 품격이었던 것이다.

그것은 어쩌면 실제 '학교'가 상징하는 미래의 꿈나무를 키워내는 공간이라는 이미지와도 들어맞았다. 이런 기대치를 갖는 사람들에게 현재의 캐스팅은 무언가 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기회에 목마른 미래의 스타들에게 기회의 발판이 되어야 할 학교의 역할이 너무 쉽게 기회를 갖거나 아니면 이미 너무 많은 기회를 갖고도 그만큼의 만족도를 보여주지 못했던 캐스팅의 구성원으로 변질되어 버렸다. 이런 캐스팅으로는 학교의 역할을 다했다고 말할 수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무언가 변칙 같은 학교 시리즈의,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를 '학교 2013'을 기다린다. 그것은 실망스러움의 연속인 학생들의 캐스팅과 달리 또 다른 구성원의 캐스팅, 바로 선생님으로 맞추어진 포커스 때문이다. '학교 2013'의 캐스팅에서 기대하는 것은 미래의 장혁이나 조인성, 배두나가 아니다. 이미 학교의 발판이 필요하지 않은 스타로 성장해버린 인물 장나라의 캐스팅은 드라마 학교가 지향해오던 상징성마저도 바꾸어버렸다. '학교 2013'의 주인공이 학생이 아닌 교사로 바뀌어버린 것이다.

세기말에서 2000년대 초반은 불쑥 튀어나온 신세대의 존재감이 그야말로 최대치로 가시화되던 순간이었다. 어른들은 아이들을 이해하지 못했고 아이들은 어른들을 부정하려 들었다. 개성을 억압하는 두발 자율화와 교복에 반기를 들어 기성세대를 나무라는 목소리가 가장 컸던 것도 이 시기였고, 보다 깊은 철학으로 입시경쟁의 지옥을 비난하는 어린 열정이 들끓었다. 허나 어른들은 이런 신세대의 불만을 이해하지 못했다. 배움에 목마른 학창시절을 보냈던 어른들에게 배우기 싫다고 외치는 아이들의 목소리는 사치일 뿐이었다. 그래서 기성세대의 아집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각종 창작물로 쏟아져 나왔다. 당시 아이돌이 거의 패턴처럼 반복했던 사회비판 가사를 담은 노래 또한 청소년의 불만을 대변하는 것이었다. 60년대, 어른들이 히피에 미친 것처럼 세기말의 아이들은 아이돌의 사회비판 가사에 포효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이때까지는 적어도 타협점이라는 것이 없지는 않았다.

지금의 아이들은 기성세대를 비판할 의지마저도 잃었다. 학생이 교사의 뺨을 때리고 학부모는 교실에 쳐들어와 아우성을 치며 여교사의 머리채를 휘어잡는다. 교권추락이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거의 실종된 것이나 다름없는 판국이다. 학생들은 교사를 존중하지 않고 학교에 의존하지도 않는다. 기성세대와의 타협점을 찾으려는 반항 자체도 무색해져 버린 지금의 청소년들에게 과연 '학교'라는 드라마의 상징성이 여전히 유효할까? '학교 2013'은 그 해답을 장나라로 꺼내놓는다. 학생에게만 주어졌던 학교 시리즈의 발언권을 이제 교사에게로 돌린 것이다. 학생이 학교를 고발한다면 학교 또한 학생을 고발할 수도 있다. 그것은 또한 의무고 교육의 책임감이다.

장나라는 이 드라마에서 기간제 교사 5년 차의 '정쌤'으로 등장한다. 겁이 많아 속으로 꽁하면서도 울컥 저지르고 본다는 장나라의 기본 프로필은 몇 줄 안 되는 설명만으로도 학생들에게 그리 존경을 받지 못하는 여린 마음의 교사로 등장할 것임을 예상하게 한다.

아마 장나라는 이 드라마에서 많은 눈물을 흘릴 것이다. 더 이상 학교의 약자는 학생이 아니다. 학생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소위 만만한 이미지의 여리여리한 얼굴과 학생들에게 얻어맞으면서도 결코 그들을 포기하지 않을 건전한 약자로서의 이미지에 장나라의 캐스팅은 그야말로 최대치다. 이것은 드라마 학교를 기대할 수밖에 없는 첫 번째 이유다.

이런 장나라와 호흡을 맞추는 또 다른 선생의 캐스팅이 다름 아닌 최다니엘이라는 사실과 장나라의 캐스팅과는 극과 극을 달리는 정반대 성향의 프로필 또한 학교를 기대하게 하는 두 번째 이유가 되어버렸다.

이미 장나라와 최다니엘은 드라마 동안미녀에서 한 치의 어색함도 찾아볼 수 없는 리얼한 연기로 소박한 캐릭터를 현실감 있게 소화한 경험이 있는데, 이 좋은 궁합의 두 배우가 전혀 다른 장르의 작품에서 또 한편의 역사를 만든다는 것은 그야말로 흥미로운 이야기가 아닌가.

더군다나 지방 사범대 출신으로 임용고사를 실패한 기간제 교사로 등장하는 장나라의 우울과 극을 이루는, 서울대 국교과 출신의 강남 최고의 학원 원장이었다는 최다니엘 교사의 화려한 이력은 드라마의 흥미 요소를 주도하는 가장 큰 볼거리가 될 것임에 틀림없다. 단순한 커리어 뿐만이 아니라 그럼에도 학교는 아이들에게 맷집을 키워주는 곳이라는 꿈을 가진 선생님 장나라와 수강생은 받아도 '제자'는 사절이라는 교사 최다니엘의 상반된 의지는 흥미 요소를 뛰어넘은 드라마의 철학으로 자리잡을 것이다.

학생은 스승을 바라지 않고 교사도 제자를 키워내길 원하지 않는다. 학교의 상징성을 그저 대학 합격을 위한 배출구로 남길 것이냐 아니면 아직까지도 학교에서 스승과 제자가 존재하는 어떤 정서를 기대할 것인가. 이 위태로운 시기에 '학교 2013'이 등장한 이유, 그것은 곧 학교의 존재 가치의 이유로 설명되지 않을까. 그것이 내가 위태로운 드라마 '학교 2013'을 기대하는 세 번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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