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영화 ‘광해’의 천만 관객 돌파에 대해서 말들이 많았었습니다. 어느 포털 사이트에서는 ‘광해 천만 관객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는 설문 조사를 실시할 정도로 뜨거운 이슈가 되었었지요. 관객 천만을 동원했다는 사실은 분명 모두에게 축하를 받을 만한 일이고, 또 한국 영화계의 발전을 위해서도 호재인데, 이상하게도 ‘광해’의 천만 관객은 축하가 아닌 논란과 이슈의 중심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유는 영화 ‘광해’를 제작한 CJ가 천만 관객을 끌어모으기 위해 이런 저런 꼼수라 부를 만한 일이 드러났기 때문이었습니다. 관객 이름에 ‘광’ 자나 ‘해’ 자가 들어가면 공짜 티켓을 주고, 쌍둥이 관객에게도 공짜 표를 주는 등 각종 이벤트로 관객몰이를 시행한 것이 논란의 첫 시발점이 되었었지요.

거기에 거대 기획사의 작품이라는 점 때문에 초반부터 어마어마한 극장 점유율을 보유하고, 관객이 떨어지는 시점에도 다른 작품에 개봉관을 내어주지 않았다는 점도, ‘광해’의 천만 관객 동원을 불편한 시각으로 바라보게 만들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숫자놀음에 열을 올리는 듯한 영화 제작사의 고집이 서서히 드러나면서 비난을 받기 시작한 것이지요.

이런 근거로 네티즌들이 술렁거리기 시작하자 영화 ‘광해’를 옹호하는 기사들이 쏟아져 나오기도 했습니다. 어떤 영화든지 영화를 홍보하는 비용은 있기 마련이라며, 단지 ‘광해’의 홍보 마케팅 비용이 다른 영화들에 비해 조금 더 초과를 했을 뿐이라는 설명이었죠. 공짜 티켓 이벤트로 모여든 관객 역시 몇 천 명밖에 되지 않아, 천만 관객을 노리는 꼼수라고 보기는 어렵지 않냐는 반박을 하기도 했구요.

영화 기획사 CJ는 극장 점유율에 관해서도 형평성에 어긋날 정도는 아니라고 반박했습니다. CJ 소유인 CGV 극장 개봉관 수가 다른 극장들의 개봉관 수와 큰 차이를 보이지는 않는다고 말하면서 말이지요. ‘광해’의 천만 관객 동원을 너무 색안경만 끼고 보는 것 아니냐며 억울한 듯 호소하는 분위기였는데요.

사실 제 49회 대종상 영화제가 열리기 전까지, 아니 이 영화제에서 ‘광해’가 15개 부문을 모두 다 싹쓸이하기 전까지만 해도, 영화 기획사의 항변이 무조건 억지스럽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대종상 영화제가 끝난 이후 생각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되어버리고 말았죠. 한마디로, ‘광해’의 천만 관객은 물론이고, 이런 어처구니없는 수상 결과 모두, 대단한 작품성에 운까지 좋은 명작의 탄생만으로 보게 되지는 않는다는 결론이었습니다.

이번 대종상 영화제의 수상 결과를 언급하자면 영화 ‘광해’의 날이었다고 말을 해도 부족할 만큼, ‘광해’가 받을 수 있는 모든 상을 다 휩쓸었습니다. 무려 15개 부문을 수상하는 기염(?)을 토해내고 말았죠. 영화제에서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최우수 작품상을 비롯해서 감독상, 남우주연상, 남우조연상, 의상상, 미술상, 음악상, 음향기술상, 조면상, 편집상, 기획상, 시나리오상, 촬영상, 영상기술상, 인기상 등 15개 부문의 수상을 거머쥐고 말았어요.

놀랍게도 ‘광해’가 후보에 오른 부문에 탈락이란 없었습니다. 굵직한 수상 부분 중 하나였던 여우주연상을 놓친 ‘광해’였지만, 후보에는 ‘광해’의 여주인공이었던 한효주가 아예 후보에서 빠져 있어서 기대할 수 없는 부문이었지요. 여우주연상은 다행히도 ‘피에타’의 조민수에게 돌아갔지만, 만약 한효주가 후보에 올랐다면 또 어떤 우스꽝스러운 발표가 나왔을지 몰랐을 일이었는데요.

