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짜면'이라는 것이 있다. 어느 중국요리식당에서 개발한 메뉴인 '짬짜면'은 짜장과 짬뽕 둘 다 먹을 수 있다는 장점으로 수많은 고객들의 사랑을 받았고, 이제 '짬짜면'은 짜장, 짬뽕 못지않게 많은 이들이 찾는 중국집의 주메뉴 중 하나가 되었다.

영화 <강철대오 구국의 철가방>은 짬짜면 같은 영화다. 영화 배경은 민주화 투쟁이 절정을 이루던 198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학교 근처 중식당에서 배달원으로 일하고 있는 강대오(김인권 분)은 여대생 서예린(유다인 분)을 보고 한눈에 반하지만, 대학교 문턱을 넘지 못한 중국집 배달원과 여대생의 사랑은 불가능에 가깝다. 설상가상 대오의 외모는 잘생겼다기보다 평미남(평균 미만 남자) 미모에 가깝다.

하지만 불가능을 뛰어넘는 것이 혁명인 것. 다들 여대생과의 사랑은 안 된다고 대오를 말리지만, 그럼에도 예린에게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기 위해 예린이 사는 여대생 기숙사 침투까지 마다하지 않았던 대오는 우연히 예린이 참여한다는 '생일파티'를 알게 되고, 정말 순수했던(?) 그는 단순히 생일파티인줄 알고 그 모임에 참석한다. 그러나 그 '생일파티'는 당시 민주화 투쟁에 참여했던 운동권 대학생들이 시위를 하기 위해 참여한 암호였고, 그들은 곧 근처 미국문화원을 점거, 장기간의 농성을 시작한다.

육상효 감독의 전작 <방가?방가!>가 외국인 근로자 위장 취업을 통한 청년 백수의 세상 인식기를 담았다면, <강철대오>는 민주화가 뭔지도 몰랐던 평범한 청년이 짝사랑하는 여인에 이끌려 우연히 민주화 투쟁에 뛰어드는 이야기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 대오는 왜 민주화를 해야 하고, 독재정권에 저항해야 하는지 절실한 이유를 깨닫지 못한다. 그저 예린과 함께 있는 것이 좋아서, 그녀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농성에 참여하게 된 대오는 그녀를 향한 사랑이 깊어질수록 시위대에서 인정받는 영웅으로 거듭나기 이른다.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짜장면과 80년대 민주화 운동을 결합한 시도는 좋아 보인다. 하지만 88만원 세대의 비극과 외국인 노동자의 근로 실태를 웃음으로 잘 버무려 호평받았던 <방가?방가!>와 달리 <강철대오>는 대오의 사랑 따로, 민주화도 따로 담겨 있는 '짬짜면' 같은 모습을 보인다. 특히나 처음부터 끝까지 예린을 위해 헌신할 만반의 준비가 되어있던 대오와 달리, 막판에 대오보다 더 엄청난 민주투사로 거듭난 동료 중국집 배달원들의 희생은 감동적이라기보다 억지스럽고 불편하기까지 하다.

오히려 주인공 대오가 가장 빛나는 장면은 예린의 사랑을 얻기 위해 억지로 민주 투사로 둔갑하는 것이 아닌, 중국집 배달원이란 순수한 자신의 맨얼굴로 오직 예린을 지키기 위해 사지로 뛰어들 때다. 가진 것 없지만 사랑하는 여인을 향한 마음만큼은 '체게바라'의 혁명 의지보다 뜨거운 대오의 순정이 절정에 다다를 때 그제서야 '불가능한 것을 이루는 것이 혁명‘이라는 영화의 취지와 맞아 보인다.

민주화와 평미남의 사랑이야기가 제대로 섞이지 못한 것은 아쉬움이 남지만 그럼에도 <강철대오>를 그럭저럭 볼 만한 상업 오락영화로 만들어놓은 것은 순전히 김인권, 조정석, 박철민, 유다인 등 배우의 열연이다.

<방가?방가!>에 이어 다시 한번 <강철대오>에서 육상효 감독과 의기투합한 김인권은 사랑하는 연인에게 지고지순한 사랑으로 가득 찬 순정남으로의 이미지 변신에 완벽히 성공한다. 그의 무르익은 코믹 연기는 어설픈 짬짜면 <강철대오>를 지탱하는 힘이자, 가짜 열혈 투사라기 보단 사랑 바보에 가까운 대오의 캐릭터를 완벽히 그려낸다.

처음에는 민중가요계의 조용필로 등장하지만, 뒤에 가면 엄청난 반전을 가진 인물로 나오는 조정석은 <건축학개론> 납득이, <더킹 투하츠>와는 또 다른 충무로 대세의 매력을 무한 발산한다. 운동권 여대생의 소피 마르소로 불리는 유다인은 존재만으로도 아름답고, 대오의 사랑을 비이냥거리면서도 그의 사랑을 무한 지지해주는 박철민은 등장만으로도 큰 힘이 된다.

<방가방가> 그 이상의 완성도를 기대하면 허탕을 칠 수도 있지만, 김인권, 조정석, 유다인 등 요즘 충무로가 주목하는 배우의 진가를 재확인할 수 있는 것은 <강철대오>가 선사하는 큰 미덕이기도 하다. 10월 25일 개봉.

한 줄 평: 한 그릇에 너무 많은 이야기를 담으려다가 탈 날 뻔한 이야기 살린 배우의 열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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