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베이징에서 공부하고 있는 '북경만학도'님께서 이명박 대통령의 중국 방문과 관련해 글을 보내왔습니다. 한중 정상회담과 관련한 국내 언론의 보도태도를 성찰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필자의 요청으로 실명이 아니라 필명으로 글을 게재합니다. <편집자주>

27일 이명박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했습니다. 중국 온지 석달만에 같은 하늘 아래 있게 됐습니다. 차라리 잠시 한국에 도로 가버릴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지만 실용적으로 참았습니다. 중국정부도 이명박 대통령을 반길지 궁금했습니다.

어제는 그래서 일어나자마자 아침뉴스를 봤습니다.

시작했습니다. 오늘 한국의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한다. 이는 얼마만의 방문이며, 이명박은 한국의 새로운 대통령이다. 오늘 이명박 대통령과 만나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눌 예정이다. 라고 아나운서가 멘트를 하고, 이명박 대통령의 사진이 자료화면으로 등장하리라 예상했습니다. 갑자기 없던 애국심이 솟아오르며 기왕이면 잘 나온 사진을 소개하길 기대했습니다.

오늘의 주요뉴스를 보여줍니다. 이를 어쩐다. 안나옵니다. 지진피해 지역을 방문한 중국 관리 소식만 나옵니다. 약간 무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해할만한 일입니다. 지금 중국이 외국에서 손님 온다고 호들갑 떨 분위기는 아닙니다. 대신 짧게라도 보도할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기다렸습니다.

많은 뉴스가 지나갔지만 기다려도 기다려도 이명박 대통령 사진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급기야 반이상 지나고 나니 일기예보가 나옵니다. 그렇죠. 여진이 발생하고 있는데다가 복구도 덜 되었으니 일기예보는 지금 중국에서 중요한 뉴스입니다.

이젠 게임 오버인가요? 이명박 대통령의 중국방문은 중국 시청자들에게는 그리 중요한 뉴스거리가 아닐까요? 그러다가 생각났습니다. 이 아침뉴스는 후반부에 중국 주요신문들의 기사를 소개합니다. 적어도 인민일보에서는 다루지 않았겠습니까. 그렇다면 그런식으로라도 이명박 대통령의 소식을 들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쯤되니 저도 오기가 생겼습니다. 도대체 몇 시에 오는지라도 알고 싶었습니다.

아나운서가 나왔습니다. 인민일보 등의 27일자 주요기사들을 소개합니다. 끝까지 기다렸습니다. 참고로 아침뉴스는 한 시간짜리고, 이 코너는 10분 이상 진행됩니다.

황당합니다. 혼자 마음고생, 몸고생만 했습니다. 이 코너에서도 다루지 않았습니다. 아침 뉴스 내내 이명박 대통령은 한번도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오후부터는 한국 뉴스를 찾아봤습니다. 매우 비중 있게 이 소식을 다루고 있었습니다. 당연한 일이죠. 중국 방문에 기대하는 바가 얼마나 큰지도 알 수 있었습니다. 이제는 중국뉴스와 비교해볼 차례라고 생각했습니다.

밤이 왔습니다. 이번에는 나이트뉴스(27일)를 봤습니다. 이번에는 나올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안 나오면 이건 외교문제죠. 오늘 한국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왔고, 와서 무슨 얘기를 했고, 앞으로 한중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분석할 것이라 예상했습니다.

아나운서가 나왔습니다. 인사하고 바로 그날의 주요뉴스 장면으로 넘어갑니다. 카운트다운을 했습니다. 하나, 둘, 셋. 나와라 이명박 대통령!

네. 드디어 나왔습니다. 역시 첫 장면이었습니다. 약간 반갑기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계속 후진타오 주석과 투샷으로만 카메라에 잡힙니다. 뒷부분에 회의 하는 장면에서 마지막으로 한번 얼굴 비친 게 전부입니다. 이거 혹시 "오늘 후진타오 주석은 누구를 만났다" 이런 류의 기사에 조연으로 등장한 걸까요? 주요기사 소개하는 꼭지라서 그런지 몇십초만에 후다닥 지나가버렸습니다.

메인 기사로 소개했으니 바로 상세보도로 이어지겠거니 하면서 다시 기다렸습니다. 아. 하지만 그는 또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나이트뉴스는 30분만 하는데 도대체 언제 나올까요. 얼굴 한번 제대로 보자는 마음으로 그래도 기다렸습니다. 국내 상황을 본인도 알 것이니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표정이라도 읽고 싶었습니다.

7분 49초만에 등장했습니다. 객지 나와서 조국의 대통령 얼굴보는 게 쉬운 일이 아닌가봅니다. 후진타오 주석과 이명박 대통령이 이번 지진 구호단 한국 대표와 함께 만났습니다. 후진타오 주석이 무지 감사해합니다. 그러나 여기서도 이 대통령은 주인공이 아니라는 얘기군요. 어라. 악수 하는 장면 몇 개 나오더니 뉴스 끝. 이명박 대통령 목소리도 못들어 봤네요.

진짜 한국 뉴스는 마지막에 길게 나왔습니다.

한국의 초등학교에서 지진 대비 훈련을 했다는 소식입니다. 훈련장면을 보여주는 것은 물론이고, 왜 이런 훈련을 하는지도 상세히 소개했습니다. 아래 사진은 지진훈련을 한 학교의 교장 선생님과의 인터뷰 장면입니다.

중국뉴스는 이 분 목소리를 오히려 주의 깊게 들었군요. 물론 지진이라는 특수한 상황 때문이긴 합니다.

저 뉴스를 마지막으로 나이트뉴스도 끝났습니다. 다른 뉴스에서 상세히 다뤘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습니다. 필자가 모든 뉴스를 모니터 한 것은 아니까요. 28일부터는 보도가 달라질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아침저녁으로 하는 정규 프로그램에서는 이렇게 이명박 대통령 방문이 단신정도로만 처리됐습니다. 한마디로 찬밥신세입니다. 중일관계를 호전시키기 위해 CCTV가 얼마나 애쓰고 있는지를 안다면 극명하게 비교되는 보도입니다. CCTV 홈페이지에서도 이명박 대통령 소식을 읽으려면 눈으로 찾는 것보다 '검색'이 빠릅니다.

한국은 현재 국민들이 매일같이 거리로 뛰쳐나와 정부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때 과연 이 대통령은 해외 출장가서 뭐하는지, 사고를 치는 것은 아닌지, 대접은 제대로 받고 있는지 궁금해 하실 여러분을 위해 찾아봤습니다. 그런데 정말 궁금합니다. 이명박 대통령, 중국에 오긴 온 겁니까?

이상. 북경만학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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