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미문화원 점령 사건을 중심으로 철가방 대오의 사랑을 섞어, 맛있는 짜장면으로 만들어낸 육상효 감독의 재기 넘치는 작품이 바로 <강철대오:구국의 철가방>이었습니다. 잘 생긴 놈만 연애하는 더러운 세상에 과감하게 혁명을 시도하는 철가방 대오의 구국적인 희생은 눈물 나게 매력적으로 다가옵니다. (이하 스포일러 포함)

고창석이 들려주는 독재와 민주주의의, 우리도 배워봅시다

'방가? 방가!'를 통해 이주노동자의 삶을 코믹하게 다루었던 육상효 감독이 2년 만에 함께 했던 이들과 새로운 코믹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사회적 문제를 웃음으로 버무려내는 육상효 특유의 재미가 이 작품에도 그대로 들어가 있었습니다.

386으로 대변되는 민주화 세대의 상징과도 같은 미문화원 점거 사건을 통해 우리 시대의 계급과 혁명을 다시 한 번 고민하게 하는 이 작품은 끝없이 이어지는 웃음 속에 진하게 전해지는 진정성이 가득한 작품이었습니다.

짜장면 배달에 사명감까지 가지고 있는 철가방 대오(김인권)는 대학가 배달 전문입니다. 독재 타도를 외치는 대학생들과 학내까지 들어와 최루탄을 쏘며 진압하는 전경의 모습은 현재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모습입니다.

최루탄과 돌멩이가 오가는 사이를 농익은 오토바이 핸들링과 철가방을 이용한 방어를 통해 완벽하게 배달해내는 대오는 진정한 철가방이었습니다. 그렇게 배달에 열중하던 대오는 우연히 여자 기숙사에서 그릇을 수거하다 특별한 존재를 발견하게 됩니다. 지저분한 잔반 그릇들과는 달리, 깨끗하게 씻어 감사하다는 쪽지까지 적어둔 301호 여학생이 잔잔하던 대오의 가슴에 불을 붙였습니다.

서예린(유다인)이라는 이름과 너무도 아름다운 얼굴에 한 눈에 반해버린 대오는 그날부터 사랑하는 사람을 차지하는 방법을 단골 외국인 교수를 통해 배우기 시작합니다. 여대생을 사랑하는 철가방의 순정이 결코 쉽지는 않았습니다. 어렵게 들어간 301호에서 자신이 힘겹게 적은 '짜장면'을 응용한 사랑의 시는 수위 아저씨에게 쫓겨나는 결과만 만들고 말았으니 말입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예린이 건넨 천 원짜리 지폐에 적힌 '생일'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정장을 입고 약속 장소로 향하는 대오는 그저 설레기만 했습니다. 짝사랑하는 예린의 생일을 함께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했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약속된 12시가 다 되어가며 차츰 생일을 축하하기 위한 학생들이 삼삼오오 몰려들며 갑자기 뛰기 시작합니다. 어딘지, 왜 그런지도 모르고 그들과 함께한 대오는 그렇게 역사적 사실인 미문화원 점령사건의 주인공이 됩니다.

코믹을 베이스로 한 이 영화에서 재미를 빼놓고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방가? 방가!'에서 보여준 웃음 코드는 '강철대오'에도 존재했고, 김인권의 원맨쇼에 가까운 재미는 그 어떤 개그 프로그램 이상의 흥미를 전달해주기도 했습니다.

무거울 수밖에 없는 소재를 코믹하게 다뤘다고 과거의 사건이 희화화될 수는 없습니다. 여전히 미국의 지배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실을 생각해보면, 85년 미문화원 사건은 지금도 유효하니 말입니다.

여기서 흥미롭게 다가선 부분은 386으로 대변되는 세대의 핵심이 대학생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당시 민주주의를 외치고 사회 변혁을 주도한 존재가 대부분 대학생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이 정치권으로 대거 진출하며 현재의 정당 정치인으로 자리잡은 것도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니 말입니다.

극중 조정석이 전설의 학생 운동가로 등장하며 극적인 변화를 이끄는 장면은 흥미롭습니다. 학생 운동을 하던 그가 민중 속으로 들어가지 않고, 정치권으로 투신하는 과정은 당연한 현실이었으니 말입니다. 그렇게 운동권에서 스타였던 그들이 정치권의 부름을 받고 스타 정치인이 되기도 했던 시절의 이야기를 다시 원점에서 보게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영화는 흥미로웠습니다.

