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일자 MBC 뉴스데스크는 "'박근혜 출산 그림' 전시 논란‥새누리 ‘강력대응'”이란 제목으로 홍성담 화백의 그림 전시를 보도했다. MBC는 '진보진영'이란 표현을 유달리 강조했다. MBC뉴스 화면 캡쳐.
“‘박근혜 출산 그림’ 전시 논란‥새누리 ‘강력대응’.” 2012년 11월 19일 MBC <뉴스데스크> 다섯 번째 아이템이다. 그림이 전시되었고, ‘논란’이 따랐으며, 이에 새누리당은 강력하게 대응할 것이라는 이야기다. 교묘하게 ‘논란’을 부추기며, 무엇보다도 새누리당의 ‘강력대응’ 메시지를 일방적으로 옮긴다. 그렇게 비난의 여론을 제조하고 부정의 프레임을 잡는다.

꼼꼼하게 박상규 기자의 리포팅을 따라잡아 보자. “진보진영이 기획한 전시회에 박근혜 후보의 출산장면을 묘사한 그림이 전시돼 파문이 커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앵커께서는 그렇게 말문을 연다. 진보진영이 기획? “모두 진보진영 원로들이 공동대표로 있는 ‘평화박물관’이 유신40년을 맞아 기획전시”한 것이라 기자는 부연 설명한다.

왜 이렇듯 ‘진보진영’을 두 번이나 반복하는 것이며, 대체 이때의 ‘진보진영’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언어의 선택은 매우 정치적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 용어선택의 정치학을 우리는 어떻게 읽어낼 것인가? 파문이 커지고 있다고 했다. 과연 어떤 ‘파문’을 어떻게 알았으며, 그 파문은 어디서 어떻게 생긴 것일까?

예상했던 것처럼 진원지는 새누리당이다. “특정후보를 비방하기 위한 정치선동이라며 법적조치를 통해 강력 대응하겠다고 밝”힌 새누리당이다. 기자는 다음과 같이 발언한 새누리당 강은희 의원의 말을 옮긴다. “경악을 떠나 분노를 느끼고 있습니다. 이는 여성의 가장 지고지순하고 숭고한 출산까지도 예술을 가장하여 정치적으로 선동하고 있습니다.”

물론 홍성담의 변명을 바로 붙일 줄 아는 센스 있는 기자다. “우리 전통의 풍자기법을 따른 것이라며 특정 후보를 비하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면서, “전통 풍자에는 해학과 익살만 있는 게 아니고 조소, 야유도 있는 거예요. 인간이 인간을 어떻게 비하를 해요? 야유하고 조소를 하는 것이지”라는 홍씨의 말을 딴다. 그래서 균형을 갖추었고, 공정성은 위반하지 않은 것일까?

아뿔싸. 기사는 다음과 같은 작가 소개로 마무리된다. “민중미술가인 홍성담씨는 지난 1989년 북한에서 열린 평양축전에 ‘민족해방운동사’ 사진을 보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 바 있습니다.” 어떠하신가? 친절한 설명이지 않은가? 대체 왜 작가가 그런 그림을 그렸는지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았나?

교묘하게 이데올로기 덧칠이 이루어지고 있다. ‘북한’, ‘평양축전’, ‘민족해방운동사’. 무시무시한 언어들이다. 오히려 그가 어떻게 1980년 광주를 체험했고, 그가 어떻게 그곳의 참혹을 판화로 묘출코자 했으며, 그 이후 어떻게 오랫동안 민중민족미술의 정치학을 통해 국가권력에 맞서왔는지를 말해주는 게 훨씬 문맥적으로 필요한 것 아니었을까?

MBC의 뉴스는 그가 기입된 예술의 억압과 미학적 저항의 역사를 결정적으로 생략한다. 여성의 ‘지고지순’과 ‘숭고’까지도 ‘정치적으로 선동’에 이용한 친북 작가에 대한, 새누리당과 보수수구는 물론이고 일반 시청자의 ‘강력대응’을 선동한다. 예술의 정치에 대한, 정치적이지 않은 것처럼 위장한 뉴스보도의 명백히 정치적이고 이념적이며 ‘예술적’인 간섭이다.

선전이고 선동이다. 관련 보도는 다음 날에도 계속된다. ‘민생행보’에 ‘주력’하는 박근혜 후보 동정 기사를, 현원섭 기자는 다음과 같이 마무리한다. 우선 20일 정오뉴스다. “이정현 공보단장은 홍성담 화백이 박 후보가 박정희 전 대통령을 연상시키는 아이를 낳는 그림을 그린 데 대해, ‘천륜을 거스르는 풍자로 정권을 잡겠다는 데 소름이 끼친다’면서, 최악의 네거티브라고 비난했습니다.”

섬뜩하고 오싹하다. 정권을 잡는 데 천륜을 거스린 풍자까지도 이용한다? 뉴스는 반복된다. “새누리당은 박근혜 후보 출산그림 전시를 야당후보를 위한 최악의 네거티브로 규정하고 인륜을 거스르며 상대를 폄하해서는 정권을 잡을 수 없다고 거듭 비판했습니다.” 같은 날 <뉴스 데스크> 똑같은 기자의 리포팅이다. 프레임의 강화.