이렇게 영화 ‘광해’는 받을 수 있는 상은 하나도 남김없이 모두 가져가고 마는 이례적인 일을 해내고 맙니다. 그럼으로써 대종상 영화제 사상 최다 부문 수상작이라는 명예를 얻게 되고 말았지요. 영화 ‘광해’를 사랑하는 팬들이나 영화 제작자들, 출연 배우들과 스텝들, 그 밖의 관계자들에게는 참으로 경사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입니다. 그야말로 한국 영화계의 역사를 다시 쓰게 하는 대기록을 세운 작품이 되었으니까요.

그런데 영화 ‘광해’가 이번 대종상 영화제에서 받은 15개 트로피에 대해서 과연 얼마나 많은 이들이 진심으로 축하해주고, 그럴 만 했다며 고개를 끄덕여 줄 수가 있을지 궁금해집니다. 벌써부터 많은 네티즌들, 심지어 언론들까지도 이건 너무 하지 않냐는 볼멘소리를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광해’ 15개 부문 수상에 비해, ‘도둑들’은 1개 부문 수상이라며 비교하는 단순한 질투, 혹은 폄하 그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는 듯했는데요.

영화제 중간에 김기덕 심사위원장(피에타 감독이 아닌 동명이인입니다)이 나와 영화 ‘광해’ 가 싹쓸이하는 상황에 대해 변명이랍시고 언급한 내용이 더욱 심기를 건드리고 말았습니다. 그는 이번 심사는 작품들끼리의 상대평가가 아닌 한 작품, 한 작품의 절대평가로 이루어졌고, 그 평가는 은행 금고에 넣어 두어 아무도 알 수 없는 상태로 보관하게 했다고 하더군요.

공정성 논란이 불거질까 우려하는 마음에서 한 소리였을 겁니다. 누가 봐도 몰아주기 수상이기에 시끄러운 논란을 조금이라도 잠재우고자 공정성에 대한 부분을 나름 강조한다고 한 언급이었을 거예요. 그런데 여기에 치명적인 오류가 존재합니다. 그의 말대로라면 결국 대종상 심사위원들은 모두가 같은 시각과, 같은 견해와, 같은 생각으로 심사했다는 것으로 귀결되니까 말이죠. 모든 심사위원들의 시각이 이렇게 하나로 획일화되었다는 것이 우연이라 하기엔 너무 뒤가 구리기만 한 어불성설인데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다 부문을 수상한 작품들은 누가 봐도 작품성에 대해서만큼은 완벽하다고 말할 수 있는 영화들이었습니다. 저명한 영화 평론가들이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리면, 대중은 설사 흥행과는 거리가 멀다 하더라도, 그들의 평가를 인정해주고 결국 그 평가에 공감하면서 수상을 축하하기에 이르지요. 그리고 매년 아카데미 시상식은 어떤 작품이 싹쓸이를 하건, 하지 않건 간에 영화인들과 영화를 사랑하는 이들의 잔치가 되고 맙니다.

그런데 이번 대종상 영화제는 결코 영화인들과 영화를 사랑하는 이들의 축제가 될 수 없었습니다. ‘광해’가 15개 부문을 모두 거두어 갈 정도로 완벽한 작품성을 가졌다는 것에 대해서 대중은 거의 공감하지 못하고 있으며, 심사위원들이 아무리 공정성을 부르짖는다 해도, 이미 대중의 마음속엔 그들의 평가를 흐리게 만든 무언가가 작용했을 것이라는 짐작을 하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이지요. 만약 천만 관객이 그 작품성을 입증한 것 아니겠냐고 반문한다면, 그 어이없는 질문은 더 많은 관객을 동원한 ‘도둑들’ 1개 부문 수상으로 충분한 답이 될 수 있을 테구요.

영화 ‘광해’로 수상을 한 이들을 민망하고 어색하게 만든 시상식에 불과했습니다. 제대로 축하를 할 수도, 또 받을 수도 없는 분위기로 엉망진창이 된 대종상 영화제였어요. 이번 ‘광해’의 싹쓸이 수상으로 인해, 이제 다시 한번 영화제의 공정성과 권위, 그리고 존폐에 대해서 말들이 많아질 듯합니다. 한국 영화에 자긍심을 갖게 되는 영화 축제가, 세계가 볼까 두려운 역대 최악의 조롱잔치가 되어버렸으니 말입니다. 언제쯤 대한민국에는 아카데미 같은 영화제가 생길 수 있으려나요? 대종상 영화제가 준 씁쓸한 뒷맛이 아직도 가시지 않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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