당시 운동권 학생이었든 방관자였든 상관없이 조정석의 기타 반주로 시작된 '타는 목마름으로'를 들으며 뜨거운 그 무엇을 느꼈던 이들은 아마 많았을 듯합니다. 386의 주역이었던 이들에게는 남다른 소회를 던져주는 장면일 겁니다. 강철대오를 만들어 실제 투쟁에 앞장섰던 이들에게 이 노래들은 민주화를 외치던 그 시절을 그대로 불러들이는 장치이니 말입니다.

철가방 황비홍(박철민)이 경찰 고창석과 나누는 이야기는 흥미로웠습니다. 미문화원 점령의 주범으로 등장한 대오의 성향을 파악하기 위해 독재에 대해 무슨 이야기를 했느냐며 추궁하는 과정에서 '독재'란 무엇인가에 대한 담론은 황홀할 정도로 매력적이었습니다.

독재는 '홀로 독'과 '꼴릴 재'자를 쓴다는 고창석의 재해석은 탁월했습니다. 혼자 꼴리는 대로 하면 독재고 모두가 꼴리는 대로 하면 민주주의라는 그의 발언은 그저 웃고 넘어갈 수준의 농담이 아니었으니 말입니다. 현재도 혼자 꼴리는 대로 정치를 하면서 많은 이들에게 꼴리는 대로 하지 못하게 하는 모습을 보면 '독재'라는 가치가 여전히 유효하다는 사실을 알게 해주니 말입니다.

1985년 5월 23일 고려대, 서강대, 서울대, 성균관대, 연세대 삼민투 소속 학생 73명의 미문화원 2층 도서관 점거사건을 기본 배경으로 하고는 있지만, 철저한 감독의 재해석이 담긴 작품이었습니다. 과거 치열했던 대학생들의 민주주의 쟁취가 그들만의 전유물은 아니라는 감독의 도발적인 발언은 그래서 흥미롭기만 합니다.

'사랑을 하러 갔다가 혁명을 하면서 나오는 한 남자의 이야기'라는 영화의 홍보 문구에서도 알 수 있듯, 민주주의만 혁명이 아니라 사랑도 혁명이라는 감독의 가치가 교묘하게 묶여 하나로 만들어가는 과정은 흥미롭기만 했습니다.

방송에서 암호와 같은 그들만의 비밀 암호를 던진 대오의 뜻에 따라 철가방들이 미문화원 현장으로 향하는 장면이 바로 이 영화의 핵심이었습니다. 궁지에 몰린 대오를 구하기 위해 철가방을 들고 현장에 들어선 그들은 서로 대치 중인 전경들과 학생들 모두가 행복한 짜장 파티를 하면서 긴장감을 순식간에 녹여버렸으니 말입니다.

민주주의를 외치는 학생들이나 그들과 대치하는 전경들이나 모두 짜장면 좋아하는 같은 젊은이들이라는 사실을 극적으로 부각시킨 이 장면은 <강철대오:구국의 철가방>이 이야기하고 싶었던 주제가 함축된 장면이었습니다. 권력이 갈라놓은 젊음을 짜장면으로 대동단결시키는 장면과 대학생들의 주도로 진행된 점거 시위가 철가방들이 합류하며 진정한 민주주의 쟁취를 위한 투쟁으로 이어지는 과정은 이 영화가 이야기하고 싶었던 전부였습니다.

완성도 높은 영화라고 보기는 힘들겠지만, 이 영화에서 보여준 육상효 감독의 뛰어난 풍자와 개그감은 절정에 오른 느낌이었습니다. 김인권이 보여주는 탁월한 코믹 연기와 매력적인 유다인, 그리고 노래 하나만으로도 눈물을 흘리게 만든 조정석의 모습까지 주조연을 망라해 보여준 풍자극 <강철대오:구국의 철가방>은 짜장면이 어떻게 민주주의를 만들었는지를 유쾌하게 담아내고 있었습니다.

과연 철가방 대오는 여대앞 붕어빵 청년의 러브 스토리처럼 사랑을 혁명해낼 수 있었을까요? 예린은 민중민주주의를 위해 현장으로 뛰어들어 현재까지 활동을 이어가고 있을까요? 현실 정치에 발을 들여 놓은 운동권은 국회의원으로 얼마나 자신의 가치를 실현시키고 있는지 궁금하게 만드는 영화입니다.

'세상은 영화로 표현되고 영화는 세상을 이야기 한다. 그 영화 속 세상 이야기. 세상은 곧 영화가 될 것이라는 누군가의 말처럼 영화에 내재되어 있는 우리의 이야기들을 끄집어내 소통해보려 합니다.
http://impossibleproject.tistory.com/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