▲ 홍성담 화백이 그린 풍자화 ‘골든타임-닥터 최인혁, 갓 태어난 각하에게 거수경례하다’ ⓒ평화박물관 홈페이지

분명하게 홍성담의 박근혜 그림은 논란을 일으키고자 할 정치적 의도로 만든 그림이다. 명백히 논란이 될 만한 소지가 있는, 정치성 짙은 그림이다. 이슈가 되고 논쟁이 따르는 것은 당연하다. 물론 이때의 논란은 다양한 지점, 차이나는 각도에서 벌어질 수 있다. 현재로서는 진보와 보수의 의식 차에서 빚어지는 측면이 크지만, 표현의 방식이나 미학적 가치를 둔 예술적 논쟁도 충분히 가능하다.

미학의 정치화, 정치의 미학화는 논쟁을 비켜갈 수 없다. 여성(주의) 관점에서도 비판이 제기될 수 있다. 젠더 감수성의 측면에서 이 그림을 불편하게 느끼고 불편한 것으로 비판하는 소수자적 담론의 개진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판단은 각자의 몫이다. 그 느낌을 당연하게 말로 표출할 수 있는 것이다.

예술은 공개적 정치의 행위다. 이번에도, 전시라는 공적 형식을 취했기 때문에, 홍성담의 작품에 관한 공론은 당연하고 필요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사실 이번 논란은 예술이라는 문제가 매우 ‘정치적인 것’이라는 점을 재차 확인시켜 준다. 예술과 정치, 정치와 예술은 따로 일 수 없다. 먼저 현실의 정치는 집요하게 미학화하고 있으며, 예술을 도구적으로 가져다쓰고 있다.

파시즘 전체주의 시대에만 그런 게 아니라, 바로 지금 후기신자유주의 체제에서도 그렇다. 이미지와 신화에 기반한 국가정치/정치권력은 결코 예술이라는 장치 없이 작동할 수 없다. 국가/자본의 프로파간다로 전락한 예술/미학을 우리는 매일같이 일상적으로 접한다. 그래서 정치가 곧 ‘예술적인 것’이라면, 거꾸로 예술도 근본적으로 ‘정치적인 것’이다.

사회 내 작가의 위치, 의식 혹은 감각의 패턴이 우선 정치적이다. 특정한 관점과 도구를 갖고 창작에 임하는 행위, 특정한 소재를 택해 특별한 작품을 만들어내는 과정이 곧 정치적이다. 그리하여 만들어진 작품 자체가 정치적인 산물이며, 모든 작품은 어떤 식으로든 정치적 해석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현실 사회 속 ‘예술을 위한 예술’이라는 환상의 공간은 없다. 정치와 무관한 작가나 작품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탈정치적인 작가, 반정치적인 예술조차도, 현실 정치와 역사의 물리학 속에서는 여전히 정치적인 선택이 된다. 그렇기에 홍성담의 그림이 노골적으로 현실 정치를 소재로 하여, 명백하게 정치적인 메시지를 통해, 정치적인 의사를 밝히고, 정치 현실에 개입하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 새롭지도 않다.

그것은 철저하게 작가의 판단이고, 말 그대로 예술창작의 자유이다. 다만 그에 대해 가치를 매기고 의미를 평가하며 호불호를 밝힐 관객의 자유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래서 두 가지 자유는 공감으로 나타날 수도 있지만, 이번 경우처럼 비판이나 논란으로 귀결될 수도 있다. 당연한 일이며, 이게 바로 예술적인 것 즉 정치적인 것의 속성이다. 예술에 비평이 중요한 이유다. 억압과 검열, 통제와 구속이 악인 이유다.

이처럼 만만찮은 주제인 예술을 다룰 때 뉴스는 신중하지 않으면 안 된다. 섣부른 재단은 금물이며, 무엇보다 정략적 이해에 기초한 이념적 각색은 사절이다. MBC의 ‘논란’ 보도는 바로 이 중대한 규약을 위반했다. 함량미달의 예술적 감각과 정치적 의식을 갖고, 제도정치권의 계산적 공학에 맞춰, ‘논란’을 제조한다. 시청자들의 합리적 판단과 대중들 사이의 자율적 토론을 은근하게 방해한다.

그렇다면 다른 두 지상파 채널은 어떠했을까? 신중함과 조심스러움으로 요약 가능하다. 먼저 KBS. 안철수와 문재인이 21일 TV토론을 갖기로 했다고 보도한 후, 새누리당의 비판을 전하면서 짧게 언급하고 만다. “새누리당은 박근혜 후보가 박정희 전 대통령을 출산하는 듯한 그림을 그린 민중미술가 홍성담과 그림을 전시한 박물관측에 대해서는 법적 조치를 검토하기로 했습니다.” 건조하게 팩트를 전하는 데 그친다. 그리고 SBS. 관련기사를 찾아 볼 수 없다.

침묵이다. 무지 혹은 무관심의 표식이라기보다는, ‘아직은 뉴스의 가치가 없다’거나 ‘기사로 취급하지 않는 게 맞겠다’는 적극적 판단의 표현이라고 보는 게 옳겠다. 어떤 채널의 정치적 기예, 어떤 뉴스의 예술적 감각이 더 좋아 보이는가? 뉴스도 예술이고 정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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